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日常 ·健康

[일사일언] 이상하고 즐거운 감투

바람아님 2019. 4. 12. 10:30

(조선일보 2019.04.12 안소정 '온천 명인이 되었습니다' 저자)


안소정 '온천 명인이 되었습니다' 저자안소정 '온천 명인이 되었습니다' 저자


올해 초, 새로운 자리를 맡게 됐다.

"내가 지부장이라니!" 정확히는 '비영리법인 벳푸 온천 명인회 한국 지부장'.

일본 벳푸시에는 '벳푸 온천 명인회'가 있는데, 그 모임의 '한국 지부장'이 된 것이다. 제안은 간단했다.

"벳푸 온천 명인이고 한국인이니, 한국 지부장이 되어주시겠어요?"

전부 사실이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사실 말이 지부장이지 보수도 없고 하는 일도 뾰족하지 않다. 심지어 회원은 나 하나뿐이다. 공중에 뜬 자리인 셈.

그래도 명색이 지부장인데 뭐라도 해야 할 것 아닌가? 그래서 요즘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벳푸 온천을 알리는 중이다.

이게 뭐라고 열심인가 싶다가도, 누군가 관심을 보이면 뿌듯하고 기쁘기까지 하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을 새삼 실감했다.

지난주에는 벳푸 온천 축제에 다녀왔다.

일본 전역의 지부장들이 모여 두 팔 걷어붙이고 활약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주말마다 벳푸 관광 해설사로 활동하거나 공동온천 청소 봉사활동에 참여하는 이도 있었다.

그리고 다들 입을 모아 말했다. "지부장이 되니 더 열심히 하게 되더라고."


칼럼 관련 일러스트


당연하지만 자리에는 역할과 책임이 따른다. 책임을 진다는 건 자리의 무게를 짊어진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 원리를 역으로 이용하는 건 어떨까? 해내고 싶은 일에 스스로 감투를 만들어 쓰는 거다.

'야식 금지 운동본부장' '식물 살리기 협회장'처럼 무궁무진하게 응용이 가능하다. 그리고 주변에 널리 알리자.

이상한 사람 취급 받지 않겠냐고? 의외로 동지를 만나 재밌는 일을 도모할 수 있지 않을까?

혼자보단 여럿이 즐겁고, 비밀보단 선언이 성공 확률이 높으니까.

그래서 나부터 실천해보려고 한다. '매일 뭐라도 쓰기 협회장', 오늘부터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