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9.08.03 김신영 경제부 차장)
동의하지 않으면 利敵… '토왜' '부왜' 프레임 씌워 적개심을 양분으로 편 가르는 '386'이 싫다
김신영 경제부 차장
결국 여기까지 왔다. 일본이 결국 2일 한국을 수출 심사 우대국에서 빼기로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일본과 단호히 맞서 싸울 것이니 국민도 단합해달라고 당부했다.
동의하고 지지한다. 치밀하고 성숙한 전략으로 맞섰으면 한다.
그런데 우리가 일본과 본격적인 싸움에 나서기도 전에 기운을 빼는 세력이 있다.
우리 안에서 편을 가르고 '친일(親日)'이라고 손가락질하는 내부 분쟁 유발자들이다.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이 자유 민주주의의 기본 전제라고 배웠다.
꽤 자유롭게 살아온 X세대 출신인 나는 그러나 요즘 난생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생각을 강요당한다는 기분이 들어 께름칙하다.
힘 모아도 버거울 싸움이 앞에 있는 와중에 대통령의 측근인 조국 전 민정수석이 연일 쏟아내는 이분법적 편가르기 발언은
맥이 빠지게 한다.
애국인지 이적인지를 밝히라고 지난달 페이스북에 윽박지르던 그는 2일에도 호통을 쳤다.
일본이 나쁘지만 정부 잘못도 있다고 지적하는 양비론이 '한심한 작태'이며 일본 불매운동을 지지하지 않는 행동은
'독립군에 대한 냉소'와 다름없단다. 애국 혹은 이적, 피(彼)와 아(我) 둘 가운데 무엇인지 확실히 정하라고
우리는 그에게 강요당한다. 도덕적 우월감을 내세워 '우리만 옳다'고 우기는 운동권 시절 습관이 생각에 밴 모양이다.
나는 일본에 분노한다.
그러나 한편으론 사태가 이 지경이 되기 전에 우리 정부도 좀 더 노련하게 대처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불매운동이 한·일을 막론하고 선량한 일반 시민의 밥그릇은 위협하지 않았으면 하고 바란다.
이런 나는 한심한 작태를 보이면서 독립군을 냉소하는 자인가.
그런 잣대를 의식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자유 민주국가 시민으로서 모욕감을 느끼게 한다.
일본에 맞서자는 우리의 결기와 정부에 대한 지지가, 정부를 비판하면 친일 낙인을 찍어도 된다는 권리를 집권 세력에
부여하지는 않는다.
자유주의 옹호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는 '노예의 길'에 이런 단순한 편 가르기가 집단주의 태동에 얼마나 결정적
역할을 하는지를 정교하게 풀어썼다. '사람들은 긍정적 과제보다는 적에 대한 혐오 같은 부정적 강령에 더 쉽게 합의한다.
우리와 그들 사이의 대립, 우리가 아닌 자들에 대한 공동 투쟁은 집단을 견고하게 묶는 (집단주의) 신조에 필수적으로
들어 있다.' 뻔한 적을 정해두고 반대파를 '그들과 한편'이라고 몰아붙이는 전략은 단순하고 잘 먹힌다.
정치인들이 좋아한다.
하지만 이 비기(�器)는 광신적 전체주의로 향할 가능성이 크다. 하이에크가 절규하듯 적고 있다.
일본과 겨루기도 힘든데, 이분법적으로 국민 편을 가르려는 자들이 있다는 현실이 침울하다.
공영방송은 일간지가 일본 외무상을 인터뷰했다고 '부왜(附倭)'란 괴상한 말로 공격해댄다.
'토착 왜구'란 말을 아무렇지 않게 쓰면서 일본 사태가 총선 호재라며 흐뭇해하는 여당도 제정신이 아니다.
한 30대 교사가 페이스북에 적은 글을 옮긴다.
"어느 법학 교수는 참으로 지독한 말글을 며칠간 남겼다. 정말 서글펐던 줄글이었다.
자신들의 행실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을 이적이라는 극히 폭력적인 코멘트로 쏘아붙일 때 나는 좌절했다.
항상 궁금하다. 대체 저분들은 80년대의 대학 동아리방에서 뭐 어떤 지독한 공기를 들이마셨던 걸까."
일본만이 아니다. 북한·러시아·중국 같이 한국을 건드리는 나라가 여럿이다.
한국이 우범지대냐는 한탄까지 나온다. 단합해서 현명하게 풀어야 할 문제가 너무 많다.
적개심을 양분으로 삼는 '386 운동권 세대'의 뻔한 편 가르기 초식(招式)은 접어둘 때도 되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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