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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문의 뉴스로 책읽기] [187] 이 정권은 왕족인가

바람아님 2020. 1. 28. 12:07

(조선일보 2020.01.28 서지문 고려대 명예교수)


논어 13편 자로 3장


서지문 고려대 명예교수서지문 고려대 명예교수

중학교 1학년 때 우리들의 수업 태도가 불량하니까 국어 선생님이 꾸중을 하셨다.

"영국의 찰스 왕자나 앤 공주는 너희보다 어린데 공식 행사에서 몇 시간이고 미동도 안 하고

앉아있단다"라고. 그 말을 듣고 나는 부끄러웠고, 찰스나 앤은 진짜 왕자, 공주라고 생각했다.

그 후에 찰스와 앤이 어른이 되어서 이런저런 말썽을 부릴 때 나는 그것이 그들의 몰수당한

유년기와 사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왕자나 공주로 태어나는 것은 저주일 수 있겠다 싶었다.

한편 평생 한 번의 일탈도 없이 여왕의 품위를 지켜 온 엘리자베스 여왕은 자녀와 그 배우자들의 지각없는 행동이

얼마나 안타깝고 노여울까.


불과 열세 살 때 어머니를 참혹한 사고로 잃은 해리 왕손이 흑인 혼혈 미국인 아내 메건에 대한 영국민의 과도한 편견과

비난을 견딜 수 없어 왕족 역할을 파트타임으로(!) 수행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가 할머니 여왕에게서 냉엄한 거절을 당했다.

이제 왕족으로서의 생활비 지원도 끊길 모양이니 구직도 어려운 해리는 어찌 살아갈까?


사실 영국의 왕실 유지는 국가 재정에 막대한 부담이지만 왕족들의 활용도가 커서 크게 남는 장사다.

찰스 왕세자는 400개 이상의 인권, 의료, 빈곤, 기후, 환경 등 자선단체와 공익단체의 장으로 2017년에는

546회 공식 행사에 출연했다고 하고 연 1억파운드 이상을 모금한다고 한다. 왕족은 최고의 친선대사이기도 하다.

그래도 왕족들은 국민의 도를 넘는 호기심과 까다로운 기대, 가혹한 비난에 시달린다.


그런데 자기 의사와 무관하게 태생 탓에 불가피한 임무를 맡은 왕족도 아니고,

자청해서, 시켜만 주면 국가와 국민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고 맹세하고 애걸해서 자리를 차지하고는

맡은 자리가 요구하는 일은 하나도 안 하고 하지 말아야 할 짓만 하는 사람이 있다.

나라 경제를 붕괴시키고, 교육을 파괴하고, 안보를 허물고, 마구잡이 복지로 나라의 미래를 박탈한다.

법 아닌 법을 제조해서 '합법적으로' 나라를 파괴해 나간다.

영화 '기생충'에 나오는 침입자들처럼 견고한 나라에 거머리처럼 파고들어가 주민의 생명과 재산을 잠식하는 것이다.

그러고는 자기 하수인의 범죄를 은폐하려고 범죄 은닉 결사대를 풀어놓았다.

'부패방지부장'은 부패 엄호가 전공이고 공직기강비서관은 공직 기강 파괴가 특기인가 보다.


공자는 제후에게 초대되어 정치를 맡게 된다면 무엇을 맨 먼저 하겠냐는 제자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이름과 실제의 괴리가 없도록) 반드시 이름을 바로잡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