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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 정신 위협하는 대통령과 정부, 난 걱정스럽다"

바람아님 2019. 12. 11. 19:59

(조선일보 2019.12.11 김기철 학술전문기자)


[김기철의 시대탐문] [3] 헌법학자 장영수 고려대 교수

"탈북민 강제 송환한 정부… 자국민을 어떻게 死地로 보내나
人民주권 가르치는 교과서, 헌법학계선 이미 폐기된 이론"


어쩌다 보니 헌법학자의 생각이 궁금한 세상이 됐다.

교과서에서 자유민주주의를 빼니 마니 하더니, '국민' 대신 '인민' '인민주권'을 아이들에게 가르친다고 한다.

헌법상 대한민국 영토인 북한에서 탈출한 주민을 범죄자라며 사지(死地)로 돌려보냈다.

지난 6일 만난 헌법학자 장영수(59)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친구들이 농담 삼아 바빠서 좋겠다고 한다.

헌법학자를 찾는다는 건 우리 사회가 헌법 가치와 어긋나게 잘못돼 간다는 뜻이라 반갑진 않다"고 했다.


―올해부터 사용되는 고교 윤리 교과서 5종 중 3종이 국민 대신 인민(人民), 인민 주권(主權)이라고 썼다.


"인민이란 단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민주주의를 가르치면서 이미 폐기된 '인민주권'을 가르친다는 점이다.

인민주권주의에 따르면 국민대표는 무조건 국민 뜻에 따라 국정(國政)을 결정해야 한다.

현대 국가를 이렇게 운영할 수는 없다. 포퓰리즘에 휘둘릴 가능성도 크다. 국민 뜻이 바뀔 때마다 정책을 바꿔야 하는데

얼마나 불안정한가. 국민주권주의는 대표로 일단 뽑힌 뒤엔 국민 의사에 반하더라도 자율적으로 책임을 지고

국정을 결정하라는 것이다. 필자들이 이런 차이를 알고 인민주권을 썼는지 모르겠다."


장영수 교수는 “대통령이 대한민국 국민인 탈북 주민을 사지(死地)로 강제 송환해 헌법 정신을 위협하는 현실이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장영수 교수는 “대통령이 대한민국 국민인 탈북 주민을 사지(死地)로 강제 송환해 헌법 정신을 위협하는

현실이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이진한 기자


―대한민국 헌법 제1조 2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돼 있다.


"제헌의회에서 인민 대신 국민을 쓴 것은 북한식(式) 인민공화국과 다른 체제라는 걸 보여주려 했기 때문이다.

제헌의원들의 뜻이 그랬다."


―인민이란 단어를 쓰면 안 되나.


"한때 노동자를 근로자라고 했다가 민주화 이후에 노동자가 일반화됐다.

이런 변화엔 '국제노동기구'(ILO) 같은 국제 표준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인민이란 단어가 얼마나 국민적 공감대를 얻고 사회적 합의가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그런 것 없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과서에서 한쪽으로 몰아가선 안 된다."


―교과서에서 자유민주주의를 뺀다고 해서 논란이 거셌다. 헌법 전문에 있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가

유신헌법 때 들어갔다며 독재의 산물이라고 공격한다.


"말장난하면 안 된다. 민주주의는 우리가 창안한 게 아니다. 서구에서 형성, 발전한 걸 받아들였다.

민주주의 본질은 주권자 국민이 자기 삶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를 갖는 것이다.

여기서 신체의 자유, 종교와 양심의 자유가 파생하고, 모든 국민이 평등하게 이런 자유와 권리를 누리는 체제다.

1930년대 독일 나치가 다수결로 민주주의를 파괴했다. 민주주의의 자살이라고 했다.

국민의 다양한 가치를 용인하고 전체주의로 가선 안 된다는 뜻을 담은 게 자유민주주의다."


―헌법상 대한민국 영토인 북한에서 주민이 넘어왔는데 강제 송환했다.


"헌법은 북한 주민을 우리 국민으로 인정하고 있다. 국민을 죽으라고 돌려보내는 대통령이 어디 있나.

범죄자인지 아닌지는 우리 사법 시스템에 따라 조사하고 판단해야 한다.

