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9.07.27 박성희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
'Voice of Korea'는 북한 선전방송… 조국의 SNS에 비친 한국 모습은 나라의 시계를 구한말로 돌려
시대에 걸맞은 당당함과 자유로움이 우리의 참모습… 이런 대한민국 알리는 게 진짜 PR
박성희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
'한국의 소리'를 영어로 구글에서 검색해보면 'The Voice of Korea'와 'Voice of Korea' 두 개가 뜬다.
관사가 붙은 전자는 네덜란드에서 시작된 포맷의 보컬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우리나라 케이블에서도
방송된 '보이스코리아'를 뜻하고,
미국의 VOA를 연상시키는 후자는, 놀랍게도, 북한의 '조선의 소리' 방송이다.
북한이 해외를 겨냥해 각국 언어로 제작한 선전 메시지가 'Voice of Korea'라는 간판을 달고
세계로 퍼져 나간다. 적어도 해외 검색 시장에서 대한민국의 목소리는 설 자리가 없어 보인다.
우리나라를 취재하는 외신 기자들은 KBS, YTN과 Arirang TV를 합친 무언가가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고 있다고 한다.
어디서 대한민국의 대표 목소리를 취재해야 할지, 어디 가나 다 조금씩 부족하다는 뜻일 게다.
그에 비해 일본 정부에서는 일본 주재 외신 기자들에게 잘 정리된 일본의 소식을 넉넉하게 정기적으로 공급해 선택의
즐거움까지 준다고 한다. 어느 나라 목소리가 더 정확하고 신속하게 글로벌 사회에 전달될지는 불 보듯 훤한 일이다.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로 한·일이 팽팽한 신경전을 하던 지난 22일 일본 정부는 도쿄 주재 한국 기자들만을 상대로
설명회를 열었다. 물론 자국의 입장을 전달하기 위함이다. 참석자 수를 1사 1인으로 한정하고 녹음을 금지한
이날 행사에는 언론사 특파원 10여명이 참석한 것으로 전해진다. 외무성과 경제산업성도 주요국 대사관 관계자들을 불러
설명회를 열었다. 일본 참의원 선거(21일) 다음 날이며, 세계무역기구(WTO) 일반이사회(23~24일)를 앞둔 시점이었다.
비슷한 시기 우리나라에서는 청와대 조국 민정수석의 페이스북 메시지가 연일 뉴스에 올랐다.
13일 '죽창가'로 운을 뗀 것을 시작으로 22일까지 40여 건의 메시지를 쏟아내며 '친일' '매국' 논란의 중심에 섰다.
그동안 우리 외교부와 산업통상자원부는 침묵한 듯했다.
논란이 거세지자 청와대는 "조 수석의 글은 청와대의 공식 입장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대한민국의 공식 목소리는 대체 어디서 누가 내고 있었을까.
조국 수석의 항일 페북 메시지는 나라의 시계를 일제강점기로 돌린 구한말의 목소리였다.
글로벌 아이돌에게 열광하는 요즘 세상에 누가 친일을 하며, 세금 내며 살기 바쁜 국민이 무슨 여력이 있어 나라를
팔아먹는단 말인가. 대한민국의 목소리라면 좀 더 시대에 걸맞게, 당당하고 자유로워야 했다. 일본을 향하기보다
우리 내부를 겨냥해 먼저 매섭게 입을 연 조국 수석은 자기 목소리로 대한민국의 목소리를 가로막은 죄가 막중하다.
국가적 위기인 요즘 공영방송 KBS는 뉴스 보도에 납득하기 어려운 방송 사고로 공론장을 어지럽히고, 수준 낮은 잡담 같은
프로그램으로 국민의 귀를 가린다. 차분하게 팩트를 보도하고, 골고루 다양한 대한민국의 소리를 모아 내보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대한민국보다 정파의 이익에 주파수를 맞추고 있다.
대한민국에는 특정 정파의 소리만 있는 것이 아니다.
국제사회에 호소할 대한민국의 목소리는 가령 이런 것이다.
대한민국은 동북아의 끝자락에 기적처럼 자리한 자유 민주 공화국이며, 대한민국은 평화를 사랑하며 자유무역 질서를
신봉하는 선진 마인드를 가진 나라다. 우리는 어떤 형태의 독재와 폭압에도 반대하며, 인권과 다양성을 존중하고,
높은 수준의 문화 의식을 향유한다. 국제 여론은 대한민국이 이런 보편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교양 국가로서
목소리를 낼 때 귀 기울이고 움직일 것이다.
우리가 그런 목소리를 가다듬고 내려면 실제 그런 나라가 되어야 한다.
그러는 과정에서 국제사회라는 유기체의 인지 속에 대한민국이 선하고 매력 있는 국가로 새겨질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과연 하나의 정돈된 나라로서 그런 일관되고 지속적인 메시지를 내보내고 있는가.
번드르르하게 청와대 행사를 포장하는 데 나랏돈을 쓸 게 아니라 국제사회에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모습을 알리는 데 세금을 쓸 일이다. 북한 눈치 보며 우리 언론을 침묵하게 하거나 왜곡시키지 말고 자유 언론의
모범을 보여 전 세계에 자유민주국가의 위상과 면모를 과시해야 한다. 그게 다름 아닌 국제 PR이다.
지금 정권은 북한과도, 일본과도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한다. 한·일 갈등도 국제 여론에 호소해 풀겠다고 한다.
그러자면 먼저 대한민국의 목소리부터 갖춰야 한다. 전략이나 실력은 그다음 문제다.
'時事論壇 > 핫 이슈' 카테고리의 다른 글
[특파원 칼럼] 미국의 우선순위와 대한민국/[특파원칼럼] 中만리장성박물관에 '한국'은 없다 (0) | 2019.07.29 |
---|---|
미·중 사이 한국은 누구 친구냐, 일본이 경고사격 날린 것 (0) | 2019.07.28 |
[이정민의 시선] “난들 왜 그런 생각 안했겠나”…DJ의 일침 (0) | 2019.07.27 |
<시평>'평화에 취한 군대'는 군대 아니다/광안리에 등장한 北군복·인공기..전대협 유튜브 중계에 경찰출동 (0) | 2019.07.26 |
[중앙시평] 이(理)의 한국, 법(法)의 일본 (0) | 2019.07.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