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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 라이프] 다이애나를 잊지 못하는 파리

바람아님 2019. 7. 30. 08:37
조선일보 2019.07.29. 03:11
손진석 파리특파원

파리 중심부에서 센강 북단을 따라 서쪽으로 자동차를 몰다 보면 '알마(Alma) 터널'이라는 곳을 지난다. 터널 안 지하 구간으로 접어들면 중앙 분리대 역할을 하는 기둥이 줄지어 있다. 그중 13번째 기둥을 영국 왕실의 다이애나 왕세자빈을 태운 벤츠 승용차가 들이받았다. 1997년 8월 31일 새벽이었다. 그녀는 파란만장한 서른여섯 삶을 이날 파리에서 마감했다.

사고 발생 지점의 지상에는 '자유의 불꽃(Flamme de la Liberté)'이라는 높이 3.5m짜리 황금색 조형물이 있다. 지난 25일 해 질 녘 이곳을 지나며 지켜봤더니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파리 시민과 관광객 20여명이 둘러싸고 있었다. 이들은 조형물 주위에 붙어 있는 다이애나의 사진들을 유심히 지켜보는 중이었다. 그녀가 젊었을 때 활짝 웃는 모습, 두 아들 윌리엄·해리 왕손과 즐거워하던 장면 등을 담은 수십장의 사진이 '자유의 불꽃' 주변을 두르고 있다. 그녀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갖다 놓은 것이다. 석양에 비친 사진들을 내려다보던 파스칼이라는 40대 남성은 "이곳을 지날 때 자꾸 사진을 보게 된다"며 "이유를 꼭 찍어 이야기하기 어려운데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22년이 지났지만 다이애나의 생일이나 그녀가 세상을 떠난 날이 되면 사람들은 '자유의 불꽃' 앞에 꽃다발을 살며시 놓고 간다. '생일 축하해요' '당신이 그립습니다' 같은 프랑스어 쪽지가 여기저기 붙어 있다. '자유의 불꽃'은 미국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이 들고 있는 횃불을 똑같은 크기로 만들어 1989년 설치한 것이다. 미국·프랑스 간 우호를 다지는 의미로 세워졌다. 하지만 이제는 다이애나를 추모하는 공간으로 사실상 역할이 바뀌었다. 근처 카페의 한 종업원은 "다이애나를 기리기 위해 그녀의 사후에 '자유의 불꽃'을 만든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라고 했다.

다이애나 영국 왕세자빈이 사고로 별세한 지점의 지상에 세워진 프랑스 파리 '자유의 불꽃'(왼쪽). 알마 터널의 13번째 기둥에는 한 거리예술가가 다이애나 빈의 초상화를 그렸다. /라디오프랑스·7nuit 인스타그램

다이애나를 향한 쉼없는 추모 열기는 파리시를 움직였다. 지난 5월 파리시는 '자유의 불꽃'이 있는 장소 이름을 '웨일스 공작부인 다이애나 광장'으로 바꾸기로 결정하고 시의회와 함께 절차를 밟고 있다. 원래 다이애나가 숨지기 한 달 전 파리시는 이탈리아 출신 세계적인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1923~1977)의 이름을 따서 '마리아 칼라스 광장'이라고 이름 지었다. 하지만 이 일대가 다이애나를 위한 공간이 되자 22년 만에 이름을 바꾸기로 한 것이다. 안 이달고 파리시장은 "다이애나는 인류를 사랑한 아름다운 여성이었다"고 했다.

'7nuit'라는 예명으로 파리에서 활동하는 35세의 거리 예술가는 작년 7월 다이애나가 사고를 당한 알마 터널의 13번째 기둥에 그녀의 초상화를 그려 놓았다. 7nuit는 일간 르파리지앵 인터뷰에서 "차량 통행이 뜸한 새벽 4시에 찾아가 그리고 돌아왔다"며 "우리 어머니가 다이애나를 무척 좋아했다"고 했다.

다이애나는 왜 아직도 파리지앵들의 가슴속에 남아 있을까.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30대 남성 미카엘 마스는 "프랑스는 왕실이 없기 때문에 대신 영국 왕실에 애착을 갖고 있는 사람이 제법 있다"고 했다. '자유의 불꽃' 앞에서 만난 베로니크라는 50대 여성은 이렇게 이야기했다. "다이애나가 생전에 파리를 자주 찾아왔고 파리에서 생을 마쳤어요. 그녀가 파리를 사랑한 만큼 파리 사람들도 그녀를 사랑하는 것 아닐까요."

손진석 파리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