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고전·고미술

[ 동양화가 말을 걸다]春花가 몸을 열면 선비들 가슴에 꽃불이 일고…이유신 포동춘지(浦洞春池)

바람아님 2014. 1. 22. 17:40
▲ 이유신 ‘포동춘지’ 30×35.5㎝, 동산방

    “3월에 남쪽에서 매화 핀다는 소식이 들리면 시간되는 사람끼리 모여 바로 출발하지요.”
   
 한 달 전에 수술을 하고 폄적(貶謫)당한 사람처럼 방안에만 틀어박혀 있는데 지인이 전화를 해서 솔깃한 제안을 내놓는다. 매화

구경이라니. 얼마 만에 들어보는 꽃 같은 소리인가. 완강한 겨울에 갇혀 오는 봄이 믿기지 않을 때면 섬진강에 갔었다. 죽지 않고

살아 나니 이번에도 갈 수 있겠구나. 전화를 받은 순간부터 내 마음속에서는 매화꽃이 펑펑 피어나기 시작했다. 섬진강 줄기를

따라 안개처럼 피어있던 매화꽃이 시큼한 향기를 뿜으며 어른거렸다. 매화꽃을 만나러 가는 길에 마음 맞는 사람끼리 나누는

대화는 얼마나 풍성할 것인가. 생각만으로도 벌써 마음속에 온기가 밀려든다.
   
   
   봄꽃 위로 저녁 해가 뉘엿뉘엿 지거든
   
   계절은 바야흐로 봄. 복숭아꽃, 살구꽃이 ‘꽃대궐’을 이루는 화락(花樂)의 시간이다. 천지가 꽃으로 붉게 달아오르는 봄날,

집안에만 무심히 앉아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오히려 이상하다. 봄에는 조금 들떠도 좋다. 꽃을 핑계 삼아 한 사람이 연통

(連通)을 돌리면 지인들이 주르르 엮이게 되어 있다. 계절에 민감한 친구가 돌린, 번개팅을 알리는 쪽지는 이러하다.
   
   ‘오늘 저녁 유시(酉時). 봄꽃 위로 저녁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장관을 감상하시려거든 포동(浦洞)의 물가로 오시라. 회비는

무료. 흥에 겨워 시 한 수 읊을 수 있으니 지필묵 휴대 바람. 춘화(春花)가 난분분(亂紛紛)하니 곳간에 숨겨둔 곡주 한 병씩 들고

와도 모두 용서됨.’
   
   아침에 돌린 간찰(簡札)을 받고 여덟 명의 지인이 득달같이 달려왔다. 아무리 바쁜 일이 있다 한들 ‘만화방창 호시절’에 어이

아니 오겠는가. 번개팅이라 선약이 있는 친구 둘은 애석하게도 참석하지 못했다. 두 사람은 후일담을 들으며 두고두고 아쉬움을

달랠 것이다. 좋은 장소에 좋은 사람들이 모였으니 오늘만큼 행복한 날은 없으리라.
   
포동의 물가에 반가운 얼굴들이 모였다. 생명 있는 풀과 꽃이 향기로운 체취를 흩날리면서 오늘 모인 사람들을 환영한다. 연못

속의 물풀은 미처 얼굴의 물기를 닦지도 못한 채 뛰쳐나왔다. 노을 속에 붉게 상기된 복숭아꽃은 굳이 설렘을 감추려는 기색도

없이 손님을 맞는다. 살구꽃도 뒤질세라 발목까지 발그스레하게 상기되어 시인의 눈앞을 어슬렁거린다. 가지마다 돋는 은밀한

속정. 춘화(春花)가 몸을 열어 지분 냄새를 풍길 때마다 선비들의 가슴에도 열꽃이 돋는다. 부끄러움은 나중 일. 무슨 수로 가슴

속의 꽃불을 끌 수 있으랴. 꽃과 살 섞고 망가지는 것이 우선이다. 격정이 지나고 난 자리에는 흥분한 시(詩)편들이 널려 있다.
   
   
   저녁 노을 진 포동의 저물녘
   
   그날의 정경을 탁월한 붓질로 전해주는 이유신(李維新·18~19세기)의 재주 때문에 그림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감상자의

마음이 봄빛으로 물들 것 같다. ‘포동의 봄 연못’을 그린 이 작품은 ‘포동춘지(浦洞春池)’라는 제목으로 기념되었다.

그림 위쪽에는 그날의 정경을 묘사한 듯한 천원(泉源)이란 사람의 제시가 적혀 있다. 그림 속에 시가 있고(畵中有詩),

시 속에 그림이 있다(詩中有畵). 제시를 살펴보자.
   
   ‘물 맑은 포동의 물가(水淸浦洞漵)
   꽃향기 가득한 포동의 저녁 노을(花香浦洞霞)
   풀밭에서 시 짓고 술 마시며(詩樽芳艸上)
   물도 보고 꽃도 보고(看水又看花)’.

