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핫 이슈

[사설] '울산 선거 공작' 靑 측근 13명 기소 '文 주도 여부'만 남았다

바람아님 2020. 1. 30. 15:03

(조선일보 2020.01.30)


검찰이 29일 울산 선거 공작 관련자 13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기소 대상에는 송철호 울산시장과 송병기 전 울산 부시장 등 2018년 지방선거 당시 '송철호 캠프' 관계자들과

황운하 전 울산경찰청장, 백원우·박형철 전 청와대 민정수석실 비서관을 비롯한 '하명 수사' 관련자들이 포함됐다.

한병도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송 시장의 민주당 내 경쟁자에게 공직을 제안해 매수하려 했다는 혐의로 기소됐고,

송 시장 선거 공약 수립을 불법 지원한 혐의로 청와대 균형발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도 재판에 넘겨졌다.

울산 선거는 청와대의 기획과 조직적 개입에 따른 것이라고 검찰이 공식화한 것이다.

이름을 적시하지 않았을 뿐 사실상 문재인 대통령이 주도 혐의를 받는다는 의미다.

사상 유례없는 일이다.

문 대통령은 30년 친구인 송 시장의 당선을 "소원"이라고 했다. 송 시장에게 출마를 권유한 것도 문 대통령이다.

이 사건은 문 대통령의 소원을 풀어주기 위해 청와대가 전면 공작에 나선 것이다.

청와대는 송 후보 측이 넘겨준 야당 후보 관련 첩보로 경찰에 수사를 지시했다.

경찰은 야당 후보가 공천장을 받은 바로 그날을 골라 그의 사무실을 덮쳤다.

검찰이 '증거가 없다'고 보강 수사 지시를 거듭하고 영장을 기각했는데도 경찰은 막무가내로 기소해달라고 우겼다.

그러면서 피의사실은 모조리 흘려 보도되게 했다.

수사가 아니라 특정 야당 후보를 겨냥한 공권력의 린치였다.


그런 한편으로 청와대 핵심 실세들은 송 후보의 당내 경쟁자에게 총영사 등 공직을 제안하며 후보 매수를 시도했다.

청와대 행정관들은 여당 후보의 공약을 사실상 만들어줬고, 정부는 야당 후보 공약은 무산시키면서 수천억원 예산이 드는

여당 후보 공약에는 예타 면제 특혜를 베풀었다. 전(前) 대통령은 총선 여론조사를 했다고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았다.

이 정권이 한 일은 그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후보 매수, 하명 수사, 관권 개입 같은 총체적 선거 부정이다.

향후 재판을 통해 엄중한 처벌이 뒤따라야 한다.


청와대. /연합뉴스
청와대. /연합뉴스


검찰은 "나머지 관련자들에 대해서도 순차적으로 수사를 마무리할 것"이라고 했다.

두말할 것도 없이 향후 수사의 핵심은 문 대통령이 공작을 주도했는지를 밝히는 것이 될 수밖에 없다.

대통령 30년 친구의 당선을 위해 청와대 비서실장과 수석, 비서관·행정관 등 대통령의 정치 참모들이 대거 동원됐다.

대통령의 개입을 시사하는 일부 물증도 나왔다. 상식적으로 대통령이 주도하지 않았으면 이 모든 일은 일어날 수 없다.

현직 대통령은 임기 중 범죄 혐의가 드러나더라도 형사 기소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검찰이 조사까지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선거 공작'은 대통령의 탄핵까지 논의될 수 있는 중대한 문제다.


이 사건 수사팀은 지난 22일부터 여러 차례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에게 기소하겠다고 보고했으나 이 지검장이 뭉갰다고 한다. 문 대통령의 사건 수사팀을 대거 '인사 학살'하면서 발탁한 이 지검장은 조국 아들 인턴 증명서를 허위 발급한 혐의를 받는

최강욱 공직기강비서관 기소 때도 결재를 거부했다. 명색이 검사가 검찰 수사의 최종 결정권자인 검찰총장의 지시를

거부하고 수사 대상자인 청와대 편을 들고 있다.

유재수 비리 비호 사건을 수사한 서울동부지검에서도 신임 검사장이 결재를 미뤘다.

두 사건 수사팀은 전체 회의를 통해 겨우 기소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청와대는 두 차례에 걸쳐 검찰 수사팀을 공중분해시키고 법원이 적법하게 발부한 영장까지 깔아뭉갰다.

기소된 청와대 비서관은 사직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검찰총장은 공수처 수사 대상"이라며 큰소리를 친다.

여당은 선거 공작 혐의를 받는 전 울산경찰청장이 출마한다고 하자 '후보 적격' 판정을 내렸다.

독재 정권 때도 상상하기 어려운 일들을 안면 몰수하고 밀어붙이고 있다.

앞으로 또 어떤 수사 방해와 검찰 장악 시도가 있을지 알 수 없다.

사명감을 가진 검사들이 끝까지 진실을 파헤치기를 바랄 뿐이다.

이 순간은 한국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기로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