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9.11.15 신상목 기리야마본진 대표·前 주일대사관 1등 서기관)
미국의 장년(長年) 세대는 어릴 적 속이 더부룩하거나 체했을 때 복용하던
'다카-디아스타아제(Taka-Diastase)'라는 소화제를 기억한다. 미국의 가정상비약으로 통하던
이 약의 개발자는 다카미네 조키치(高峰讓吉·1854~ 1922)라는 일본인이다.
디아스타아제라는 소화효소 이름 앞에 붙은 '다카'는 그의 성(姓)에서 따온 것이다.
의사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릴 적부터 서양 학문을 공부한 다카미네는 1880년 영국 글래스고 대학에
유학하여 서양의 과학 문명과 자본주의를 체험하면서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뜬다.
귀국 후에는 관료로 일하면서 일본 특허제도를 정비하여 과학기술 입국의 초석을 다지는 한편,
본업인 연구에도 매진하여 1887년 영국에서 고지(麴·일본 누룩균)를 활용한 주정(酒精) 제조법 특허를 획득하는 등
그가 일본 과학기술사(史)에 남긴 족적은 작지 않다.
다카미네의 진가가 빛을 발한 것은 과학기술을 사업화하는 그의 산학(産學) 융합 능력이다. 유
학 시절 화학비료 제조 기술을 습득하여 1886년 시부사와 에이이치(澁澤榮一) 등 유력 자본가와 손잡고
도쿄인조비료회사를 설립한 것이 인생 전기가 되었다. 양조가의 외손자로 고지를 활용한 기능성 신물질 개발에
천착한 그는 1890년 미국으로 건너가 본격적으로 사업에 도전한다.
도전이 결실을 본 것이 1894년 최초의 소화효소 제제(製劑)로 알려진 다카-디아스타아제의 개발이다.
그는 1901년 아드레날린 호르몬을 추출하여 결정(結晶)화하는 기술을 개발하여 특허를 받기도 하였다.
현대로 치면 특허를 활용한 '바이오 벤처 기업가'였던 셈이다.
그가 미국에서 벌어들인 재산이 3000만달러에 달한다고 하니 그가 얼마나 큰 성공을 거두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일본의 근대화는 메이지유신과 같은 정치 변동 이벤트가 아니라 과학기술인이 주도한 지식 기반 산업화 과정에
주목했을 때 그 본질과 실체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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