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왕산 자락에 아파트단지가 생기기전부터 계곡에 농사용 작은 연못이 있었다. 이곳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생기면서 이 작은 연못을 주민들의 휴식공간 공원으로 조성하여 많은 사람들이 아침저녁으로 찾는 명소가 되었다. 더 우기 작년에는 오리 한 쌍을 누군가 가져다 놨는데 몇 마리의 새끼까지 낳고 한여름 뙤약볕도 잘 참고 견디어
제법 한 가족을 이루게 되었다.
지난겨울 우리 아파트에는 몇 마리의 고양이가 살고 있었는데 먹을 것이 없으니까 쓰레기 봉투를 마구 헤집어 온통
쓰레기 천지를 만들어 놓곤 했었다. 그러나 음식물이 분리 수거되다 보니 먹을게 없어 늦은 밤이면 야옹 야옹 하며 우는 소리가 밥을 달라는 아기의
보챔처럼 느껴져 나는 우리집 강아지 사료를 저녁 늦은 시간에 가져다 놓기 시작 했었다. 어쩌다 늦게라도 갖다 놓는 날이면 야옹 소리가 더욱 커지고 먹이를 놓는 내 모습을 멀찌 감치 에서 지켜보고 있다가 내가 사라지면 와서 먹었다. 거의
매일 저녁 다른 사람들이 보지 않는 시간에 공공칠 작전하듯 겨울이 끝날 때까지 나는 주는 기쁨을 이어왔었다. 그러나 올 겨울에는 쓰레기 넣는 함이
설치되어 더이상 고양이들이 오지 않는다.
요즘 며칠 독감으로 집에만 있었더니 온몸이 찌부퉁하여 다 저녁때 옷을 두텁게 입고 연못으로 산책을 나갔다. 연못이 가까워 오자 여름 내내 살고 있던 오리 가족이 궁금했다. 연못이 꽁꽁 얼었을 텐데 지금도 있을까? 아니 공원 관리인이 다른
곳으로 옮겼겠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연못둑에 올라서니 역시 예상했던 대로 연못은 꽁꽁 얼어 붙어
있고 조금씩 계곡물이 흘러 드는 곳만 손바닥만하게 얼지 않았다. 연못 여기 저기 아직 눈이 녹지 않고 쌓여 있는데 오리 가족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다른 곳에 잘 옮겨 졌을까? 누가 잡아가지는 않았겠지? 하고 걱정하며 둘러 보는데 한쪽에서 눈 쌓인 것처럼 보이던 흰 물체가 살짝 움직이는 게 보인다. 오리였다 그 옆에도 그 옆에도 오리들이 땅에 엎드려 있다.
불현듯 작년 겨울 먹이를 찾던 고양이 생각이 났다 온통 얼어붙어 먹이활동을 못했을 오리들이 허기져서 쓰러진 것은 아닌지 불안한 마음으로 가던 발길을 멈추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 얼른 강아지 사료를 꺼내 잘게 잘라 먹이를 준비하여 다시 연못으로 향하는데 벌써 어두워져 온다. 뚝위에 올라서니 오리들이 안 보인다. 덜컹 겁이 났다. 어디로 갔을까? 어둑어둑해서 주위가 잘 보이지 않는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손바닥만큼 얼지 않은 웅덩이에 네 마리가 나란히 있다. 아마도 들 고양이를 피해 갈대 숲이 아닌 물속에서 잠을 자는듯했다.
얼마나 추울까? 인기척을 느낀 오리들이 다른 곳으로 옮기려 한다. 내가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그곳에는 누군가 닭 사료를 작은 사발에 갖다 놨다. 그리고 빈 플라스틱이 거꾸로 뒤집혀 있는걸 보니 다른 사료도 갖다 준 모양이다. 나는 얼른 그 빈 그릇에 먹이를 담아 놓고 오리들을 방해하지 않으려 재빨리 그 자리를 떠났다. 어두워서 그런지 오리들이 먹이를 먹으러 바깥으로 나오지 않는다. 오리가
먹이를 좋아할까? 그래도 걱정했던 것보다 누군가 다른 사람도 나 같은 생각으로 먹이를 갖다 주고 있는걸 확인 했으니 마음이 한결 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