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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신세] 500년 역사 스페인 투우 막았다…지금 유럽선 '동물당' 돌풍

바람아님 2019. 6. 30. 11:37
[중앙일보] 2019.05.25 05:00

[알쓸신세]“투표권 없는 동물 위해 정치”
포스터에 올빼미·강아지 내건 동물당 아시나요
유럽의회 선거서 11개국 연합 출사표


 
최근 스페인에서 조회 수 230만번을 기록하며 논란을 부른 영상이 있습니다. 투우 경기는 마지막에 투우사가 검으로 소를 찔러야 끝나는데 갑자기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황소의 눈물을 닦아주는 투우사 모습이 담긴 것이었지요. 4개의 창이 몸에 박힌 채 피를 흘리는 황소의 앞에 마주 선 투우사의 이 같은 행동에 “위선자”란 비난이 쏟아졌습니다. 목소리를 높인 이 가운데 한 명이 바로 실비아 바르케로 노갈레스 스페인 동물보호당(PACMA) 대표였는데요. 그는 “비뚤어진 마음을 가진 사람이기에 다리에 피가 쏟아질 때까지 소를 고문한 뒤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것”이라며 “동정심조차 없는 투우사”라고 비판했습니다.   
 
스페인에서 최근 논란이 된 투우사. 소를 죽이기 전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는 모습에 위선자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영국 데일리메일 캡처]

스페인에서 최근 논란이 된 투우사. 소를 죽이기 전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는 모습에 위선자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영국 데일리메일 캡처]

       
스페인만큼 동물 권리를 둘러싼 논쟁이 뜨거운 나라가 없을 텐데요. 최근엔 “투우장은 경기장이 아닌 고문장” “투우는 전통이 아니라 동물 학대” 등 투우를 금지하잔 요구가 빗발치고 있습니다. “투우를 비롯해 피가 동반되는 모든 형태의 행사를 끝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PACMA는 소수정당임에도 이런 흐름에 맞춰 존재력을 키우고 있지요. 동물 복지 천국답게 유럽에선 동물당에서 국회의원도 여럿 나옵니다. 동물 복지나 권리가 통상 시민단체나 사회운동가의 영역으로 여겨지는 한국과 다르지요.
 
PACMA 등 유럽 전역의 동물당들은 지난 23일(현지시간)부터 진행 중인 유럽의회 선거에도 출사표를 던졌다고 하는데요. 이번 [알쓸신세-알고 보면 쓸모 있는 신기한 세계뉴스]에선 투표권이 없는 동물을 대신해 정치하는 동물당들의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동물당 18개국서 등장…당과 의회에 동물친화 법안 압박 
 
“녹색당을 포함해 다른 모든 당은 인간의 복지에 초점을 맞춘다. 우리는 가장 강한 자의 권리에 대항해 가장 약한 자의 이익을 보호한다는 기본 원칙을 갖고 있다. 인간과 동물 모두의 이익에 봉사한다.” 
 
네덜란드 동물당(PvdD) 소속 유럽의회 의원인 안자 하제캠프가 지난달 4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모여 유럽 11개 동물당이 발표한 공동 마니페스토를 들고 서 있다. [스웨덴 동물당(Djurens Parti) 홈페이지]

네덜란드 동물당(PvdD) 소속 유럽의회 의원인 안자 하제캠프가 지난달 4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모여 유럽 11개 동물당이 발표한 공동 마니페스토를 들고 서 있다. [스웨덴 동물당(Djurens Parti) 홈페이지]

       
지난달 4일 PACMA와 네덜란드, 벨기에, 프랑스, 독일, 스페인, 포르투갈, 이탈리아 등의 동물당 11개가 벨기에 브뤼셀에 모여 이런 공동 마니페스토를 발표했습니다. 28개 회원국서 약 400개 정당, 5000명의 후보자가 751석을 놓고 다투는 유럽의회 선거에 당당히 도전장을 내민 건데요. 동물당이 선거에 참여하는 게 처음은 아니지만 이처럼 한꺼번에 11개의 동물당이 협심해 나선 적은 없었습니다.
 
