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歷史·文化遺産

[이한상의 발굴 이야기] [69] 소가야의 왕족 무덤

바람아님 2019. 7. 4. 18:07

(조선일보 2019.05.08 이한상 대전대 역사문화학과 교수)


1983년 6월 경남 고성 송학동 1호분이 일본 고훈(古墳) 시대 특유의 무덤인 전방후원분(前方後圓墳)이라는 주장이

제기돼 한·일 두 나라 학자들 사이에서 뜨거운 논쟁이 벌어졌다.

한반도에 정말 일본 특유의 무덤이 분포하는지, 그것이 사실이라면 어떻게 보아야 할지가 주요 논점이었다.

근래까지 해남, 광주, 함평, 고창 등 호남 지방을 중심으로 전방후원분 14기가 확인되었다.

그 가운데 9기를 발굴한 결과 대부분 5세기 후반에서 6세기 초에 만든 것으로 밝혀졌다.

학계에선 매우 가까이 지낸 백제와 왜(倭) 사이의 특별한 관계를 보여주는 증거라 해석하고 있다.


말띠드리개, 송학동 1호분, 동아대 박물관.
말띠드리개, 송학동 1호분, 동아대 박물관.


전방후원분 논쟁을 불러온 송학동 1호분이 다시금 조명받은 것은 1999년 일이다.

그해 11월 15일 동아대박물관 조사단은 이 무덤에 대한 시굴 조사에 나섰다. 송학동 고분군 정비 공사에 앞서

정확한 무덤 구조를 확인해볼 셈이었다. 조사 결과는 애초 예상과 달랐다.

길이가 62.3m에 이르는 송학동 1호분은 한 무덤이 아니라 여러 무덤이 연접된 것이었다.


조사단은 유적 성격을 밝히기 위해 전면 발굴로 전환했다.

발굴을 모두 끝내고 보니 송학동 1호분 속에는 크고 작은 무덤이 17기나 들어 있었고 전방후원분은 아니었다.

가장 큰 석곽은 길이가 8.25m나 돼 소가야의 왕묘로 보아 무리가 없다. 도굴당했는데도 무덤 곳곳에서는 유물이

수백 점 쏟아졌다. 소가야 토기가 가장 많았지만 대가야 토기, 백제 청동 그릇, 신라 말띠드리개(杏葉)뿐만 아니라

바다 건너 왜에서 들여온 토기도 다수 섞여 있었다.


남해안이 한눈에 들어오는 언덕 위에 우뚝 솟아 있는 송학동 1호분은 고성에 자리 잡은 소가야(小伽倻) 왕과 그 일족의

무덤이었다. 고령의 대가야보다 작았기에 소가야라 하던 나라. 그 나라가 역사에 이름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무덤 속 다양한 국적의 유물이 보여주듯 바닷길을 장악하고 국제적 교역을 주도하였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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