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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정치 하시라"···조국 사퇴 운동 나선 서울대 학생들/[특파원 리포트] 앙가주망의 뜻을 아는가

바람아님 2019. 8. 4. 09:48

"그냥 정치 하시라"···조국 사퇴 운동 나선 서울대 학생들

[중앙일보] 2019.08.03 14:18


 보수 성향 서울대 재학생들이 서울대로 복직한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에 대해 사퇴를 촉구하고 나섰다.
 
[서울대트루스포럼 페이스북]

[서울대트루스포럼 페이스북]

       
]‘서울대 트루스 포럼’은 2일 페이스북에 “조국 교수님의 사퇴를 촉구하는 서울대인 모임을 결성한다”고 밝혔다. 포럼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대자보를 교내 곳곳에 게시하고, 온라인에서 참가 신청을 받고 있다.
 

포럼은 ‘조국 교수님, 그냥 정치를 하시기 바랍니다’란 제목의 글에서 “교수가 정치권과 관계를 맺거나 정치인으로 변신하는 경우에도 지켜야 할 금도는 있다“며 ”폴리페서를 스스로 비판하신 교수님께서 자신에 대해 그렇게 관대하시니 놀랍다“고 비판했다. 
          
[서울대트루스포럼 페이스북]

[서울대트루스포럼 페이스북]

 
포럼은 “사노맹(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 사건에 가담하셨던 교수님께서 아직도 죽창가를 운운하고 한일기본관계조약에 대해 교수님과 다른 의견을 갖는 분들을 친일파로 매도하며 반일 선동에 앞장서는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대한민국은 친일파가 미국에 빌붙어 세운 부정한 나라고 자본주의는 1%가 99%를 착취하는 시스템이라는 지극히 편협하고 위험한 역사 인식을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다”며 “이제 교직은 내려두시고 정치를 하시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스스로 사퇴하지 않는다면 뜻을 함께하는 재학생 동문들과 함께 적절한 대응을 준비하겠다”며 “맞으면서 가시려거든 교수님을 향한 실망과 우려와 비판이 어느 정도인지 명확히 확인하고 가시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서울대트루스포럼 페이스북]

[서울대트루스포럼 페이스북]

 
앞서 조 전 수석은 1일 자신의 서울대 복직을 비판하는 언론 보도와 관련해 “맞으면서 가겠다”고 말했다. 또 “내 거취는 법률과 서울대 학칙에 따라 결정할 것”이라며 “앙가주망(사회참여)은 지식인과 학자의 도덕적 의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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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인영 기자 chu.i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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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리포트] 앙가주망의 뜻을 아는가

조선일보 2019.08.03. 03:10
 

조국 서울대 교수가 청와대 민정수석을 맡았던 걸 '앙가주망(engagement)'으로 표현했다는 소식에 지난해 파리 시내에서 만난 프랑스 소설가 알렉시 제니가 떠올랐다. 고등학교 생물 교사였던 제니는 마흔여덟이던 2011년 첫 소설을 출간했다. '프랑스식 전쟁술'이란 그의 작품은 '사고'를 쳤다. 프랑스 최고 권위 문학상인 공쿠르상을 받았다.

제니는 1950년대 독립을 요구하는 알제리에서 프랑스군이 8년에 걸쳐 100만명을 죽인 알제리 전쟁을 섬뜩할 정도로 구체화했다. 그는 "프랑스 지식인들이 알제리 전쟁을 현대사의 치부로 여겨 입을 다무는 금기에 도전했다"며 "알제리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편견을 깨뜨려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꿔보려 했던 것"이라고 했다.

앙가주망이란 지식인의 적극적 사회 참여를 말한다. 제니처럼 부조리한 현실에 맞선 용기와 고뇌가 필요하다. 개념을 구체화한 사람은 장 폴 사르트르다. 스스로를 사회 속에 던져 넣는 '자기 구속'으로 지성의 역할을 다하는 것이 앙가주망이라 했다. 자유와 진실을 억압하는 압제에 맞서 부당함을 바로잡자고 호소해야 앙가주망이다. 사익은 배제해야 빛난다. 문호 에밀 졸라는 1898년 유대인이란 이유로 간첩 누명을 쓰고 종신형을 받은 드레퓌스 대위를 위해 '나는 고발한다(J'accuse)'는 글을 썼다. 작가로서 얻은 명성을 군부를 고발하는 데 쓴 자기희생이 있었다. 프랑스 사회에 울림이 컸고, 드레퓌스는 풀려났다. 앙가주망의 표본이다.

조 교수는 "평생 연구 작업을 실천에 옮기는 것과 다르지 않다"며 스스로 앙가주망을 실천했다고 했다. 그러나 학자가 권력이 주는 자리를 얻어 공부한 걸 써먹었다고 해서 앙가주망이 될 수는 없다. 아전인수이자 자아도취다. 조 교수는 힘에 맞서지 않았고, 반대로 힘을 행사하는 일을 했다. 민정수석이라는 사정 기관과 대통령을 이어주는 길목에 선 사람이다. 감투와 권세를 등에 업은 것이 지식인의 양심 어린 행동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의아하다. 앙가주망 실천이 목표였다면 관직을 맡기보다 학자로 머무르는 것이 오히려 운신 폭을 넓혀주는 것 아닌가.

졸라가 드레퓌스를 구하는 글을 썼듯 앙가주망을 실천하려면 손해를 무릅쓰는 선도적 제언으로 사회에 경종을 울려야 한다. 조 교수처럼 무대에서 영화를 누리고 퇴장할 때 그동안의 행보를 정당화하기 위해 편의상 동원하는 용어가 앙가주망이 될 수는 없다. 보수 성향인 다른 교수가 후일 청와대 수석을 맡으면 조 교수는 그때도 앙가주망이라며 찬사를 보낼 수 있을까. 똑같이 현실 정치에 참여했지만 다른 이들은 '폴리페서'이고 자신은 앙가주망을 실천한 주인공이라는 이중성에 실소를 금할 수 없다. 교수가 고관대작을 꿰찬 걸 앙가주망이라며 자화자찬했다는 걸 알면 지하의 사르트르가 통탄할지도 모른다.


손진석 파리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