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2019.08.02. 20:55
“왜 이렇게 오래 걸렸어? 여기도 기계로 해야 해?”
“무인계산대나 휴대전화 주문을 배우긴 해야 해. 근데 배우면 뭐해? 돌아서면 까먹는데….”
“말도 마. 해외는 더해. 얼마 전에 애들이 해외여행 보내줬는데 공항에서 짐을 우리가 직접 부치래. 내가 영어가 돼? 기계를 다룰 줄 알아? 한참 헤매고 있으니까 기다리는 줄은 길어지고 눈치 보이더라고. 늙으면 해외여행도 가면 안 돼.”
“해외는 가끔 가잖아. 난 지난달에 서울역에 표 사러 갔는데 기껏 30분 줄 서서 기다렸더니 표가 매진이야. 근데 줄 선 사람들을 보니 죄다 나 같은 늙은이뿐이야. 젊은 애들은 기계로 하거나 휴대전화로 다 해. 내가 줄 선 동안에 젊은 애들은 휴대전화로 1분 만에 표를 구하니 어떻게 당하겠어.”
지난 주말 비를 피해 들어간 한 커피숍에서 60∼70대로 보이는 어르신 5명이 옆자리에 앉으면서 나눈 대화다. 먼저 자리를 잡고 기다리던 노인이 커피 주문한 사람에게 늦었다며 시작한 타박은 예상치 못하게 ‘키오스크’에 대한 성토로 이어졌다.
인건비 절감, 스마트시스템 도입 등을 이유로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 마트, 백화점, 음식점, 기차역, 공항 등에 무인계산대가 늘어나면서,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노인들의 한탄이었다. 그 와중에 ‘키오스크 뽀개기’같이 독학으로 익힌 햄버거 주문 비법을 전수하는 사람도 있었고, 딸에게 부탁하면 살갑게 도와준다는 고슴도치 자식 자랑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키오스크 하나로 한 시간을 떠들어도 대화가 끝나지 않는 노인층과 달리 젊은이들에게 이런 ‘언택트(Untact)’ 트렌드는 편리함의 상징이다. 부정을 뜻하는 ‘언(un)’과 ‘콘택트(contact)’를 합친 단어인 언택트는 무인계산대와 VR 쇼핑 등 판매원과 접촉하지 않는 비대면 방식을 모두 포함한다. 인터넷 비교 검색을 통해 제품정보를 확인한 젊은 층은 매장에서 자신을 따라다니는 영업사원의 ‘무언의 압박’ 없이 쇼핑하는 것을 더 선호하기 때문에 언택트는 갈수록 확대하는 추세다. 같은 상황을 놓고 신구 세대의 반응은 이렇게 다르다.
기술의 진보에 따른 환경·문화적 변화와 그에 따른 특정 세대, 특히 노년층의 퇴보는 어쩌면 당연한 역사적인 과정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최근의 변화의 속도는 너무 빠르다. 승차공유서비스 ‘타다’처럼 조금이라도 기술이 개입되면 이용자의 90% 이상이 젊은층인 게 현실이다.
기술 진보를 되돌리거나 속도를 늦추자는 게 아니다.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낙오자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에 대한 얘기다. 무인계산대 앞에서 우물쭈물하는 노인층 뒤에 줄을 선 젊은층의 시선이 ‘노인과 바다’의 노인이 견뎌야 했던 경멸은 아니지 않아야 하겠는가. 실버세대에게 빠르게 변하는 이 시대는 어쩌면 거대한 자연보다 더 강한 어드벤처를 선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영화 제목으로만 남아야 한다.
정진수 문화체육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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