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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 논문 속 '기묘한 물질' 현실로···반도체 혁신 기대

바람아님 2019. 1. 22. 08:37
[중앙일보] 2019.01.21 19:00
 
2016년 10월 4일(현지시각),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는 그 해의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세 명을 발표했다. 데이비드 사울리스(84) 미국 워싱턴대 교수, 던컨 홀데인(67) 프린스턴대 교수, 마이클 코스털리츠(75) 브라운대 교수가 주인공이었다. 수상 이유는 2차원 물질인 ‘기묘한 물질(exotic matter)’의 상태 변화를 수학적으로 분석해, 이를 연구하는 데 유용한 이론적 토대를 제시했다는 것이었다.
 
2016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왼쪽부터 데이비드 사울리스, 던컨 홀데인, 마이클 코스털리츠. 이 세명은 기묘한 물질(Exotic Matter)의 상태 변화를 수학적으로 분석한 공로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사진제공=노벨위원회]

2016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왼쪽부터 데이비드 사울리스, 던컨 홀데인, 마이클 코스털리츠. 이 세명은 기묘한 물질(Exotic Matter)의 상태 변화를 수학적으로 분석한 공로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사진제공=노벨위원회]

  
그런데 노벨물리학상 논문 속에만 존재하던 기묘한 물질의 상태 변화가 실험을 통해 실제로 관찰됐다. 우리나라 기초과학연구원(IBS) 강상관계물질연구단의 성과다. 두께가 나노미터(nm) 수준으로 극히 얇은 2차원 물질의 경우, 그 독특한 성질 때문에 기존 반도체·디스플레이·고효율 태양전지 등의 성능을 획기적으로 바꿀 수 있어 실험 가치가 높다는 게 과학계의 평가다. 이 연구성과는 21일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에 게재됐다.
 
온도가 낮아야 유지되는 자성...2차원 ‘기묘한 물질’은 -248도에서 자성 상실
 
실험의 핵심은 바로 기묘한 물질의 독특한 ‘자성(magnetism) 상전이’에 관한 것이다. 상전이란 고체가 액체로, 액체가 기체로 변하는 것처럼 물질의 한 상태가 다른 상태로 변하는 것을 말한다. 자성 상전이의 경우 특정 온도 이하에서 원자가 규칙적으로 정렬돼 자성을 띠던 물질이, 특정 온도 이상에서는 정렬이 풀려 자성을 잃어버리는 현상이다. 보통 온도가 낮으면 낮을수록 자성은 안정적으로 유지되며, 상온에서는 자성은 사라져버리는 특성이 있다.
 
박제근 부연구단장 연구팀은 자체 개발한 반데르발스 물질로 불리는 삼황화린니켈(NiPS3)을 2차원으로 만들어 실험을 진행할 수 있었다. 왼쪽 그림은 반데르발스 물질의 결정 구조를 나타내며, 오른쪽은 원자간력현미경(AFM)을 통해 본 박리된 반데르발스물질의 표면이다. [그래픽출처=기초과학연구원]

박제근 부연구단장 연구팀은 자체 개발한 반데르발스 물질로 불리는 삼황화린니켈(NiPS3)을 2차원으로 만들어 실험을 진행할 수 있었다. 왼쪽 그림은 반데르발스 물질의 결정 구조를 나타내며, 오른쪽은 원자간력현미경(AFM)을 통해 본 박리된 반데르발스물질의 표면이다. [그래픽출처=기초과학연구원]

  
그런데 기묘한 물질의 경우, 두께가 거의 없는 2차원 형태로 만들었을 때, 섭씨 마이너스 248.15도의 낮은 온도에서도 자성 상전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자성이 없다는 의미다. 연구를 진행한 박제근 IBS 강상관계물질연구단 부연구단장은 “2016년 노벨 물리학상의 주요 내용은 XY모델을 따르는 물질을 2차원 소재로 제작했을 때, 자성 상전이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이 같은 실험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지난해 11월, 기묘한 물질의 성질을 보여줄 수 있는 ‘반데르발스 물질(삼황화린니켈ㆍNiPS3)’을 IBS 연구진이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IBS, 자체 개발한 반데르발스 물질로 XY모델 증명...“반도체 기술 혁신 기대”
 
자성의 상전이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 과학계는 그간 세 가지 모델을 기준으로 해왔다. 아이징 모델, XY모델, 하이젠베르크 모델이 그것이다. 박제근 부연구단장은 “지난 반데르발스 물질을 발명했을 때 이미 아이징 모델을 실험적으로 검증한 바 있다”며 “이번 XY모델까지 포함해 세 가지 이론 모델 중 두 개를 실험을 통해 검증했다”고 의의를 설명했다.
 
반도체의 핵심은 소형화다. 2차원의 자성물질을 구현하면, MRAM과 같은 자기를 이용한 반도체 제조기술의 혁신을 기대할 수 있다. [중앙포토]

반도체의 핵심은 소형화다. 2차원의 자성물질을 구현하면, MRAM과 같은 자기를 이용한 반도체 제조기술의 혁신을 기대할 수 있다. [중앙포토]

  
이와 같은 자성 물질의 성질에 대한 연구는 반도체 제조기술 혁신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연구진은 “최근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개발한 자기메모리(MRAM)는 자성체 소자를 이용한 것”이라며 “상온에서 자성을 잃어버리지 않는 2차원 자성체를 구현할 수 있다면 반도체 산업에 탄력이 붙을 것으로 생각된다”고 밝혔다. MRAM은 자료 처리 속도가 빠를 뿐 아니라 소비전력이 적은 DRAM과 전원이 꺼져도 자료가 지워지지 않는 플래시메모리의 장점을 모두 갖고 있어 차세대 메모리로 떠오르고 있다.
 
이 외에도 2차원 물질 개발은 과학계와 산업계의 큰 주목을 받고 있다. 2010년에도 노벨 물리학상은 대표적 2차원 물질인 그래핀(Graphene)에 대한 실험을 한 안드레 가임(60)과 콘스탄틴 노보셀로프(44)에게 돌아갔다.
 
허정원 기자 heo.jeongw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