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9.08.31 곽아람 기자)
공감, '절대 선'으로 여겨왔지만 특정 인물·사건에 스포트라이트… 이면의 다른 이들은 보지 못해
"직감보다 이성에 의지할 때 도덕적으로 올바른 판단 가능"
공감의 배신
폴 블룸 지음|이은진 옮김|시공사|348쪽|1만7000원
이 책의 기반이 된 칼럼이 '보스턴 리뷰'에 실렸을 때,
한 사회학자는 저자를 "지적 망신이자 도덕적 괴물"이라 비난했다.
책의 주장은 그만큼 도발적이다. 예일대 심리학과 교수인 저자는 말한다.
"나는 공감에 반대한다. 공감은 형편없는 도덕 지침이며
우리는 공감이 없을 때 더 공평하고 공정한 도덕적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저자가 책에서 이야기하는 '공감(empathy)'이란 '다른 사람이 느낀다고 믿는 것을 느끼는 행위'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세상을 경험하는 행위'다. 지금까지 '절대 선'으로 여겨져 왔다.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연설에서 "우리와는 다른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의 중요성을 여러 번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저자는 "지금 우리 사회의 문제는 '공감 부족'이 아니라 '공감 과잉'"이라면서
"많은 경우 공감은 도덕적 편향을 낳는다"고 말한다.
"공감은 지금 여기 있는 특정 인물에게만 초점이 맞춰진 스포트라이트다.
공감은 그 사람들에게 더 마음을 쓰게 하지만, 그런 행동이 야기하는 장기적 결과에는 둔감해지게 하고,
우리가 공감하지 않거나 공감할 수 없는 사람들의 고통은 보지 못하게 한다."
심리학자 C. 대니얼 뱃슨은 불치병에 걸려 빨리 치료를 받고 싶어하는 열 살짜리 소녀의 인터뷰를 두 그룹에게 들려줬다.
한 그룹엔 "객관적 입장을 취하려 노력하라"고 했고, 다른 그룹엔 "아이의 기분이 어땠을지를 상상해보라"고 했다.
공감은 공정보다 힘이 셌다. 공감을 유도하는 말을 들은 그룹의 4분의 3이 차례를 기다리는 다른 아이들을 희생시켜서라도
소녀를 위해 치료 순서를 앞당겨주고 싶어 했다.
2012년 미국 코네티컷주 뉴타운의 샌디훅 초등학교에서 총기 난사 사건으로 아이 20명과 성인 6명이 사망했다.
사건은 미국 전역을 뒤흔들었다.
각지에서 뉴타운에 보낸 선물과 장난감을 보관하기 위해 지자체는 자원봉사자 수백 명을 채용해야 했다.
지난 30년간 미국에서 총기 난사 사건으로 사망한 사람은 수백 명에 이르고, 바로 그해 시카고에서는 뉴타운에서보다
더 많은 학생이 살해당했다. 왜 이 사건이 특별히 강렬했을까?
저자는 "우리와 비슷한 사람들, 더 매력 있어 보이거나 더 취약해 보이는 사람들,
또는 덜 무서워 보이는 사람들에게 공감하기가 훨씬 쉽다"면서
"시카고에서 살해당한 10대 흑인 아이들의 경우에는 감정을 이입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말한다.
‘정의의 여신’상. ‘공정함’을 상징하는 천칭을 한 손에 들고, 눈앞에 보이는 것에 현혹되지 말라는 의미에서 눈을 가리고 있다.
폴 블룸은 “공감은 관심 있는 곳에만 빛을 비추는 스포트라이트와도 같아 정의와는 거리가 멀다”고 썼다. /게티이미지코리아
공감은 폭력을 자극하기도 한다. 미국 남부에서 흑인들이 당한 폭력이나 유럽에서 발생한 홀로코스트 등의 원인으로
학자들은 대개 증오와 인종차별 사상, 비인간화를 생각한다. 그러나 공감 또한 일정한 역할을 한다. 흑인 남성에게 강간당한
백인 여성이나, 유대인 소아성애자에게 착취당한 독일 아이들에 관한 이야기가 불러일으킨 공감 말이다.
공감은 의사와 환자의 관계처럼 중요한 관계를 좀먹고, 친구나 부모로서의 역할을 더 어렵게 만든다.
흔히 공감 능력 높은 의사를 '좋은 의사'라 여기지만, 의사가 환자의 고통을 그대로 느낀다면 객관적인 판단을 내리기
힘들어진다. 자녀의 입장을 너무 많이 생각하는 부모는 지나치게 보호하고 걱정하느라 제대로 된 훈육과 통제를 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도덕을 행하기 위해 공감 외에 무엇을 택해야 할까?
저자는 "이성에 의지할 때 도덕적으로 가장 올바른 행동과 판단을 할 수 있다"면서
"가슴과 머리를 결합한 '효율적 이타주의'가 답"이라고 말한다.
특정인에게 공감하는 것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운명에 대한 보편적 염려나 연민 때문에 행동에 나설 수도 있다.
지구온난화를 염려하는 것이 한 예다.
그럼에도 우리는 공감을 멈출 수 없겠지만,
적어도 이 책을 읽은 후라면 '내 공감의 잣대가 치우치고 있지는 않은가' 생각해볼 수는 있을 것 같다.
'공감 정치'에 대한 비판도 인상적이다.
"공감 정치의 대가는 엄청나다.
한 국가의 시민들이 우물에 빠진 아이의 소식에는 눈을 떼지 못하면서 기후변화에는 무관심한 이유는 공감 때문이다.
앞날을 계획할 때는 공감이라는 직감에 의존하는 것보다 도덕상의 의무와 예상 결과에 대한 이성적이고
반공감적인 분석을 따르는 것이 낫다." 원제 Against Empathy.
불로그에서 같이 읽을 거리 :
[장동선의 뇌가 즐거워지는 과학] 팩트 아닌 느낌으로 사람 평가하는 까닭은 |
사실에 의거한 정보 처리와 판단은 나와 내 밖의 타인, 그리고 다른 세상을 명확하게 구분한다. |
법과 정의의 여신 _ 아스트라이어(Astraea) : |
그리스 신화속의 법과 정의의 여신 아스트라이어(Astraea)는 인간세상에서 재판을 할 때, 주관성을 버리겠다는 뜻으로 눈을 헝겊으로 가리고 있다. 또한 손에는 법을 엄격하게 집행하겠다는 뜻으로 칼이나 법전을 들고 있고, 다른 한손에는 옳고 그름을 가르는데 있어 편견을 버리고 공평하고 정의롭게 하겠다는 의미로 저울을 들고 있었다. 우리나라 대법원 앞에는 서구적인 여신을 한국적으로 형상화하여 한국고유의 전통적인 의복인 한복을 입고, 손에는 법전과 저울을 들고 있는 법과 정의의 여신이 서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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