탈북 주민을 외국인 난민 대하듯 하면 안 된다."  광장의 촛불이 국민의 뜻 과대 반영


―2016년 촛불집회 때 '헌법 제1조'라는 노래까지 만들어 불렀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며 광장의 군중이 국민의 뜻을 대변한다고 주장했다.


"헌법 1조는 국민에게 주권이 있다는 원칙을 선언한 것이지 시위로 국정을 결정하라는 뜻은 아니다.

국가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고 국민은 무엇을 요구할 수 있고 책임져야 하는지 세부적으로 조율해 나가야 한다.

수만, 수십만이 광장에 모이면 국민의 뜻인가. 거리에 나오지 않은 1000만, 2000만 국민이 반대할 수 있다.

'이게 나라냐'는 구호는 '이건 나라도 아니다'는 뜻의 반어법이다.

그런데 정상적 나라는 어떤 것인지 물으면 답이 없다.

2016년 촛불집회를 기점으로 시위대가 국민의 뜻으로 과대 반영되고 있다. 이런 문제의 원인은 국민의 의사가

국정에 제대로 반영되고 있다고 믿지 않는 데 있다.

미국이나 유럽도 대의제와 정당정치가 흔들리고 있는데 우린 더 심각하다."


종교전쟁 같은 진영 갈등, 나라 망한다


―이 정부는 한국 사회를 이끌어온 주류, 기득권 세력 교체가 목표라고 한다.


"주류가 기득권을 정당한 방법으로 획득했는지 따져야 한다. 무조건 부정할 일이 아니다.

주류에 대한 공격은 1997년 IMF 위기로 촉발됐다. 사회가 뒤집히면서 균열이 생겼고 양극화가 심해졌다.

좌파 진영은 IMF 위기를 가져온 특정 정치 집단이 아니라 보수 전체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나락으로 떨어진 사람을 끌어들여 세력을 키운 반면 보수는 상대적으로 낙오자를 끌어안는 데 소홀했다.

보혁(保革) 갈등이 지역 갈등 이상으로 극단화하고 있다.

이성적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 박근혜교(敎), 문재인교(敎)처럼 종교전쟁하듯 한다.

이러면 나라가 망한다."


―'아름다운 분열'이라며 대립을 부추기는 좌파 지식인도 있었다.


"미친 소리다. 한국 사회의 분열과 갈등에는 지식인들의 책임이 크다.

진보가 기득권을 비판해왔지만 스스로 기득권이 됐다. 자기 기득권을 내놓지 않고, 자기반성이 없다.

기득권에 묻혀버린 진보는 진보가 아니다.

공동체 존속과 발전을 위해 보수·진보가 공감하는 가치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게 없다."


―주류·보수의 잘못이 있으니까 비판받는 것 아닌가.


"잘못 없는 사람이 어디 있나. 좌파는 IMF 위기를 교묘하게 이용해 보수의 총체적 실패로 몰아갔다.

일부 잘못은 있겠지만 양극화를 전략적으로 이용했다는 의심이 든다."


"대법원 정치편향 드러낸 '백년전쟁' 판결, 공감할 수 없어"


이승만 전 대통령을 비난한 ‘백년전쟁’ 영상.
이승만 전 대통령을 비난한 ‘백년전쟁’ 영상. /유튜브


장영수 교수는 지난달 대법원이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방한 '백년전쟁' 판결에 대해 "공감할 수 없다"고 했다.

"대법관 다수 의견(7명) 취지는 법적으로 판단할 게 아니라 역사에 맡길 문제라고 했다.

소수 의견(6명)은 일부 사실과 부합해도 반대쪽 얘기를 빼면 편향적이기 때문에 잘못됐다고 봤다.

역사와 법정에서 가려야 할 사실의 구별 기준이 뭔가. 역사에 맡겨야 한다며 역사 왜곡을 방조하는 것 아닌가.

그런 식이라면 일본 역사 교과서 왜곡 같은 것도 역사에 맡긴다며 방치할 것인가."

대법원의 정치적 편향도 우려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을 포함, 이 정부 들어 임명된 대법관 9명 중 겨우 2명이 파기 환송에 반대했다.

대법원이 여전히 정치적으로 편향돼 있다는 걸 보여준다.

균형 잡힌 대법원이라면 반반 정도 돼야 하는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