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소문 포럼] 반일 감정 조장은 3·1정신에 어긋난다
중앙일보 2019.03.25. 00:153·1독립선언서에 나오는 구절이다. 100년 전 선조들은 한민족을 총칼로 억압한 일본을 적으로 대하는 대신, 스스로를 바로 세우려고 3·1운동을 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했다. 민주·평화·비폭력을 내세운 3·1운동 정신은 대한민국 건국 이념으로 헌법 전문에 살아 있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은 우리는 3·1운동 정신에 충실히 살고 있는가. 한완상 3·1운동 및 임시정부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장은 중앙일보와의 대담에서 “3·1정신의 핵심은 ‘선제적 사랑 실천’ ‘선제적 정의 실천’ ‘선제적 평화 만들기’”라며 “3·1정신은 100년 지난 현재 시점에서도 족탈불급(足脫不及)의 경지”라고 말했다.(중앙일보 3월 15일자 27면)
최근 한국에서 벌어지는 반일 감정 조장은 3·1정신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선제적으로 사랑·정의·평화를 실천하는 게 아니라 선제적으로 일본을 배척하고 있기 때문이다. 20만원이 넘는 초·중·고교의 일본산 비품에 대해 ‘일본 전범(戰犯) 기업’ 스티커 부착을 의무화하려는 경기도의회의 조례안은 효과가 없을 뿐 아니라 일본의 반발을 불러올 사안이다. 일본의 경제적 보복과 함께 한·미·일 안보 공조에 균열을 초래할 수 있는 만큼 안 하느니만 못한 자충수다.
전국 17개 시·도 교육청 중 10곳의 교육청이 나서서 교가 작사·작곡자의 친일 이력을 조사해 교체를 권하는 것도 지나치다. 작사·작곡자의 친일 이력은 민족문제연구소가 2009년 펴낸 『친일인명사전』등재를 기준으로 판단한다. 문제는 친일 선정 기준이 자의적이라는 비판이 있는 데다 역사적 인물에 대한 평가를 친일이라는 잣대로 획일화하는 게 지나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움직임은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가 지적한 대로 ‘관제(官制) 민족주의’라 할 수 있다.
중국은 대약진운동·문화대혁명으로 수천만 명을 희생시킨 마오쩌둥에 대해 ‘공(功)이 70%, 과(過)가 30%’라고 평가한다. 일제 35년 동안 삶의 한 단면만 보고 역사적 인물을 친일로 매도하는 건 우리 역사를 협소하게 만들 뿐이다. 공자는 “사람이 나쁘다고 해서 그의 좋은 말을 버리지 않는다”(不以人廢言)고 말했다. 친일 이력이 있다는 이유로 좋은 작품을 버리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일본과의 관계 악화는 한국과 일본 양국에 이로울 게 없다. 북핵 위협 해소와 중국 부상에 대한 대응, 한·미·일 안보 공조에 나쁜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한·일 관계는 아베 정권 등장 이후 일본의 우경화 움직임으로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여기에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위안부 합의문이 사실상 파기되고 한국 대법원이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내리면서 더욱 악화하고 있다.
일본과의 관계를 정상화하려면 먼저 과거사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한·일은 관계 악화가 양국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진지하게 과거사 문제 해결을 모색해야 한다. 신각수 전 주일대사는 “양국 최대 현안이 된 일본군 위안부와 강제징용 문제의 일괄 타결을 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셔틀 정상외교를 포함한 정부와 민간의 다양한 교류를 정례화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사안이 발생했을 때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대화로 풀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임진왜란 이후 『징비록』을 쓴 유성룡은 “일본과의 화평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한·일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는 지금, 문재인 대통령은 이 말을 되새겨야 한다.
정재홍 콘텐트제작에디터·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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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C] 반일의 아이러니
한국일보 2019.03.25. 18:02
※ ‘36.5˚C’는 한국일보 중견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여당 주도로 희극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경기 도내 각급 학교 비품에 ‘전범(戰犯) 기업이 만든 제품’이라는 스티커가 붙을 뻔했다. “학생들에게 올바른 역사 인식을 확립시켜주고 싶었다”는 게 조례를 제정하려 한 경기도의회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들이 내세운 이유라고 한다. 다행인지 유력 우파 신문의 조소 가득한 폭로 덕에 저 시대착오적 반일(反日)은 미수에 그칠 듯하다. ‘국가원수를 모욕한 매국(賣國)’이라는 수사로 ‘검은 머리 외신 기자’를 비아냥댄 민주당 대변인은 애국을 빙자한 권위주의에 인종주의 혐의까지 받으며 세간의 빈축을 사기도 했다.
