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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문의 뉴스로 책읽기] [188] 전염병 같이 앓는 게 우방국 도리 아니다

바람아님 2020. 2. 4. 15:19

(조선일보 2020.02.04 서지문 고려대 명예교수)


G. M. 트리벨리언 '영국사회사'


서지문 고려대 명예교수서지문 고려대 명예교수


14~17세기까지 세계의 여러 곳을 무자비하게 강타했던 흑사병은 1347~ 1351년 사이에만

유럽 인구의 3분의 1 이상을 앗아갔다고 한다.

'영국사회사'를 보면 이 참혹한 비극은 역설적으로 민주주의와 인권 발전의 중요한 출발점이 되었다.

중세의 서민은 대부분 농노로서 한 뼘 땅을 경작하기 위해서 영주에게 일주일에 사흘간 노역을

제공해야 했는데 인구가 줄어서 땅을 경작할 사람이 크게 부족해지자 몸값이 높아져서,

합의한 지대(地代)를 내면 그만인 임대 경작자가 되었고 계약도 안정적인 종신 내지 장기 계약이 보편화되었다.

기회를 잘 포착해서 자영농으로 부상하는 농노도 많았고 잉여 경작지에 양을 방목해서 영국이 유럽 굴지의

양모 생산·수출국이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전까지는 전 세계를 통틀어 전쟁에서 죽은 군인보다 역병으로 죽은 군인이 많아서

전쟁의 승패가 병력이나 무기, 전술보다 역병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15~16세기 유럽인 정복자들은 남미와 북미의 원주민들에게 홍역과 천연두를 선사해서 항체가 전혀 없었던 원주민 인구를

10분의 1, 심지어 100분의 1로 초토화하고, 그 대신 얻어 온 매독은 16~17세기 유럽 상류사회의 피할 수 없는 동반자였다.


의학의 발달은 인류를 결핵이나 홍역, 나병, 콜레라 등 공포의 질병들에서 구했지만 20세기 후반에도 에이즈,

에볼라 등 공포의 괴질이 인류의 의학적 자만을 비웃었다.

21세기에 들어서도 사스와 메르스의 기습으로 인류가 허둥거렸는데 번번이 호되게 당하면서도 한국과 중국 등은

국가적인 전염병 대처 시스템을 제대로 수립하지 않았다는 것이 놀랍고 한심하다.


공포의 전염병은 피해도 엄청나지만 새로운 역사의 전기를 제공하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하루빨리 감염 경로별로 전염성 질환의 대처 매뉴얼을 만들고 분야별로 동원할 의료진 명단도 작성해서

매년 보완해야 한다. 또한 중국과의 관계도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

품귀를 초래해서 국민이 마스크를 구할 수 없을 정도로 수백만 장의 마스크를 지원금과 함께 중국에 헌납했는데

텅 빈 우한 공항에 우리 국민 수송용 비행기가 내리고 뜨는 것을 중국이 허락하지 않아 집결한 한국민들을

공포에 떨며 무작정 기다리게 하다니.

이런 방자함도 '소국'을 자처하며 참아야 하는가?


보복과 다른 차원에서 정부는 하루 2만 명이라는 중국인의 입국을 단호히 차단해야 한다.

전염병도 온 국민이 같이 앓아주는 것이 우방국의 도리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