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9.03.26. 03:15
광부·간호사 수출했던 나라.. 작년에 '30-50클럽' 가입
'한강의 기적' 왜 깎아내리나
"한국에서 팔리는 독일 차보다 독일에서 팔리는 한국 스마트폰이 훨씬 더 많을 겁니다."
얼마 전 독일인 사위를 얻은 한 기업 임원이 사돈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고 했다. 서먹한 자리를 녹이려고 "한국에서 독일 차가 정말 많이 팔린다"고 했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고 했다. 독일 유학 중인 둘째 딸의 시댁 식구들과 처음 만난 자리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 그날 만난 20명 남짓한 사돈 식구 대부분이 갤럭시 스마트폰을 들고 있었다고 했다.
스마트폰이 화제가 되는 바람에 두 사람은 스마트폰 통역앱으로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고 한다. 사돈이 썼던 독일 앱은 자판에 독일어를 치면 화면에 한국어가 표시되는 수준이었는데, 그가 쓴 국산 앱은 한국어로 말하면 독일어가 화면에 떴다고 한다. 사위가 스마트폰에 저장해 놓은 싸이의 '강남스타일'과 방탄소년단의 노래 몇 곡을 틀면서 K팝 전성시대도 화제가 됐다고 한다. 그는 "한국에 독일 대중가요를 흥얼거릴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독일은 늘 저만큼 앞서 있는 나라라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우리도 많이 따라갔구나 싶었다"고 했다. 1963년부터 10년 넘게 독일에 탄광 광부와 간호사 인력 수출을 했던 아시아의 가난한 나라가 이제 세계 최고의 스마트폰을 만들어서 독일에 수출하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지난해 국내에서 팔린 독일 차는 연간 15만대고, 갤럭시 스마트폰은 독일에서 900만대가 팔렸다. 고급 독일 차와 스마트폰은 가격 차이가 많이 나지만, 금액으로 따져도 9조원과 7조원 정도로 추산되니 작은 휴대폰을 팔아서 대단한 수입을 올린다고 볼 수 있다.
독일인 사돈은 "요즘 한국 경제는 어떠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는 "한국은 독일을 모델로 삼아야 하는데 요즘 들어 그리스를 따라가는 것 같아서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고 대답했다. 사돈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고 했다. 그리고 "한국은 큰 성공을 거둔 나라다. 그 성공의 경험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면서 "너무 염려하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독일인들은 2차 대전의 잿더미를 딛고 1950년대 이룩한 경이적인 경제성장을 '경제 기적(Wirtschaftswunder)'이라고 부른다. '라인강의 기적'이라는 표현도 있지만, 정작 독일인들은 무뚝뚝한 독일인답게 잘 쓰지 않는다고 한다. 한국에서 더 자주 쓰였다. 지난해 우리는 미국, 일본,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만이 가입한 '30-50 클럽(국민소득 3만달러, 인구 5000만명 국가)'의 일곱 번째 멤버가 됐다. 여섯 나라는 모두 식민지를 가졌던 나라이다. 식민지였던 나라는 우리가 유일하다.
이 기적을 만들어낸 한국 경제가 지금 너무 위태롭다. 북핵 문제 해결 방안인 비가역적인 비핵화(CVID)에 빗대서 문재인 정부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비가역적인' 경제 실패로 나라를 몰고 가고 있다는 걱정이 커진다. 이대로 몇 년 더 지나면 돌이킬 수 없을지도 모른다. 어떤 독일인도 '라인강의 기적'을 깎아내리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 중의 누군가는 '한강의 기적'을 허물고 묻어버리려고 한다. 기적을 만들어낸 역사를 '정의가 패배한 역사'라고 한다. 최근 만난 전직 경제 관료는 "더 이상 정부 비판하는 칼럼은 쓸 필요 없다"고 했다. 대신 "국민에게 정신 차리라고 고함을 지르라"고 했다. 노아가 홍수가 난다고 했지만, 비가 내리기 전날까지도 세상은 태평스러웠다. 비는 오지 않을 것이라는 정부 말을 믿고 싶은가? 빗방울이 떨어지면 후회할 텐가?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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