무수한 정당들이 사람만을 위한 정책으로 목소리를 높일 때 이들은 선거 포스터에 올빼미, 강아지 등을 모델로 내세워 동물 권리를 주장합니다. 선거 운동이 한참이던 지난 20일 네덜란드 거리에 내걸린 16장의 선거 포스터 가운데 나비 로고를 새긴 포스터가 눈에 띄었는데요. 네덜란드 동물당(Partij voor de Dieren, PvdD)의 것이었습니다. 이미 유럽의회 의원을 배출한 전력이 있는 동물당의 원조 격으로 불리는 당이지요. 네덜란드는 이번에 25석을 할당받았는데 이를 놓고 싸우는 16개 정당 사이에 당당히 자리 잡으며 표심 공략에 나선 겁니다.  
 
지난 20일 네덜란드 거리에 내걸린 유럽의회 선거 출마 16개 정당의 선거 포스터. 나비 로고가 새겨진 게 네덜란드 동물당(PvdD)의 포스터다. [더치뉴스 캡처]

지난 20일 네덜란드 거리에 내걸린 유럽의회 선거 출마 16개 정당의 선거 포스터. 나비 로고가 새겨진 게 네덜란드 동물당(PvdD)의 포스터다. [더치뉴스 캡처]

       
PvdD는 동물 권리에 초점을 맞춘 의제로 의석을 확보한 세계 최초 정당이지요. 창당 당시에만 해도 다음엔 ‘식물당’이 나오는 것 아니냐는 비아냥이 잇따랐지만 무서운 속도로 세를 확장했습니다. 4년 만인 2006년 총선서 상원 2석, 하원 2석을 각각 차지해 원내에 진출하는 기념비적인 기록을 세웠지요. 현재 지역 의회까지 합치면 모두 50석 넘게 PvdD의 몫이라 합니다. 이번 유럽의회 선거에서도 1석을 더 차지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요. 다당제 국가인 만큼 의석수에 비해 상대적으로 큰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PvdD를 본보기로 삼아 2006년 등장한 영국의 동물복지당(Animal Welfare Party, AWP)은 “유럽의회에서 동물에 대한 정치적 대표성을 높이는 것이 동물의 권리를 위한 싸움과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중요한 단계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며 이번 선거에서 “유럽의회 소속 의원이 3배로 늘 것”이라는 자신감을 내비치기도 했습니다. 이 당의 제인 스미스는 노동당과 보수당 후보를 누르고 알세이저 타운 지역의 의석을 지켜 화제를 모은 바 있습니다.   
       
2015년 영국 동물복지당(AWP) 당수 바네사 허드슨이 버스를 타고 거리 연설을 하고 있다. [AWP 홈페이지]

2015년 영국 동물복지당(AWP) 당수 바네사 허드슨이 버스를 타고 거리 연설을 하고 있다. [AWP 홈페이지]

 
의원을 배출하는 등 정치권력을 직접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실 다른 당과 의회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자는 데 이들 목적이 있습니다. 다른 당들이 동물친화적인 법안을 내도록 압박하고 인사검증 당시 동물 권리 등의 가치관을 따지는 식이지요. 유권자에게 어젠다를 던져주는 역할도 합니다. AWP의 당수 바네사 허드슨은 지난 2017년 아이리시 뉴스에 “대중의 관심에도 불구하고 동물과 환경 문제가 정치적 의제의 정상에 오르는 일이 거의 없다”고 창당 이유를 밝히기도 했지요. “선거에 출마해 논쟁에 참여함으로써 주류 정치에서 무시되고 있는 이슈를 노출할 수 있다”는 겁니다.
 
15년 전에만 해도 전 세계에 하나뿐이던 동물당은 현재 유럽 외 미국과 캐나다, 호주, 아시아까지 모두 18개국서 생겨났습니다. 동물당이 모두 모인 동물정치협회는 정기적으로 총회를 열어 각종 사안을 논의하고 협력을 다지고 있지요. 
 
