(조선일보 2019.01.23 나해란 여의도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안면인식불능증과 카그라스 증후군
드라마나 영화에서 다른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는 주인공이 종종 등장합니다. 사고를 당한 경우도 있고,
어느 날 아침 눈을 뜨니 갑자기 그렇게 변해버린 경우도 있지요. 실제로 이런 일들이 가능할까요?
▲ /게티이미지뱅크
흔히 '안면인식장애'라고 부르는 병 '안면인식불능증'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태어날 때부터 이 병에 걸리기도 하고,
별문제 없이 살다가 사고를 당해 뇌를 다치면서 생기기도 하지요.
이 병을 앓게 되면 처음에는 자기가 남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한다는 걸 모르는 경우도 많아요. 안면인식불능증으로 얼굴을
구별하지 못하는 이유는 시력이나 시각 관련 뇌 부위 때문이 아니라고 해요. 안면인식불능증에 걸린 환자도 눈, 코, 입을
따로 떼어놓고 구별하라고 하면 곧잘 해내거든요. 다만 눈, 코, 입을 조합해 한 사람의 전체적인 얼굴을 파악하는 것을
어려워한다고 해요. 우리 뇌 안에 '얼굴 구별하기'를 맡은 부서와 '보는 것'을 맡은 부서가 따로 있다는 얘기지요.
얼굴 말고 다른 것을 알아보는 데도 전혀 문제가 없답니다.
안면인식불능증 환자의 눈엔 모든 얼굴이 다 비슷해 보인다고 해요. 그래서 그 사람이 쓰고 다니는 안경, 특징적인 머리 모양,
혹은 얼굴 한쪽에 있는 특이한 점 같은 것을 기억해 누구인지 구별한대요.
얼굴을 잘 알아보면서도, 다른 사람으로 착각하는 병도 있어요.
예를 들어 엄마에게 "엄마를 무척 닮은 이모가 오셨군요"라고 하거나 "옆집 아주머닌데 왜 엄마 얼굴을 하고 있죠"라고 말하는
거예요. 프랑스 정신과 의사 조세프 카그라스(Capgras)가 발견해 '카그라스 증후군'이라 부릅니다.
안면인식불능증과는 달리, 얼굴은 알아보지만 다른 사람으로 착각하는 현상이에요.
카그라스 증후군이 생기는 이유는 뇌 부위의 연결성이 떨어지기 때문이에요.
우리가 남의 얼굴을 인식하려면 뇌의 각 부위가 복잡한 협업을 해내야 합니다. 가령 엄마 얼굴을 구별하려면 뇌는 먼저
어떤 사람을 봤을 때 얼굴 모양을 파악해서, 자기가 알던 엄마의 얼굴과 견줘봅니다.
이 작업은 '엄마 얼굴'이 저장된 기억력 담당 부위에서 처리하겠지요. 그다음은 '엄마 얼굴' 하면 떠오르는 감정을 담당하는
뇌 부위가 나설 차례입니다. 모양과 특징이 둘 다 연결돼야 뇌는 비로소 이 사람이 '엄마'라고 최종 판단한답니다.
카그라스 증후군에 걸리면, 얼굴을 알아봐도(모양), 그 사람에게 맞는 감정(특징)이 잘 연결되지 않는다고 해요.
분명히 엄마 얼굴이라는 것은 알지만 엄마에게 느끼는 친숙함이 느껴지지 않아 엄마가 아닌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해버리는
것이지요. 조현병(정신분열증) 환자에게 주로 나타나지만 뇌 손상이나 치매 등으로 발생하기도 해요.
뇌 연결성이 회복되면 증상이 좋아져서 다시 사람을 잘 알아보기도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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