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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미국의 우선순위와 대한민국/[특파원칼럼] 中만리장성박물관에 '한국'은 없다

바람아님 2019. 7. 29. 08:34

[특파원 칼럼] 미국의 우선순위와 대한민국


서울경제 2019.07.28. 17:15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우리나라와 중국 등을 겨냥해 세계무역기구(WTO) 개발도상국 지위를 없애는 방안을 찾아내라고 지시한 무역대표부(USTR)는 경제 분야에서의 미국의 힘과 생각을 보여준다. 오롯이 미국 입장에서 미국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기관이다.


그런 USTR은 세계를 7곳으로 나눴다. 구체적으로 △아프리카 △중국, 몽골과 대만 △유럽과 중동 △남아시아와 중동아시아 △서반구(Western hemisphere·남미과 카리브해 국가) 등이다. 나머지 하나가 중국을 뺀 동아시아와 태평양 국가인데 USTR은 이를 △일본, 한국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로 표시한다.


흥미로운 것은 순서다. 일본이 우리에 앞선다. 경제적 중요성만 따지면 몽골과 대만이 중국을 따라갈 수 없듯 USTR 시각에서는 정도의 차이야 있겠지만 우리보다 일본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일본은 중국과 함께 미국의 ‘톱5’ 수출국이기도 하다(USTR은 홈페이지에 친절하게 이를 소개해놨는데 여기에 한국은 없다).


경제뿐일까. 지난달 나온 미 국방부의 인도태평양 전략보고서는 이 지역에서 미국의 압도적 우위를 유지하기 위한 방안 중 하나로 파트너십을 꼽았다. 그 파트너십 국가로 가장 먼저 등장하는 게 일본이다. 보고서는 일본을 ‘코너스톤(corner stone·주춧돌)’, 우리나라를 ‘린치핀(linchpin·마차나 자동차의 바퀴가 빠지지 않게 꼽는 핀)’으로 설명했다. 린치핀이 코너스톤보다 중요하다는 의견도 있지만 마차나 자동차보다는 집과 건물이 먼저다. 상식 아닌가.


27일(현지시간) 뉴욕에서 만난 한 고위인사는 “이곳에서 우리나라는 북한보다도 관심을 덜 받는다”며 “그냥 그렇고 그런 나라 중 하나”라고 했다. 일본의 경제보복에 대해서도 비슷한 얘기가 나온다. 뉴욕의 한 금융권 인사는 “미국의 묵인 없이는 될 수 없는 일”이라고 단언했다. 미국 입장에서는 여전히 우리보다 일본에 무게중심이 가 있다는 뜻이다. 원통하지만 그것이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역사는 이를 또렷이 보여준다. 1950년 1월 당시 국무장관 딘 애치슨은 알래스카-일본-오키나와를 잇는 미국의 태평양 방위선을 정했다. 우리나라는 뺐다. 하버드대에 몸담았던 어네스트 메이 전 교수가 쓴 ‘역사의 교훈’을 보면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직전까지도 한반도에서의 전투는 피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려놓고 있었다. 1905년 ‘가쓰라 태프트 밀약’을 통해 일본의 한국 지배에 동의한 것도 미국이었다. 당시 시어도어 루스벨트 미 대통령은 한국은 이 세상에서 가장 부패하고 무능한 정부의 나라이며, 일본은 입헌정치의 나라이자 지성과 활력, 활기가 넘치는 문명 국민이라고 추어올렸다. 그만큼 미국과 일본의 관계는 굳고 단단하다.


정부가 대한민국 국력의 좌표를 아는지 걱정스럽다. 우리 정부는 일본의 경제보복에 ‘극일(克日)’을 내세우고 있지만 일본은 그렇게 간단한 나라가 아니다. 인정하기 싫지만 70여년 전에 이미 항공모함과 전투기를 만들었던 국가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일 갈등 중재와 관련해 “둘 다 원하면 관여할 것”이라며 사실상 관여하지 않겠다고 말한(일본이 미국에 중재를 요청할 일은 없다) 배경에도 일본과 미국의 끈끈한 관계가 있다. 아베가 ‘푸들 외교’라는 모욕적인 말을 들으면서까지 미국에 다가가는 이유다.


정부가 힘의 좌표를 모르는 듯한 근거는 더 있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발언에 “(우리가) 동의하지 않으면 재협상은 없다”고 호기를 부렸다. 결과는 어땠나. 협상은 시작됐고 미국은 우리나라로부터 환율개입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일방적으로 발표해버렸다. 한미 관계에서 미국은 점차 강해지고 있고 우리는 미국에 매달리는 중이다.


굴종해야 한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나의 힘과 상대방의 의도를 정확히 알아야 맞춤형 외교와 대응이 나온다. 외교통상 라인을 뿌리부터 다시 점검해볼 때다.

