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9.08.06 정권현 논설위원)
그제 TV 방송들이 도쿄에서 벌어진 '아베 정권 반대' 집회를 일제히 주요 뉴스로 내보냈다.
한 방송은 "일본 도쿄 최대 중심가인 신주쿠역 광장에서 아베 규탄 집회가 열렸다"
"시민들은 맹렬한 폭염 속에서도 아베 정권의 외교적 폭주를 방치해선 안 된다며 '정권 타도' 구호까지 외쳤다"는 등의
리포트와 함께 현장을 중계했다. 다른 TV는 "일본 정부가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한 후 벌어진 첫 시위"라고 했다.
이런 뉴스를 보고 일본 국내에서도 아베 비판 여론이 만만치 않고, 한국을 편드는 정치인과 지식층이
제법 되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작 일본에선 이날 집회 소식을 주요 신문이나 TV에서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
주말을 맞아 열린 수많은 시위 중 하나였을 뿐 참석자도 200명 정도였다고 한다.
대다수 일본 국민은 이런 집회가 열렸다는 것도 모를 것 같다.
우리 언론이 크게 보도한 '양심적 일본 지식인 77명'의 수출 규제 철회 서명운동도
일본 신문에서 단 한 줄 소개된 적 없다고 한다.
▶'화이트 리스트'에서 한국이 제외된 날 우리 국내 방송들은 물론이고 신문들도 '결국 방아쇠 당긴 아베'
'귀 닫은 아베' 등의 표현으로 일본 측 조치를 비판했다.
이에 비해 아사히·요미우리·마이니치·니혼게이자이 등 일본 신문들은 '한국 화이트 국가 제외 각의 결정'이란 제목뿐이었다.
'전쟁'에 나서는 나라의 언론 같은 격정적 제목은 찾아볼 수 없다.
▶논조만 그런 것이 아니라 한·일 관계 보도 자체가 우리보다 적다.
일본 신문 기사 검색 시스템에서 '한국' '수출 규제'라는 검색어로 확인해보니 아사히·요미우리·마이니치·니혼게이자이 등
주요 일간지에 보도된 관련 기사는 지난달 1일부터 지금까지 70~90건으로 한국 언론의 3분 1 정도였다.
그것도 한·일 양국 지방자치단체 간 교류가 중단됐다는 기사가 가장 많았다. 관련 기사가 1면에 등장한 것도 3~5차례에 불
과했다. 관련 사설은 아사히·요미우리가 세 차례 게재했고, 경제 신문인 니혼게이자이도 다섯 차례였다.
▶우리 언론만 접한 사람들은 세계 여론은 한국 편이고 일본에서도 그런 기류가 활발히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
생각할 수 있다. 실제로 일부 외신은 일본에 비판적이다. 국제 여론을 우리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설득해나가는 것은
필요하다. 하지만 세계가 한국을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식이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물 안에서 우리끼리 좋아하고 만세 부른다고 이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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