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인신공양의 진위를 가리기 위해 과학자들이 검증에 나선 일이 있다. 1998년 국내 한 연구기관이 에밀레종에서 시료를 채취해 분석했더니 사람 뼈에 있는 인 성분은 검출되지 않았다. 하지만 인이 나오지 않았다고 해서 인신공양이 없었다고 단정짓기는 어렵다. 제조 과정에서 인골 성분이 쇳물 위에 떠올라 제거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아기 울음과 흡사한 “에밀레~ 에밀레~” 소리를 내게 하는 것일까. 이는 맥놀이 현상과 관련이 깊다. 맥놀이란 진동수가 비슷한 두 소리가 중첩돼 소리가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종소리는 치는 표면의 위치에 따라 진동수에서 미세한 차이가 발생한다. 이 소리들이 뒤섞여 신비스러운 소리를 낸다는 것이다.
에밀레종 소리가 이번에 국내 최첨단 기술로 복원됐다. 25일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환영만찬에선 새로 복원된 에밀레종이 단연 인기였다. 각국 정상들은 종을 배경으로 깊은 울림의 종소리를 들으며 기념촬영을 했다. 에밀레종은 문화재 보호를 위해 2003년부터 타종이 중단됐으나 SK텔레콤은 인공지능(AI) 기술을 적용해 종소리를 살려냈다.
슬픈 에밀레종 소리에는 백성의 안녕을 염원하는 대왕의 애민정신이 녹아 있다. 종에 새겨진 글은 이렇게 시작한다. “큰 소리는 천지에 진동하고 있으나 귀로 듣고자 해도 그 울림을 들을 수 없다.” 국가 지도자들이 들어야 하는 큰 소리는 바로 민심(民心)의 소리다. 그것은 귀가 아닌 마음으로만 들을 수 있다. 1200년 만에 ‘큰 소리’가 이 땅에 복원됐지만 마음으로 듣는 지도자가 없다. 애끊는 민심의 소리가 ‘에밀레’ 소리보다 슬프다.
배연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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