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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진짜 1야당"···진중권 '입'에 밀린 한국당 100명

바람아님 2020. 2. 2. 09:17

[중앙일보] 2020.02.01 05:00


“그야말로 진짜 제1야당이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뉴스1]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뉴스1]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의 친문 저격수 변신에 보수 지지층이 열광하고 있다. 그는 “미라 논객을 문빠 좀비들이 저주의 주문으로 불러냈다”(15일)고 선언한 뒤 현 정부 집권층과 전면전을 벌이고 있다. “임종석은 언론플레이로 선동하지 말라”(30일) “민주당은 빼고 찍자”(31일)는 직설을 마다하지 않는다.  
 
언론 보도 횟수로 봐도 진 전 교수는 대여 투쟁의 선봉장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뉴스 빅데이터 분석시스템 ‘빅카인즈’에서 1월 ‘진중권’이란 키워드로 검색된 기사는 54개 주요언론사 기준 976건이었다. 대부분 여당을 공격하는 내용이다. 황교안(4935건)ㆍ심재철(1855건) 등 한국당 ‘투톱’보단 적었지만, 곽상도(305건)ㆍ주광덕(222건) 의원 등 한국당 주포급 공격수보단 세배 이상 많이 등장했다. 
 
진 전 교수의 맹활약 배경에는 ‘내부고발자’라는 정당성이 저변에 있다는 분석이다. “조국 사태로 광기를 느꼈다”는 김경율 전 참여연대 공동집행위원장의 경우처럼, 진보 논객인 진 전 교수가 여당 비판에 나선 만큼 설득력을 얻는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진 전 교수는 “김어준씨가 (영화제작비) 20억원을 착복한 것이다. 이건 내 얘기가 아니라 정봉주가 한 얘기”(16일) 등 진보 인사가 아니면 알기 어려운 주장을 해왔다.
 
진 전 교수의 활약이 거침없을수록 반대로 “왜 자유한국당은 진중권처럼 싸우지 못했나”는 지적도 보수진영에서 나온다. “엄동설한에 내버려진 들개처럼 싸울 것”(김성태 전 원내대표)이라며 수년째 “가열찬 대여투쟁을 강조”(나경원 전 원내대표)해 왔다고 자평했지만, 진 전 교수의 화력과 비교할 때 “한국당은 확실히 무디다”는 자체 비판이 공공연하다.  
 
진 전 교수의 논법에서 두드러지는 건 사건을 인물과 엮는 방식이다. 지난 보름(1월 15일~30일) 간 진 전 교수가 직접 작성(기사 단순 공유 제외)한 페이스북 메시지 59건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이는 조국(46회) 전 법무부 장관이었다. 최강욱(35회), 추미애(28회), 문재인(20회)보다 자주 등장했다. “(원종건 논란 이후) 이게 민주당 마인드. 조국 사태가 괜히 일어난 게 아니다”라며 주로 민주당에서 일어나는 각종 문제를 조 전 장관과 연관 지었다.  
 
 
특히 보수진영에선 ‘진중권의 인문학’에 주목한다. “정치인들의 일상 어법과 달리 진 전 교수가 구사하는 레토릭(rhetoric, 수사)에는 내면화한 철학이 묻어 있다. 그런 표현들이 중도ㆍ보수 지지층의 감성을 자극하는 것”이라면서다. 좌파인사면서도 좌파의 이중성을 예리하게 포착해내는 진 전 교수의 ‘거리두기’가 반공과 성장주의에만 기댄 채 정치적 사유를 게을리했던 우파의 민낯을 드러냈다는 진단도 나온다. 한국당 관계자는 “100명이 넘는 ‘금배지’가 어떻게 반대편 평론가 한명의 ‘입’을 따라가지 못하나. 진중권한테 ‘잘한다’고 박수칠 게 아니라 솔직히 창피한 일”이라고 했다.  
 
2008년 18대 총선 이후 친이ㆍ친박 등 철저히 계파 논리에 의해서만 물갈이가 진행된 게 결국 독이 됐다는 분석이 적지 않다. 당 오너를 향한 줄서기에만 집중하면서 개별 의원의 경쟁력을 스스로 갉아먹었다는 뜻이다. 야권의 한 원로급 인사는 이를 “의원다움이 사라진 것”이라고 평가했다. 의견을 부딪쳐 가면서 새로운 정책이나 방향을 창출하지 못한 채 그저 지도부의 눈치만 살피는, 자기 검열이 한국당의 독특한 정당 문화로 이어져 왔다는 것이다. 한국당의 한 초선의원은 “진 전 교수처럼 쓴소리를 내뱉었다간 '그렇게 잘났냐'는 비아냥만 들었을 것”이라며 “좋은 게 좋은 거지라는 자기 안주가 보수의 철학을 증발시켰다”라고 말했다.
 
한영익ㆍ이가람 기자 hanyi@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