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9.03.23 장강명 소설가)
꿈꾸는 책들의 도시
책에 대한 책을 좋아한다.
내게는 사람보다 책이 편해서, 책에 대한 책을 읽을 때면 마음이 배로 편안해진다.
책 이야기하는 책 중에서도 내가 가장 사랑하는 책 두 권은 미하엘 엔데의 '끝없는 이야기'와
발터 뫼르스의 '꿈꾸는 책들의 도시'다.
이 두 책은 소재 외에도 닮은 데가 많다.
둘 다 독일 작가가 썼고, 판타지 소설이자 사변소설이고, 2부로 구성됐고, 청소년 독자를 겨냥한 듯
보이지만 깊이가 상당하고, 분량도 두툼하고, 그럼에도 아주 재미있다. 뫼르스는 엔데의 계보를 잇는다는 평을 받기도 한다. 책의 삽화나 인쇄 방식에 저자가 깊숙이 간여했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두 책의 한국어 번역서는 분권돼 출간되기도 하고 단권으로 나오기도 했는데 양쪽 모두 한 권짜리 개정판은 700쪽이 넘는다.
두 벽돌책을 2회에 걸쳐 한 권씩 소개해도 될까?
내게 좀 더 각별한 '끝없는 이야기'를 다음 회로 미루고 '꿈꾸는 책들의 도시'를 먼저 얘기하자면,
이 책은 애서가들에게는 천국 같은 가상 도시, 부흐하임(Buchheim·책의 집)에서 펼쳐지는 모험담이다.
꿈꾸는 책들의 도시
발터 뫼르스 지음/ 두행숙 옮김/ 들녘/ 2011/ 747 p
853-ㅁ632구/ [정독]어문학족보실서고/ [강서]3층 자료실서고
여기서 '천국 같다'는 말은 좋은 일만 일어나는 장소라는 의미가 아니다.
무서운 음모와 범죄가 벌어지지만 그 모든 사건의 중심에 책이 있다는 얘기다.
책이 푸대접받는 21세기 한국과 달리, 부흐하임은 책이 최고의 이슈가 되는 사회다.
인쇄소, 종이공장, 잉크공장이 빽빽하고 서점이 수천 곳 있고
어디서나 낭독회가 열리며 고서 사냥꾼은 영웅이 된다.
그래서 부흐하임의 작가와 출판인과 평론가가 서로를 속이고 물어뜯는 묘사를 읽다 보면
기분이 묘해진다. 현실 문학계와 출판계에 대한 풍자임을 알면서도,
그런 싸움이 그렇게 중요하게 다뤄지는 그곳이 오히려 부러워지기도 하니까.
책의 큰 특징인 동화풍의 상상력과 능청스러운 유머에 대해서도 상반된 감정이 드는데,
처음에는 살짝 가볍게 느껴지다가 나중에는 그 기발함과 풍부한 상징성에 압도될 지경에 이른다.
소설은 뒤로 갈수록 어둡고 무거워지며, 마지막에는 '문학의 감동이란 무엇인가?'를 묻는다.
그 질문에 가장 인상적인 답을 형상화하여 보여주는 책이기도 할 것이다.
이 소설은 같은 세계관에서 펼쳐지는 '차모니아 연대기'의 한 편이지만, 시리즈의 다른 책을 읽지 않아도
독서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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