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橫設竪設

[노트북을 열며] 외교 아닌 내교에 바쁜 한국

바람아님 2019. 7. 25. 09:26
중앙일보 2019.07.24. 00:43
전수진 국제외교안보팀 차장대우
가나스기 겐지(金杉憲治)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 국장을 지난 2월 25일 베트남 하노이의 모 호텔 식당에서 우연히 만났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을 목전에 둔 긴박한 때였다. 작전회의 중인 그에겐 쪽지가 연거푸 전달됐고, 그는 다양한 부처의 당국자 너댓명과 함께 의견을 교환했다. 딱 봐도 효율적인 회의 아우라가 풍겼다.


그와 만난 뒤 e메일을 보내자 곧 “(한·일) 관계도 잘 풀리길 바란다”는 망중한(忙中閑) 답장이 왔다. 그를 “제일 존경하는 선배”라고 칭한 외무성 실무 관료에게 여유의 근원을 물었다. “국장 본인의 능력도 뛰어나지만 가나스기 상은 혼자가 아니니까”라는 답이 돌아왔다. 총리 관저를 포함한 전 부처가 합심해 북핵 외교 최전선에 선 그를 지원한다는 뜻이었다. 가나스기 국장은 북핵뿐 아니라 한·일 관계에서도 실무 총책을 맡고 있다.

노트북을 열며 7/24
한·일 관계가 악화일로라는 표현조차 무색할 만큼 최악인 지금, 한국 외교는 어떤가. 외교의 명목상 수장인 장관은 단골 비판 소재가 된 지 오래다. 외교부 직원들은 변화의 쓰나미가 덮치는 것 아니냐며 동요한다. 청와대 고위관리가 “회의실이 공사 중”이라는 이유로 외교부로 와서 회의를 연다. 관계 부처와 기관이 통일된 목소리로 역할 분담을 해도 모자랄 판인데, 경쟁하고 견제하며 외교가 아닌 내교(內交)에만 여념이 없다. 외교 실패에서 시작된 망국의 역사를 되풀이할 셈인가.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를 위시해 경제산업성부터 외무성까지 똘똘 뭉친 일본을 이래서야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일본 정부는 새 연호인 ‘레이와(令和)’에 대해 “영어로는 ‘아름다운 조화(beautiful harmony)’”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한·일 관계에서 레이와 원년은 그 이름이 무색하다. 아베 정권 성토에만 열을 올릴 때가 아니다. 그게 그들의 속내이고, 그런 그들에게 일본 국민은 참의원 선거 압승을 안겼다. 한국에 지금 필요한 건 감정 아닌 냉정이다. 배 12척으로 나라를 지킨 기적을 칭송하는 감상에만 몸을 맡길 때는 아니다. 어떻게 하면 12만 척의 튼튼한 배를 건조할지 고민하고 실력을 키워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8일 “반일 감정은 갖고 있지 않다”고 언급한 것은 그래서 반갑다.


정치인들이 나라 걱정한다며 가끔 거론하는 백범 김구 선생의 말씀 중, “집안이 불화하면 망하고, 나라 안이 갈려서 싸우면 망한다”(『나의 소원』)가 있다. 김구 선생 말씀대로라면 지금 대한민국 외교는 누가 봐도 ‘폭망’ 각이다. 내분에 힘 빼지 말자. 일본 외무성엔 가나스기 국장 같은 이들이 차고 넘친다.


전수진 국제외교안보팀 차장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