/susop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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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칼럼] 中만리장성박물관에 '한국'은 없다

서울경제 2019.07.14. 17:07

중국의 만리장성 유적 가운데 관광객이 가장 많은 베이징 팔달령장성에는 ‘중국장성박물관’이 있다. 중국 내 최대규모로 만리장성 관련 역사유물을 모아놓은 곳이다. 지난주 이곳에 들렀다가 불편한 상황에 부딪혔다. ‘요녕단동(랴오닝단둥)호산명대장성’이라는 사진의 설명을 보니 ‘호산성’이 명나라 시기 만리장성의 동쪽 기점 역할을 했다는 게 아닌가.


이는 역사적 사실이 아니다. 이른바 호산성 지역은 고구려 성곽인 박작성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압록강 북쪽에 붙은 박작성은 고구려 수도인 국내성을 방어하는 핵심 시설이었다. 때문에 성벽도 견고했고 오래 견뎠을 것이다. 이후 만주가 중국령이 되면서 고구려성은 중국성으로 전락했다. 만일 호산성이 장성의 역할을 했다면 반드시 주위의 다른 성으로 성벽이 이어져야 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누구도 호산성에서 뻗어 나간 성벽을 발견하지 못했다. 현재 성곽은 현대 중국풍으로 대대적으로 수리된 것이다. 유적이 중국 영토에 있어 한국의 학자들은 변변히 항의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만리장성박물관에서 우리를 화나게 하는 것은 이것뿐이 아니다. 박물관에는 만리장성과 관련한 네 종류의 중국 역사지도가 있다. 앞선 시기부터 진·한·남북조(북주)·명나라 지도다. 이 중 전체 지도가 게시된 진·한·북주의 만리장성은 터무니없이 북쪽으로 올라가 만주까지 이어진 것으로 돼 있는데 정작 조선·고구려의 이름이 없다. 대신 선비족이나 거란족이 만주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온다.


더 기이한 것은 명나라 시기의 지도다. 현재 중국 북부지방에 남아 있는 만리장성 유적은 명나라 때 몽골·만주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만든 것이다. 명나라 만리장성의 동쪽 끝은 허베이성 친황다오의 ‘산해관’이다. 산해관에 붙은 ‘천하제일관’ 현판은 중국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호산성이 만리장성 동쪽 끝이라고 주장하는 박물관 측으로서는 명나라 시기의 장성을 곧이곧대로 그릴 수 없었을 것이다. 박물관에 보관된 명나라 시기의 만리장성 지도에는 베이징 인근 부분만 나온다.


중국 중앙방송(CCTV)에서 방영하는 ‘백가강단’ 가운데 최근 나온 ‘수·당나라 흥망’ 프로그램도 논란거리다. 중국 내 한 대학의 고대사 교수가 수·당의 역사를 재미있게 풀이한 이 프로그램에서 첫 시간은 ‘수나라의 건국과 멸망, 당나라의 성장’에 할애됐다. 수나라 왕조가 39년 만에 멸망한 것은 ‘살수대첩’ 등 고구려원정 실패에서 비롯된 것은 중국 역사학계에서도 인정한다. 그런데 이 강의에서 고구려라는 이름은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교수는 수나라의 고구려침략에서 목적어는 빼고 ‘요동원정’이라고만 했다. 새로운 형태의 왜곡 시도인 셈이다.


한국 관련 역사적 사실에 대한 중국의 왜곡은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최근에는 강원도 화천군·양구군에 있는 파로호의 이름을 바꾸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파로호는 ‘오랑캐를 무찌른 호수’라는 이름으로 한국전쟁 때 국군이 중공군 대군을 격파한 곳이다. 오랑캐라는 호칭을 중국인관광객(유커)들이 싫어한다는 것이 중국 측 주장이다.


이러한 사실들을 보면 지난 2017년 4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미국 플로리다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말했다고 전해지는 “역사적으로 한국(Korea)은 중국의 일부(a part of China)였다”는 말이 사실일 가능성이 커진다. 적지 않는 중국인들이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요즘 중국 정부나 방송에서 과거 중공군의 한국전쟁 참전을 ‘항미원조’ 이미지로 띄우는 것도 섬뜩하다. 중국인들로서는 과거 미국에 맞서 실제 전투를 벌인 것처럼 무역전쟁에서도 굴복하자는 의미겠지만 한국 입장에서는 침략전쟁에 대한 미화에 다름 아니다.


한중 관계가 어려워지는 것에는 중국의 역사 왜곡이 주요한 이유가 되고 있다. 아쉽게도 우리 정부가 이러한 역사 왜곡에 엄중히 항의를 했다거나 시정을 요구한다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고 있다. 시민단체에서도 일본의 역사 왜곡에 대해서는 촉각을 세우는 반면 중국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무감각하다.


역사 왜곡 측면에서는 일본보다 중국이 미치는 악영향이 더 크다. 중국의 경제력·정치력이 성장하면서 대외적인 파급력이 점점 확대되기 때문이다. 역사에도 상호존중과 상호주의 원칙이 필요하다. /chsms@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