   
   봄 풍경을 그린 ‘포동춘지’는 ‘귤헌납량(橘軒納凉·여름)’, ‘행정추상(杏亭秋賞·가을)’, ‘가헌관매(可軒觀梅·겨울)’와 같은 화첩에

들어 있다. 네 작품 모두 윤필(潤筆)로 계절의 변화과정을 서정적으로 전해주는 명작이다. 이 화첩은 사계절을 한 화첩에 담은

‘사계산수화(四季山水畵)’ 중에서 가장 싱그럽고 운치 있는 작품이다. 그림을 보는 순간 그림 속의 장소에 가 보고 싶다는 생각

이 들 정도로 매력적이다. 그의 참신한 색감과 화풍은 신윤복(申潤福)에서 김수철(金秀哲)로 이어지는 이색화풍(異色畵風)의

연장선상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가을, 서울에 있는 한 화랑에서 이 작품들이 전시되었을 때 넋을 잃고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다만 겨울 풍경인 ‘가헌관매’가 출품되지 않아 매우 아쉬웠다. 소장처를 알 수 없어서라고 하는데 다음 기회에는

꼭 출품되었으면 좋겠다.
   
   이유신은 조선 후기의 여항(閭巷) 문인화가다. 자(字)는 사윤(士潤)이고 호는 석당(石塘)인데 가계와 행적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여항문인 유재건(劉在建·1793~1880)이 쓴 ‘이향견문록(里鄕見聞錄)’에 그에 관한 간략한 기록이 실려 있어 그가 중인

출신의 문인화가였음을 알 수 있다. 현존하는 그의 작품들은 대부분 산수화로 간략한 구도와 담담한 색의 사용이 특징이다.

 ‘포동춘지’는 이유신의 물기 젖은 화풍을 확인할 수 있는 귀한 작품이다.
   
   
   명월이 만공산하니 쉬어간들 어떠리
   
   이백(李白·701~762)은 ‘춘야연도리원서春夜宴桃李園序)’에서 이렇게 탄식했다.
   
   ‘천지는 만물이 잠시 쉬어 가는 여관이고, 시간은 긴 세월을 거쳐 지나가는 길손이다. 덧없는 인생은 꿈같이 허망한데, 우리가

즐긴다 한들 얼마나 되겠는가? 때문에 옛사람들이 촛불을 들고 밤에도 노닌 것은 참으로 까닭이 있었구나!’
   
   계절도 즐기고 몸도 돌보라는 ‘경고’처럼 몸에 생긴 종양을 떼기 위한 수술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병원 창밖으로 탄천을 걷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들은 한기로 가득한 1월의 시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옆사람과 웃으며 걷고 있었다. 그들의 모습이 꼭

딴세상 사람들처럼 생소했다. 문득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내가 보였다. 내가 언제 저 사람들처럼 마음 편히 냇가를 거닐면서

즐겨본 적이 있었던가. 인생이 꿈처럼 허망하게 지나갈 텐데 나는 너무 노예처럼 일만 하고 살았구나. 옛사람들처럼 촛불을 밝혀

술자리를 벌인다 한들 무에 그리 자책할 만큼 인생을 낭비하는 사치가 될까. 좋아하는 사람들과 꽃그늘 아래서 만나 술잔을

부딪치며 부드럽고 따스한 얘기를 나누는 것이야 말로 진정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해 주는 기쁨이 아닌가.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정말 소중한 것을 놓치고 말았다. 내게 다시 삶이 주어진다면 일중독에서 벗어나 하루에 한 번씩은

하늘을 올려다보고 흘러가는 바람 속에 얼굴을 적셔 보리라. 꽃피는 밤이면 보고 싶은 사람에게 불시에 전화를 걸어 무조건

만나자고 억지도 부려 보리라. 어둠에 묻혀 산책하는 사람들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나는 거듭 중얼거렸다.
   
   그런 의미에서 젊은 나이에 삶의 진리를 꿰뚫어볼 줄 알았던 황진이는 얼마나 통찰력이 뛰어난 시인인가. 이제 나는 청산리

벽계수가 되지 않겠다. 앞만 보고 달려가서 바다에 도착한 후 다시는 되돌아갈 수 없는 것을 알고 후회하는 거친 물살이 되지

않겠다. 밝은 달이 빈 산에 가득할 때 잠시 쉬어가는 사치를 잊지 않으리라. 달밤을 거닐면서 벽계수 같은 친구가 있다면 읊어

줘야겠다.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 감을 자랑 마라
   일도창해하면 다시 오기가 어려우니
   명월이 만공산하니 쉬어간들 어떠리’.

   
   명월(明月)이 만공산(滿公山)하는 장관을 건성으로 보고 살았다면 그대여, 가끔은 고개를 들어 달을 쳐다보는 여유를 가져

보시라.

 조정육
   
  홍익대 한국회화사 석사, 동국대 박사 수료. 성신여대 대학원, 동국대 대학원 강의. 저서 ‘그림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거침없는 그리움’ ‘꿈에 본 복숭아꽃 비바람에 떨어져’ ‘조선이 낳은 그림 천재들’ ‘우리나라 대표 그림’ ‘그림공부, 사람공부’

 

 

[이유신-'포동춘지(浦洞春池)'에 관한 다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