근 10년간의 이명박ㆍ박근혜 정권 때만 해도 생소했던 여권의 일사불란함에는 파시즘(전체주의)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스스로 그렇게 되기를 원했을 리 없겠지만, 어쨌든 배후의 중심은 정의의 화신인 문재인 대통령이다. 일본과 우리는 선린(善隣)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전제가 있다. 그들의 반성과 사죄다. 현재 문 대통령 심중에 친일보다 반일의 자리가 더 크다면 아직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기 때문일 테다. ‘과거 친일’이 말끔히 사라져야 ‘미래 친일’의 자리가 비로소 마련된다.
선두 대선 주자가 문 대통령이던 2017년 당시 이미 일본 기자들은 두 나라 관계의 회복이 요원할 거라 짐작했다고 한다. 그가 청산하겠다고 공약한 적폐에 친일이 포함됐다는 사실을 확인하고서다. 예감은 현실이 됐고 적폐 청산은 대통령의 정의일 것이다. 하지만 역사의 수많은 모순들처럼 대통령의 충정도 겨냥한 과녁으로 곧바르게만 날아가는 건 아니다.
우선 역사를 바로잡겠다며 거꾸로 뒤틀어버리는 아이러니다. 반일의 명분은 매국노가 득세한 역사 아이러니의 광정(匡正)일 것이다. 그러나 민족 이전에 계급이 있었다. 조선 말엽 반일은 봉건 왕정을 지탱하는 수단 중 하나였다. 신분 사회의 착취ㆍ부조리를 지배 계급인 양반이 민족ㆍ애국을 강조하는 식으로 호도하려 했다는 게 반일 역사의 이면 진술이다. 친일파의 멸칭인 ‘토착왜구’도 실상은 구(舊)체제를 위협하던 계몽 세력이나 동학ㆍ천주교 신자들에게 기득권층이 붙인 딱지였다는 것이다.
정부가 윤색한 독립운동사(史)에는 이렇게 선악이 착종된 복잡한 입체 구조가 누락돼 있다. 왕을 충성의 대상으로, 동학 농민군을 진압해야 할 폭도로 여긴 안중근 지사의 양반 정체성은 가려지고 기록이 부실한 ‘국민 누나’ 유관순 열사가 유독 부각된다. 반일 감정 자극을 위한 불쏘시개로 스타를 활용하려는 대중영합적 심산이 정부에 전혀 없지 않을 것이다.
뭉치자는 구호가 분열을 부추기는 것도 아이러니다. 대통령이 믿고 있는 국민 통합의 구심은 민족인 듯하다. 그러나 어쩌면 통합은 기만적인 말이다. 자기 진영만 결집하는 도구가 되기 때문이다. 서로 분열 책임을 상대방에게 전가하며 자기 편 결속력을 강화하는 정치권의 최근 좌우ㆍ여야 다툼이 그 사실을 드러낸다. “일제가 민족을 갈라놓으려 사용한 수단이 빨갱이 낙인”이라는 문 대통령의 3ㆍ1절 주장은, 일제가 공산주의자를 탄압한 핵심 목적이 천황제라는 봉건 체제의 수호였다는 사실(史實)과 어긋나기도 하거니와, “반민특위(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로 인해 국민이 분열했다”는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주장과 결과적으로 효과가 같다. 깔끔한 좌우 분열이다.
통합이 바람직한 것도 아니다. 통합ㆍ순수 같은 구심 계열 언어는 허구적이다. 실제 세계에서는 원심력이 강하고 그걸 거스르는 일이 옳지도 않다. 도저한 민족주의의 해악은 배척ㆍ고립이다. 단순화해 정서에 호소하면 반일은 혐일(嫌日)이 된다. 세계화의 반작용인지 울타리를 치고 누구건 타자이면 밀어내는 각박ㆍ몰연민에 세계가 침잠할 조짐이다. 추종해야 하는 시대정신이 아니다.
권경성 정치부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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