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橫設竪設

[만물상] '中 폐렴'보다 무서운 것

바람아님 2020. 1. 22. 08:07

(조선일보 2020.01.22 안용현 논설위원)


2003년 베이징은 유령 도시 같았다.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로 쓰러지는 시민이 속출하자 학교는 문을 닫았고 외국인은 앞다퉈 탈출했다.

옆집 사람이 죽어나가는데도 베이징시는 "곧 통제된다"는 선전만 반복했다.

발표되는 감염자와 사망자 규모가 터무니없이 적었다.

2002년 말 장쩌민에서 후진타오로 정권이 교체된 상황에서 '방역에 실패했다'는 비난을 피하려고 통계를 축소했기

때문이다. 대신 사스 전용 병원을 밤새 짓는 '쇼'를 보여줬다. 시민은 병보다 거짓말하는 정부가 더 무서웠다.


▶공산당 지도부가 하이난 서기로 내려 보냈던 왕치산(王岐山)을 베이징 시장으로 급히 불러올렸다.

왕치산은 첫 회의에서 "하나는 하나고, 둘은 둘이다. 누구도 정보를 횡령할 수 없다"고 했다.

감염자와 사망자를 매일 솔직하게 공개했다. 감염자가 갑자기 100명씩 불었지만 시민은 정부를 믿기 시작했다.

이후 사스 방역 조치가 먹히면서 그해 9월 불길이 잡혔다. 37국에서 774명이 사망했다.

[만물상] '中 폐렴'보다 무서운 것


▶중국 의료계에선 중난산(鐘南山) 중국공정원 원사가 '사스 영웅'이다.

당시 광저우 호흡기질환연구소장으로 '사스 창궐' 사실을 숨김없이 밝혔다. 그러고는 "치료할 수 있다.

가장 위중한 환자를 내게 보내라"고 했다. 38시간 연속 응급 환자를 치료했다.

그 뒤로 전염병이 퍼지면 중국인은 정부 발표보다 중난산 말을 더 신뢰한다.

2009년 신종플루, 2013년 조류인플루엔자가 유행할 때도 그랬다.


▶중난산이 그제 중국 TV에서 "현재 '우한 폐렴'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는 사람 간 전염되는 것이 확실하다"며

우한에 가지 말라고 경고했다. 양쯔강 중류인 우한에서만 환자 250여명이 발생해 6명이 사망했다.

사스 치사율 9.3%보다는 낮지만 연인원 30억명이 이동하는 '춘제(설)' 연휴가 시작된 만큼 상황이 심각해질 수 있다.

벌써 베이징·상하이·서울 등에서 환자가 발견됐다. 중국 정부는 이번에도 축소 의혹을 받는다.

'우한 폐렴'이 다른 지역으로 확산했다는 홍콩 보도에 침묵으로 일관했다.


공산당 관료는 불리한 통계나 자료가 있으면 일단 숨기고 본다.

자유 언론이 없으니 숨길 수 있다는 생각이 관료들에게 팽배해 있다. 은폐 조작이 습관이 되는 것이다.

시진핑이 관료들에게 숙청 칼을 휘두르고 나서 복지부동은 더 심해졌다고 한다.

그 사이에 작은 불씨가 점점 커져 대형 화재로 번진다. 공산당만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