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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단호한데… 靑 '개성공단·금강산' 집착 왜?

바람아님 2019. 3. 11. 09:03
조선일보 2019.03.09 03:00

北에 선물 안주면 대화 단절 우려… 총선 등 국내정치 요인도 고려한 듯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에 대해 미국이 명시적으로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는 상황에서도 우리 정부는 계속해서 이를 추진하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북한을 대화 테이블에 잡아두기 위해 어떻게든 미국을 설득해 제재 완화를 받아내겠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이 같은 정부의 태도가 북 비핵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필수적인 한·미 공조 틀을 오히려 깰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은 8일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프로세스가 긍정적 방향으로 진척되고 있으나 2차 북·미 정상회담이 합의에 이르지 못한 것은 아직 해야 할 일이 많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이날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개성공단 재개에 대해 "유엔 제재의 틀 안에서 미국과 협의하겠다"고 했다. 그는 "비핵화를 했을 때 북한에 어떤 혜택이 갈 것이라는 것을 그림으로 그릴 수 있는 차원에서 (미국에) 설명해줄 필요가 있다"고 했다.

文대통령, 금수강산도를 뒤로하고 - 문재인 대통령이 8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시에라리온 등 6국 주한대사 신임장 제정식에 참석하기 위해 박상훈(왼쪽) 의전비서관과 본관 접견실에 들어서고 있다.
文대통령, 금수강산도를 뒤로하고 - 문재인 대통령이 8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시에라리온 등 6국 주한대사 신임장 제정식에 참석하기 위해 박상훈(왼쪽) 의전비서관과 본관 접견실에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이는 2차 미·북 정상회담 결렬 이후 미국 및 국제사회 흐름에 역주행하는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미 조야(朝野)에서는 연일 대북 제재 강화론이 나오는데, 우리만 남북 경협은 예외로 하자고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현재 트럼프 행정부와 미 의회는 한목소리로 '전면적 비핵화 합의 후 제재 완화'를 얘기하고 있다. 남북 경협을 위해 제재를 허물자는 우리 정부의 주장에 미국의 불만은 커지고 있다.

청와대와 정부의 역주행은 남북 경협을 통해 북한 비핵화를 추동하겠다는 문 대통령의 확고한 방침에서 비롯됐다. 문 대통령은 3·1절 기념사에서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재개 방안을 미국과 협의하겠다"고 했다. 여권 관계자는 "지금 당장은 어렵겠지만 북·미 대화는 재개될 것이며 남북 경협은 북한 비핵화를 유도하는 핵심 요소가 될 것"이라고 했다. 청와대는 2017년 비핵화 남북 대화를 제안했던 '베를린 구상'이 미·북 대화로 이어졌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북한을 대화에서 이탈하지 않게 만들겠다는 청와대의 계산도 들어 있다. 남북 경협을 이행해야 북한이 핵실험이나 미사일 발사 도발로 회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최근 "어렵게 여기까지 왔지만 무너지는 것은 순간"이라고 했다. 북한에 제재 해제라는 선물을 주지 않으면 남북 대화는 물론 미·북 대화 역시 단절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대북 제재 틀을 유지하는 가운데 경협을 추진하는 것은 애초에 가능하지 않은 대안이라고 보고 있다. 개성공단을 푸는 것 자체가 대북 제재의 핵심 틀을 무너뜨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여권의 남북 경협 집착에는 내년 총선 등 국내 정치 요인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김성한 고려대 교수는 "지지자들을 결집하기 위해 실현 불가능한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고 했다. 김태우 전 통일연구원장은 "남북 관계를 우선하겠다는 것은 이념에 가깝다.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과거 개성공단 폐쇄 발언을 했던 김현종 청와대 안보실 2차장이 최근 개성공단 재개 추진 역할을 맡은 것에 대한 논란도 있다. 김 차장은 2016년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에 입당했을 때 "북핵에 대해 우리가 단호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며 "어떻게 보면 개성공단을 폐쇄할 수도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다른 대안이 있다면 개성공단을 폐쇄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