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20.01.02 이인열 산업1부 차장)
해외 진출이란 우리의 꿈이 해외 탈출로 이뤄지고 있는가
4차 산업혁명은 자유가 필수… 反자유세력과 싸워야 한다
이인열 산업1부 차장
14년 전 인도 서부의 푸네(Pune)를 찾았다.
'인도의 옥스퍼드'라는 이 도시는 우수 인력 덕분에 글로벌 공장의 메카로 변신 중이었다.
LG전자 휴대폰 공장 취재차 방문이었는데, 바로 옆 공장의 외벽을 잊을 수 없다.
파란색 바탕에 흰 글씨로 씐 'Daewoo spirit'(대우 정신). 대우전자 가전공장이었다.
6개월 뒤 이 공장은 대우 붕괴 여파로 중국 가전회사 하이얼에 매각됐다.
비슷한 시기 인도 바로 옆 나라 파키스탄을 찾았다.
이곳 최고의 고속도로는 357㎞ 길이의 M2. 대우가 건설사였는데, 더 놀라운 것은 이 도로에 한국 자동차가 달리게
하겠다며 세웠다는 '삼미대우'란 버스회사였다.
대우 파산 후 다른 기업에 팔렸지만, 여전히 버스 190대로 34도시를 연결하며, 연간 500만명을 실어 나르고 있었다.
공과(功過)가 극명한 고(故) 김우중 전 대우 회장은 이렇게 '해외 진출'의 원대한 꿈을 꾼 경영인이었다.
미완이었던 그의 꿈은 지금 이 땅에서 역설적으로 실현되고 있다.
2019년 한국의 중소기업 해외투자는 1980년 통계 작성 이후 최대인 150억달러(약 17조3400억원)다.
신흥국에서 중소 공장 하나 짓는 데 1000억원이 든다면 1년 새 200여개 가까운 공장이 해외로 나간 것이다.
백성학 영안모자 회장은 "(지난 3년간) 기업이 어마어마하게 (해외로) 튀었다"고 우려한다.
고용의 88%를 담당하는 중소기업만 그런 게 아니다. 각종 규제에 시달리는 유통 업체도 마찬가지다.
롯데마트는 인도네시아에 3년 안에 100호점을 열고, 이마트 역시 4곳인 해외 매장을 3년 후 31곳까지 늘릴 방침이다.
비(非)메모리 반도체를 위한 삼성전자의 133조원 투자, 미래차 개발에 나선 현대차의 61조원 투자에도
해외 비중이 만만찮을 것이다.
글로벌 시대에 기업들의 해외투자를 탓할 순 없다. 다만 지금 현상은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아서'가 아니라 '한국은 답답하고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떠나고 있다는 게 문제다.
'경제적 망명'이란 지적이 나올 정도다. 더욱 속 쓰린 까닭은 지금이 바로 4차 산업혁명의 결정적 순간이란 점이다.
산업혁명사(史)를 연구한 김태유 서울대 교수는
"근대 인류 흥망성쇠의 확실한 기준은 산업혁명에 성공했느냐 못 했느냐는 것"이라고 일갈한다.
근대에 들면서 극명하게 엇갈렸던 한국과 일본의 운명도 이걸로 설명 가능하다.
더더욱 심각한 것은 이 땅에서 4차 산업혁명의 첨병이어야 할 벤처기업들의 이탈이다.
배달의민족은 독일 회사에 40억달러(약 4조6240억원)에 팔렸고, 게임회사 넥슨은 계속 매각 공고 중이고,
네이버는 일본 소프트뱅크와 합작사를 일본에다 만들었다. 실리콘밸리 등으로 떠나는 벤처는 셀 수 없을 정도다.
벤처인들은 사석에서 "IT업계가 해외 사업에 집중하는 진짜 이유는 한국에서 사업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숨죽여 말한다. 최근 홍콩 시위에서 얼굴의 3분의 2 이상을 가린 검은 마스크가 왜 유행했겠는가.
미국을 앞지른 중국의 '안면인식 기술' 때문이다. 지금 세상은 이렇게 돌아간다.
미·중 무역전쟁의 핵심도 4차 산업혁명의 주도권 싸움이다.
우리는 어떤가. '타다'의 이재웅은 검찰에 기소까지 당했다. 남들 다 하는 데이터 3법 개정안은 우리에겐 하늘의 별따기다.
심지어 자사고를 없애고, 주52시간제를 강압한다.
모두 선택의 자유를 억압하는 짓이다. 자유야말로 창조를 가능케 하는 혁명의 토양분이다.
왜 1차 산업혁명이 중국이 아닌 영국에서 시작됐을까.
전성철 글로벌스탠더드연구원 회장은 "영국이 자유를 발명했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지금은 반(反)자유 세력과 전쟁부터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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