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20.02.05)
싱하이밍 신임 주한 중국 대사가 4일 "세계보건기구(WHO)는 여행과 교역 제한을 권고하지 않았다"며
"가장 과학적이고 권위 있는 WHO 결정을 따르면 된다"고 했다.
싱 대사는 이날 WHO·과학·권위라는 말을 반복했다.
변종 전염병이 창궐하는 중국에서 오는 입국자를 제한하는 일이 비과학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WHO 이상의 과학적 권위를 가진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는 중국 방문 외국인의 입국 금지를 강조하며
"과학이 다른 모든 것에 우선해야 한다"고 했다.
중국 우호국인 북한은 국경을 봉쇄했고 러시아도 국경 통제를 강화했다.
지금 중국이 방패로 쓰는 WHO는 '중국 돈' 영향력 아래에 놓인 기관이다.
중국은 2017년 WHO에 100억달러를 지원하겠다고 했다.
현재 WHO 사무총장도 선거 당시 중국 지원을 받았다.
중국 문제에 관한 한 객관성을 잃은 기관이다.
싱 대사는 "중국은 타국 확산을 효과적으로 줄였다" "완치 환자가 사망자를 넘어섰다"
"중국이 방역 모범이라는 국제 평가를 받았다"고 했다.
중국 내 확진자가 2만명을 넘어선 현실과 동떨어진 얘기다.
미국 대사가 이런 말을 했다면 민주당과 지지층은 '주권 훼손'이라고 반발했을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은 이날 회의에서 "질병보다 가짜 뉴스를 차단해야 한다"
"일본의 원전 오염수 방류를 묵과할 수 없다"고 했다.
"당리당략으로 불안 심리를 조장하는 세력이 있다면 심판해야 한다"며 야당을 겨냥하기도 했다.
중(中) 대사에게 맞장구를 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여권인 정의당과 대안신당도 이날 "중국 체류 외국인의 입국 제한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래도 정부와 민주당은 "중국은 친구" "중국 혐오를 차단해야 한다"고 한다.
친구에게는 병을 옮겨도 되나.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민주당이 이러는 것은 김정은의 총선 전 답방이 물 건너가자 시진핑 주석 방한에 매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국에서 오는 입국 제한을 확대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요구를 '정치적'이라고 비난한다.
정작 국민 건강보다 표 얻는 게 우선인 사람들이 누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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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중국 '내정간섭'엔 왜 아무 말 못하나
중앙일보 2020.02.05. 00:26한국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이라는 전쟁의 모든 전선(戰線)에서 패배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국민 건강 안전망은 진즉에 뚫렸고, 민심은 차갑게 돌아섰으며, 가뜩이나 어렵던 경제는 휘청거린다. 한때 “과도한 불안을 갖지 마시라”(지난달 26일)던 대통령이 “최악 상황 대비”(4일)을 주문하고 나선 타이밍은 지지율 하락 발표(3일)와 겹쳐 공교롭다.
민심을 놓쳤으면 중국의 마음이라도 잡았으면 좋으련만, 이마저도 실패. 중국인 전면 입국금지 카드를 놓고 정부가 우왕좌왕, 노심초사, 우물쭈물 3종 세트 신공을 발휘해준 덕이다. 입국금지는 중국의 콧털을 건드릴 게 뻔하고, 중국의 전략적 중요성 역시 누구도 부인 못한다. 대통령이 “한국도 작은 나라지만 중국몽(中國夢)에 함께 할 것”이라고 했던 2017년 방중 연설의 기억도 생생하다. 그럼 처음부터 “입국금지는 없다”고 중국에 확실히 손내미는 배짱이라도 보였어야 한다.
마침 좋은 핑계가 있지 않은가. 중국이 631만 달러(약 74억원)를 지원하는 세계보건기구(WHO) 말이다. WHO가 발벗고 나서서 중국 대변인을 자처하고 있으니 처음부터 묻어갔으면 될 일이다. 마침 막 한국에 부임한 싱하이밍(邢海明) 중국대사가 친히 “한국이 WHO 규정에 부합하는 결정을 내릴 것으로 기대한다”(1일 중앙일보 차이나랩 인터뷰)고 친히 가이드라인까지 제시해주지 않았나.
결국 정부는 3일 뒤늦게 발원지 지역의 중국인만 입국 금지하겠다고 발표했다. 머리를 짜내느라 고생한 데 대해선 심심한 위로를 표하는 바이지만, 바이러스가 중국 전역에 퍼진 건 4월 총선 유권자 모두가 주지하는 사실이다. 묘수는커녕 하수 중의 최하수다. 차라리 북한처럼 재빨리 국경을 봉쇄하되 정권 수반 명의의 위로전과 소정의 지원금, 대중 관계를 담당하는 간부를 중국에 보내는 제스처라도 취했어야 한다. 역시, 구문(舊聞)이지만 외교는 북한이 몇 수 위다.
갑자기 궁금한 점.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의 발언을 놓곤 “내정간섭”이라며 어감마저 끔찍한 ‘참수 경연대회’로 발끈했던 분들은 갑자기 왜 조용하신가. 콧수염까지 마음에 안 든다며 “추방하라”고 주장해 미국 뉴욕타임스, 영국 가디언에까지 등장했던 분들 말이다. 싱 대사가 4일 기자회견까지 열고 “많이 평가하지는 않겠다”면서도 다시 WHO 권고를 따르라고 했는데도 이분들, 너무 조용하다. ‘작은 나라’라서 그런 건가. 물론 괴상망측한 퍼포먼스는 어느 누구를 향해서도 있어선 안 될 일. 이래저래 씁쓸한 시절이다.
전수진 국제외교안보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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