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歷史·文化遺産

[천자 칼럼] 근정전의 비밀

바람아님 2019. 8. 24. 08:49
한국경제 2019.08.23. 00:16

경복궁의 근정전(勤政殿) 이름에는 ‘부지런하게(勤) 정치하라(政)’는 뜻이 담겨 있다. 정도전이 1395년 창건하면서 지었다. 이곳에서 왕의 즉위식과 사신 접대, 과거시험, 훈민정음 반포식 등 수많은 행사가 열렸다. 임진왜란 때 소실됐다가 270여 년 만인 1868년(고종 5년) 흥선대원군이 새로 지었다.


경복궁의 정전이기에 건물도 웅장하다. 아파트 8층과 맞먹는 25m 높이에 정면 너비가 30m에 이른다. 겉으로는 2층처럼 보이는 중층이지만, 내부는 위아래가 시원하게 트여 있다. 정면 안쪽에 왕의 자리인 어좌(御座)가 놓여 있고, 그 뒤로 해와 달, 금강·묘향·지리·백두·북한산 봉우리를 상징하는 ‘일월오봉도’가 펼쳐져 있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천장 중앙의 칠조룡(七爪龍)이다. 발톱을 일곱 개씩 가진 황룡 두 마리가 구름 사이에서 여의주를 희롱하고 있다. 동양의 상징체계에서는 제후국이 4조룡, 황제국이 5조룡을 썼다. 그런데 왜 근정전의 용 발톱은 일곱 개일까. 땅에 떨어진 왕권을 회복하고 그 권위를 황제 이상으로 강화하려던 의지를 반영했다. 흥선대원군이 엄청난 반대를 무릅쓰고 경복궁을 중건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근정전 뜰을 경사지게 조성한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남쪽이 북쪽보다 약 1m 낮다. 신하들이 왕을 우러러보게 하려는 의도다. 빗물이 잘 빠지도록 배려한 측면도 있지만, 근정전의 안쪽 바닥까지 비스듬하게 한 데서 왕을 돋보이게 하려던 시각효과가 느껴진다.


건물의 지붕은 어떤가. 원래 근정전 지붕은 용 문양의 청자기와로 덮여 있었다. 임진왜란 이후 광해군이 비싼 청자기와로 복원하려다 조정과 백성의 반발 때문에 포기했다. 지금은 검은 기와로 덮여 있다. 역사학자들은 “사극이나 영화 등에서 임진왜란 이전의 근정전을 다룰 때에는 청기와 건물로 표현하는 게 옳다”고 조언한다.


그제 근정전 내부가 공개됐다. 한 달간 수~토요일에 개방된다. 이왕이면 근정전에 얽힌 이야기를 하나씩 음미하며 관람해 보자. 근정전 뒤 왕의 집무실인 사정전(思政殿)에 들러 ‘생각하고 생각해서 정사를 펴라’는 뜻도 새겨볼 만하다. 예나 지금이나 지도자의 권위는 화려한 외형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가장 절실한 게 무엇인지 성찰해서 힘써 행하는 것이라는 이치까지 되새기면 더욱 좋겠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