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時流談論

[사설] 北은 文 정부 차버리고, 美는 韓 선박 블랙리스트 올리고

바람아님 2019. 3. 25. 07:59


조선일보 2019.03.23. 03:10


북한이 22일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에서 일방적으로 철수했다. 북측은 별다른 설명도 없이 "상부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만 했다고 한다. 김정은 결정이라는 얘기다. 정부는 유감을 표하면서 "북측이 조속히 복귀해 남북 간 합의대로 연락사무소가 정상 운영되기를 바란다"고 했지만 당분간 남북 관계는 전면 중단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정부는 지난해 9월 대북 제재 위반 우려 속에서도 100억원의 개·보수 비용을 들이며 연락사무소 개설을 밀어붙였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남북이 24시간 365일 소통하는 시대가 열렸다"며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나 북한은 지난달 말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 결렬 이후 매주 정례적으로 열렸던 소장회의에 아무 설명 없이 불참했고, 이날은 6개월여 만에 아예 짐을 싸들고 떠난 것이다. 북한은 애초부터 연락사무소를 남북 관계 개선이 아니라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완화를 위한 우회 창구로 이용하려 했다. 하지만 한·미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미국이 문 대통령 말을 불신하고 듣지 않는 것으로 확인되자 북한도 문재인 정권을 더 이상 이용할 여지가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북한의 연락사무소 일방 철수는 하노이 회담 결렬 직후부터 청와대가 "'중재자' '촉진자'로서의 한국 역할이 커졌다"고 한 것이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진 인식임을 보여준다. 청와대는 대북 제재를 더 조이려는 미국의 방침에도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재개 방안을 마련하겠다"며 북한에 노골적인 러브콜을 보냈지만, 북한은 공개적으로 "문 대통령은 중재자가 아니다"라고 했다. 이때 이미 이용 가치가 끝났다고 선언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는 사이 한·미 관계는 동맹이라고 부르기 어려울 정도로 갈라졌다. 미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은 이날 북한의 불법 해상 거래 주의보를 발령하면서 의심 선박 리스트에 한국 배 1척을 포함했다. 국제사회의 제재를 피해 불법 환적 방식으로 북한과 정제유를 거래한 정황이 있다는 것이다. 심각한 사태로 받아들여야 한다. 미 재무부는 불법 선박들이 환적 전후에 들른 항구로 부산·여수·광양을 적시했는데, 이는 한국 항구가 대북 불법 거래의 중간 기지로 이용되고 있을 가능성을 암시한다. 이번에 미국이 추가한 의심 선박의 국적 중 동맹국은 한국밖에 없다. 아직 명확한 증거가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동맹국 배를 블랙리스트에 올린 것은 사실상 우리 정부에 대한 경고다. 북한 위협의 최대 피해자인 한국이 대북 제재의 '구멍'으로 의심받는 기막힌 일이 벌어지고 있다.

지금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북한이 핵 포기를 결심하도록 몰아가는 방법은 대북 제재 압박뿐이라는 공감대로 하나가 돼 있다. 미국은 북한의 해상 불법 환적을 단속하기 위해 해안경비대 소속 경비함까지 한국에 보낼 예정이다. 한국 정부가 이런 제재에 적극 동참해야 미국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고, 미국의 신뢰를 얻어야 북한이 한국에 '중재' 역할을 기대하게 될 여지가 생긴다. 하지만 문 정권은 북핵 폐기야 어찌 되든 김정은 쇼를 계속해 정권 연장할 생각밖에 없는 듯하다. 그래서 '먼저 제재 완화하면 북이 핵을 포기할 것'이라는 황당한 발상을 고집하고 있다. 제재가 없어졌는데 북이 왜 핵을 포기하나. 이런 사정을 잘 아는 북은 이날 개성에서 철수하며 '남측은 남아 있어도 좋다'고 했다. 미국에 한 번 더 매달려보라는 것이다.

문 대통령이 '김정은 비핵화 의지'라는 실체 없는 거품을 만들고 키울 때부터 자칫하면 최대 피해자가 대한민국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 그 우려가 최악의 모습으로 현실화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