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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 서가(書架)] 한시라도 빨리 이익 내려는 심리… 금융불안과 투자 손실만 더할 뿐

바람아님 2019. 9. 3. 09:01

(조선일보 2019.09.03 송경모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겸임교수)


이바시나·러너 '장기 자본'


이바시나·러너 '장기 자본'오래전 피터 드러커, 톰 피터스, 짐 콜린스 같은 사상가들이 기업 경영에서 처음으로

사명, 책임, 장기(長期)와 같은 관점을 강조했다.

이 관점은 오늘날 경영자에게는 당연한 것이 됐다.

반면에 투자금융 회사는 어떤가?

그곳은 그런 가치 따위는 아랑곳없이 여전히 돈을 향한 열망으로만 가득한 세계처럼

보인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에서 그 폐해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기도 했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하버드비즈니스스쿨의 금융학 교수인 이바시나(Victoria Ivashina)와 러너(Josh Lerner)는

'장기 자본(Patient Capital)'에서 금융회사 전반을 지배하는 단기 지향 마인드를

모든 문제의 시발점으로 본다.


투자 이후 한시라도 빨리 결실을 맛보고 싶어 하는 심리는 부정할 수 없는 인간 본성일지

모른다. 또한 유동성 순환 차원에서도 전략적으로 단기 투자는 필요하다. 그러나 이를

구실 삼아 단기 마인드가 과도해지면 오히려 금융 불안과 투자 기회 손실을 가중시킬

뿐이다. 저자는 그 대안으로 장기 지향 투자를 더 많이 정착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혹자는 장기 투자가 이미 충분히 이뤄지고 있지 않으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연기금이나 보험사 같은 기관투자가들의 장기채권 투자 비중은 이미 충분히 높지 않은가?

VC(벤처캐피털)를 포함한 다양한 사모펀드들은 이미 위험을 무릅쓰고 장기 투자를 하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워런 버핏 같은 가치 투자 대가들은 이미 장기 투자를 실천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이들 모두 저자가 말하는 진정한 장기 투자와는 거리가 있다.

아무리 만기가 긴 채권이라 해도 짧은 기간마다 계속 이자를 받게 되는데, 이는 단기 상품의 성격을 갖는다.

사모펀드도 조속한 회수를 지향하는 정책이 만연하고 있다. 가치 투자도 장기라기보다는 사실 안전 투자에 가깝다.

흔히 사용하는 투자금 대비 회수액 비율이나 내부수익률(IRR) 같은 성과 지표들도 장기 투자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고 있다.


거시경제학의 태두 케인스는 1921년부터 1946년에 이르기까지 케임브리지 킹스칼리지 기금 운용을 맡았다.

그는 기존의 채권과 부동산 투자를 줄이고 단기 시장 지표에 의거한 투자 전략을 버렸다.

대신에 성장 가능성 있는 주식 투자 비중을 늘려 장기 투자 철학의 선구자 역할을 했다.


저자는 제도 변화와 아울러 금융 사업이 철학을 정립할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수탁자와 운용사는 이 철학을 늘 소통하고 공유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사람들은 투자금융 사업을 짧은 시간에 큰돈을 버는 수단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사회를 서서히 진보시키는 데 기여하는 가치 있는 활동으로 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