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時流談論

[에버라드 칼럼] 진퇴양난 북한의 돌발 행동 주시해야

바람아님 2019. 3. 30. 08:14


중앙일보 2019.03.29. 00:16


경제난 가중되고 중국마저 강경
예상밖 행보로 타개 모색할 수도
존 에버라드 전 평양 주재 영국대사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은 북한 정권에 큰 타격을 줬다. 북한은 ‘미국 대통령이 우리 손아귀에 있다’고 확신한 나머지, 어떤 조건을 제시하든 트럼프 대통령 서명을 받을 수 있다고 여긴 듯하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합의 없이 회담장을 떠났고, 제재 해제를 기대했던 북한은 충격에 휩싸였다.
        

북한은 심각한 경제난을 겪고 있다. 2018년 북한의 경제성장률은 약 -5%로 추정된다. 올해 초에는 식량 배급량이 줄었다. 공개 연설에서 ‘다시는 허리띠를 조이지 않게 하겠다’ 고 약속했던 김 위원장으로서는 또 다른 ‘고난의 행군’을 감당할 수 없는 처지다. 김 위원장이 경제 발전의 중요성을 누차 강조해 왔기에 경제발전 계획의 실패는 정권에 큰 부담이 된다. 김 위원장이 조부 김일성의 뒤를 이어 주석으로 취임할 수도 있다는 추측이 나오는데, 가난과 기아에 시달리는 인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진행되는 주석 취임식은 상상하기도 힘들다.


대북 제재, 북한 지도부의 실정(失政), 북한의 비효율적인 경제구조 등의 요인들이 각각 북한의 경제난에 얼마만큼 영향을 미쳤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최근 유엔 전문가 패널 보고서에 따르면 대북 제재가 아주 정확하게 이행되고 있지는 않다고 한다. 그러나 김 위원장이 북한에 근본적인 경제개혁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으며(그는 ‘개혁’이라는 말을 꺼낸 적이 없다) 오히려 북한 경제난의 주원인이 대북 제재에 있다고 믿는 듯하다.


정상회담 이후 북한 정권은 인민에게 생활총화를 강조했다. 회담 실패에 대한 불평이 공공연하게 드러나기 전에 불만의 목소리를 잠재우려는 시도로 보인다. 고사포 훈련도 여러 차례 시행되었는데, 이는 공습 대비를 위한 훈련이기보다 인민들을 강제로 집단행동에 참여하게 하고 북조선이 위협받고 있다는 인식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이다. 게다가 북한은 외부 사회와의 소통을 단절했다. 다음 달로 예정되었던 방북 일정은 거의 다 취소됐다(지그마 가브리엘 독일 전 외무장관은 예외인데, 그의 방문이 북한에 이익이 된다고 판단한 듯하다). 뉴욕에서도 관계자들이 여러 차례 북한 대사관에 통화를 시도했지만, 전혀 응답이 없다고 한다.


설상가상으로 북한과 중국 관계도 경색된 상태다. 유엔 내에서 중국이 북한을 대하는 태도가 이전보다 강경해지고 있다. 중국이 아니라 러시아가 대북 제재 완화를 주장하고 있는데, 중국은 러시아에 동조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확고히 드러냈다. 김 위원장이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돌아가던 길에 베이징에 들러 시진핑 주석과 면담을 갖지 않은 것도 놀라운 일이다. 시 주석이 아무리 전국인민대표회의로 분주했다고 해도 김 위원장이 방문 의사를 밝히며 하노이 회담에 대한 의논을 요청했다면 기꺼이 시간을 냈을 것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북한의 경제난과 식량 부족 문제가 대두한 시점에도 중국이 대북지원을 늘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북한 미사일 기지 부근에서 포착됐던 움직임이 갑자기 중단됐다. 단순히 국제 사회를 동요하게 할 목적이었다면 기지 부근에서 수송 차량을 운행하거나 가림막을 설치하면서 위성사진에 포착될 만한 활동을 계속했을 것이다. 미사일 발사 준비가 목적이었다면 북한이 자발적으로 계획을 변경해 활동을 중단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미사일 발사가 초래할 가혹한 결과에 대해 중국이 북한에 엄중하게 경고했을 가능성이 있다. 북한이 중국의 분노를 사면 가뜩이나 어려운 북한 경제가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대북 제재는 변함이 없다. 북한의 식량부족 문제와 경제난은 계속될 전망이다. 중국도 러시아도 북한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 북한은 진퇴양난에 빠졌다. 바로 지금이 갑작스러운 변화가 발생할 수 있는 때다. 북한 동향을 주시해야 한다.


존 에버라드 전 평양 주재 영국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