모피용 동물 사육 금지시키고 500년 투우 축제 끝내
유럽의회 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프랑스 동물당(Parti Animaliste)의 선거 포스터. [Parti Animaliste 홈페이지]

유럽의회 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프랑스 동물당(Parti Animaliste)의 선거 포스터.

[Parti Animaliste 홈페이지]

 
동물당들은 동물 실험을 폐지하고 동물 운송을 중단하며 동물 학대 처벌을 강화하기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PvdD는 국정 연설 때 ‘고기 없는 월요일’(Meat free Monday)이라 적힌 모자를 쓰고 탄피에 총알 대신 당근을 채우는 식의 퍼포먼스로 대중의 눈길을 끌기도 했지요.
 
PvdD의 경우 2014년 모피 생산을 위한 동물 사육을 금지하는 법안을 내 통과시키는 데 일등공신 역할을 했단 평가를 받습니다. 2015년엔 서커스에 동물 출연을 막고 트로피 헌팅(재미 삼아 동물을 선택적으로 사냥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을 발의했지요. 정부가 최우선 의제 중 하나로 육류 소비의 추가 감소를 들고 나선 게 첫 임기 4년의 가장 큰 성과라고 이들은 밝히기도 했습니다. 최근 유럽유대의회(EJC)에 따르면 네덜란드 헌법재판소가 종교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의견을 냈음에도 불구하고 PvdD는 종교적 도축법 금지안을 또다시 하원에 냈지요. 이슬람 할랄, 유대교 코셔에 따르면 가축은 완벽히 건강한 상태에서 목을 베는 식으로 도살돼야 하는데 죽이기 전 반드시 무의식 상태로 하게끔 제한을 둬야 한다는 게 이들 주장입니다. 
 
투우를 둘러싼 갑론을박이 한창인 스페인에선 지난 3월 대법원이 북서부 카스티야이레온 주에서 매년 9월 열리는 최대 투우 축제인 ‘토르 데 라 베가’를 결국 금지하라고 판결했는데요. 현지 언론은 500년 이상 이어진 고통을 종식시켰다며 PACMA의 역할이 컸던 것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독일 동물당(Partei Mensch Umwelt Tierschutz) 선거 포스터. [당 홈페이지]

독일 동물당(Partei Mensch Umwelt Tierschutz) 선거 포스터.

[당 홈페이지]

       
그렇다고 동물만을 위한 정당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이들이 추구하는 동물 복지는 결국 지속가능한 경제와 복지정책, 안전한 환경과 먹거리 보장 등 다양한 의제와도 맞물려 있기 때문이지요. PvdD가 동물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 사람에게 해를 끼치고 있다는 이유를 들어 자유시장과 자본주의 체제를 반대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PvdD는 현 기후법이 지구 평균기온 상승 폭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이내로 제한하자는 전 세계적 목표를 실현하는 데 불충분하다며 새 기후법안을 제출한다고 밝히기도 했지요. 영국의 AWP는 하드 브렉시트에 반대하며 대학 등록금 폐지에 발 벗고 나서는 등 사회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동물당의 주장이 다소 급진적임에도 호응을 얻을 수 있는  이유는 뭘까요. 세계적으로 펨펫족(family와 pet의 합성어)과 비건족이 크게 느는 등 동물 애호가들이 많아지며 동물 권리에 대한 인식이 향상된 게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폴리티코에 따르면 일부 동물당엔 주로 젊고 좌파 성향의 여성 지지층이 많다고 하는데요. 바르케로 노갈레스는 “수년간의 노력으로 동물권리와 환경주의에 대한 인식이 높아진 게 당의 모멘텀이 되었다”며 “정치단체로 우리를 신뢰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프랑스 동물당(Parti Animaliste)의 선거 포스터. [당 홈페이지]

프랑스 동물당(Parti Animaliste)의 선거 포스터. [당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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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수연 기자 ppangshu@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