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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현의 문학산책] 이육사 시인의 '청포도'는 언제 다 익을까

바람아님 2019. 8. 2. 08:44

조선일보 2019.08.01. 03:12


이육사 詩 '청포도'.. '내 고장'은 조선, '청포도'는 우리 민족
새 문명·문물 접하며 성숙해가는 민족의 모습 담아
지금의 우리, 시인의 소망만큼 '익은 청포도' 됐을까
박해현 문학전문기자
항일 투사였던 이육사(1904~1944) 시인의 대표작을 꼽으라면 시 '청포도'를 빼놓을 수 없다.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이라며 시작한 시는 1939년 '문장'지에 발표됐다.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라는 시행에서 '이 마을'은 시인의 고향 경북 안동군 도산면 원천리를 떠올리게 한다. 시인이 살던 시대엔 '원촌동'으로 불렸다. 그런데 시인은 어릴 때 포도를 본 적이 없었다. 당시 포도는 귀한 외래 문물이었다. 시인은 어찌하여 '내 고장'에서 익은 적이 없는 청포도를 노래했을까.

이육사 연구자들에 따르면, 일본인이 1930년대 포항에 세운 미쓰와(三輪)포도원이 시인에게 시상(詩想)을 안겨줬다고 한다. 시인이 그 포도원을 방문했다는 기록도 있다. 오늘날 포도원 자리는 해병대 영내에 들어가 있다. 혹시 일본인 포도원에서 영감을 얻은 시라고 해서 일제 잔재로 매도되는 것은 아닐까. 일부 지역에서 지나친 일제 청산 운동이 벌어지다보니 엉뚱한 걱정도 하게 된다. 하지만 시인이 친구에게 '청포도'의 민족정신을 설명해줬다는 증언이 있다. "'내 고장'은 '조선'이고, '청포도'는 우리 민족인데, 청포도가 익어가는 것처럼 우리 민족이 익어간다. 그리고 일본도 끝장난다."

도진순 창원대 사학과 교수는 연구서 '강철로 된 무지개'(2017년)에서 시 '청포도'에 담긴 시인의 뜻을 폭넓게 해석했다. 시인이 쓴 '내 고장'을 시인의 고향으로만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의 '전통적 향수'라기보다는, 전통이 새로운 문물 및 문명과 결합하여 변화 성숙해가는 모습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라고 했다. 시인이 '조선'에서 전반적으로 일어나는 변화를 포도가 익어가는 과정에 비유해 그 결실의 계절을 상상한 것은 조국 광복이 자연의 순리(順理)이자 문명의 정도(正道)라고 표현한 셈이다. 시인은 신념을 굳히는 데 그치지 않고 역사의 진리는 아름다운 것이라고 노래했다.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이란 시행은 청색과 흰색이 어우러진 서정적 이상향을 절로 떠올리게 한다.

일러스트=양진경

이어서 시인은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靑袍)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라고 소망했다. 시인과 가까웠던 평론가 백철의 회고에 따르면, 어느 날 일본 헌병이 찾아와 그 시를 가리키면서 "여기서 말하는 귀인(貴人)은 누구인가"라고 물었다고 한다. 여러 차례 항일 투쟁으로 옥고를 치른 시인을 향해 일제는 늘 감시의 눈초리를 놓지 않았다. 시인은 서정의 언어로 저항의 노래를 지으면 더 널리 퍼질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일제는 나름 그 의도를 눈치챘던 듯하다. 동독 정권이 반체제 시인을 감시하면서 작성한 비밀 파일 이름이 '서정시'였다고 한 사실을 생각해보면, 아무리 강고한 권력이라도 연약한 서정시의 파급력을 무서워하는 게 동서고금의 공통 현상인가 보다.

그런 맥락에서 이육사의 시 '절정'(1940년)의 마지막 시행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보다' 역시 서정의 힘을 느끼게 한다. '강철로 된 무지개'는 유치환 시인이 시 '깃발'에 등장시킨 '소리 없는 아우성'처럼 시인들이 즐겨 쓰는 모순어법의 산물이다. '강철'은 단단한 고체인데, '무지개'는 부드러운 공기 속 물방울의 빛으로 이뤄졌으니, 두 물질은 상반된 이미지로 충돌한다. 이 시에서 '강철'이 무장 투쟁의 '칼'을 뜻한다고 하면, '무지개'는 생뚱맞아 보인다. 하지만 시인의 깊은 뜻은 우리 민족이 '겨울' 같은 시련을 견디면서 벼리는 '칼'이 무력뿐 아니라 '무지개'처럼 유연하고 다양한 실력도 갖추길 바란 것은 아닐까.

요즘 한·일 관계가 최악이다. 외교 안보와 법학, 경제 분야의 여러 전문가가 지적한 대로 해법이 간단하지 않다. 정권 실세와 여당이 일본에 맞서 '죽창가'를 부르고 '12척 거북선'을 외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성숙한 국가 지도층의 모습이 아니다. '청포도가 익어가는 것처럼 우리 민족이 익어간다'고 이육사가 예견한 대로 광복은 찾아왔지만, 현재 우리 사회가 과연 시인의 소망만큼 '익은 청포도'가 됐는지 의문이 든다. 정권이 입맛대로 편 가르기를 부추기는 것은 풋포도를 씹는 듯한 역겨움을 느끼게 한다.


시인은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이라고 했건만, 요즘 설익은 반일(反日) 강경론으로 정치적 이득을 보려는 세력의 타액(唾液)이 나라를 적신다.



박해현 문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