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이미 비주류 됐는데, 그들만 스스로 주류인 줄 알아"
중앙일보 2020.04.17. 00:05
[직격인터뷰]
깨끗하지도 않고 능력도 없고
위기라는데 동의하지도 않는다
탄핵정국 뒤엔 개혁파 씨말라
황 대표는 진작 물러났어야
이번 총선, 60대서도 졌을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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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이 압승했고 통합당은 유례없는 패배를 당했다. 여당은 개헌만 빼고 마음먹은 일은 다 할 수 있게 됐다. 민심은 보수 야당에 전국 단위 선거에서 네 번 연속 대패를 안겼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16일 오전 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를 서울 여의도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1991년 민을 설립해 30년 가까이 수많은 선거를 지켜봤다.
Q : 총선 결과를 보고 어땠나.
A : “처음 딱 느낀 건, 대한민국 주류 교체가 완성됐다는 거다.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 2020년 총선이란 한 사이클에서 헌정 사상 한 정당이 이렇게 이긴 건 처음이다. 66%의 투표율은 양 진영이 다 결집해 투표한 건데 한마디로 보수가 완전히 몰락하고 이제 비주류가 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과거 ‘자기가 정치하는 목적은 주류를 교체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게 허언이 아니라는 게 이번에 확인된 거다.”
Q : 보수 야당이 참패한 이유는.
A : “한국 보수는 1950년대부터 한 80년대까지는 안보 보수가, 90년대에는 시장 보수가 우리 사회를 주도했다. 그 이후 새 보수가 못 나온 거다. 안보·시장 보수가 시대 흐름을 놓쳤다고 봐야 한다. 한반도 이슈가 통일에서 평화로 이동했는데 안보 보수는 빗장을 걸어 잠갔다. 북한과 대화한 대통령은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셋이다. 세 대통령이 대화하는 동안 보수는 북한 붕괴론에 기반해 뒷전으로 물러나 있었다. 시장 보수도 부(富)가 한쪽으로 집중돼 분노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데도 여전히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레퍼토리만 반복하니 안 되는 거다. 인식을 분명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Q : 그래서 젊은 층이 돌아선 건가.
A : “사실 2010년 지방선거 때부터 보수는 20~40대에 참패를 당했다. 2012년 총선에서 152석으로 새누리당(미래통합당의 전신)이 이기지만 20~40대에선 진다. 2014년 지방선거와 2016년 총선도 마찬가지다. 그러다 2017년부터는 50대에서도 진다. 그해 대선, 지방선거, 이번 총선까지 20~50대는 다 진보로 넘어갔다. 이번에 60대에서도 졌을 가능성이 있다. 그럼 한국 보수는 70대 이상에서만 이기는 정당이다. 이번 여론조사에서 깜짝 놀란 게 60대 이상에서 민주당 지지가 30%라 했는데 60대만 떼어놓고 보면 다른 결과가 나왔을지도 모른다는 거다.”
Q : 다른 이유도 있을 것 같다.
A : “미래통합당의 전신인 자유한국당은 정당의 비호감도가 호감도보다 다섯 배 높았던 적이 있다. 선거에선 비호감도가 두 배만 높아도 이길 수가 없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도 싫지만, 황교안과 미래통합당은 더 싫다’는 이걸 극복하지 못한 거다. 예전엔 ‘부패했지만 유능한 보수. 진보는 깨끗하지만 무능하다’는 것이라도 있었지만 지금 보수는 깨끗하지도 않고 능력도 없다는 거다.”
Q : 심판론은 왜 작동하지 않았나.
A : “선거할 때 세 가지를 본다. 좋아해서 찍거나, 필요해서 찍거나, 상대가 싫어서 찍거나다. 팬덤 같은 건 문 대통령과 민주당이 압도적이다. 보수가 뼈아픈 건 필요 때문에 찍어야 한다는 건데, 보수가 매력은 덜하더라도 ‘국정 능력은 더 뛰어나다’ 그런 게 있어야 하는데 젊은 사람들은 그게 아닌 거다.”
Q : 통합당은 왜 안 바뀌는 건가.
A : “컨설팅할 때 우선 ‘위기에 동의하느냐’를 묻는다. 그런데 보수는 위기라는데 동의를 안 한다. 한국 사회 보수 전체가 그렇다. 무슨 얘기냐면 여전히 자기들이 주류라고 생각한다. 내로라하는 그들이 다 앉아서 하는 얘기는 ‘문재인 정권, 이상한 놈들 때문에 나라 망하고, 베네수엘라 될 거고, 참 한심하다’ 그러고 있는 거다. 그 사람들이 이미 비주류가 됐는데 그들만 스스로 주류인 줄 안다.”
Q : 보수 야당이 앞으로 어떻게 가야 하나.
A : “과거 보수 정당에는 나름 개혁파가 있어 긴장감이 있었다. 남원정(남경필·원희룡·정병국)이라든지 개혁을 얘기하는 이들이 있었다. 2016년 총선 때 공천을 못해 아주 당이 망가졌다. 그 뒤 탄핵 정국이 되고 자유한국당이 되면서 개혁파의 목소리가 씨가 말랐다.”
Q : 코로나19는 어떤 영향을 미쳤다고 보나.
A : “큰 영향은 안 미쳤다고 본다. 본질적으로 진영에 대한 평가가 주를 이뤘다. 코로나19가 정부의 실정에 대한 비판을 덮었지만, 승리의 본질적 이유는 아니라고 본다. 다만 적어도 공천을 이런 식으로 하지 않았다면, 막말이 아니었다면 이런 정도까진 가지 않았을 거란 생각은 한다.”
Q : 공천도 문제가 컸는데.
A : “홍준표·김태호 등을 마치 경쟁자를 쳐내듯 했는데 다 살아 돌아왔다. 민심이 한심한 공천을 했다고 보는 것 아니겠나. 공천은 전략도, 원칙도, 콘셉트도 없다. 어떤 사람은 컷오프시키고, 어떤 사람은 살려서 경선시키고, 옆 동네로 이동시키고…. 나는 2016년 공천이 최악의 공천인 줄 알았는데 2020년이 최악의 공천이다.”
Q : 황교안 대표가 물러났다.
A : “진작 물러났어야 했다. 차명진, 김대호 때문에 무너진 게 아니고 황 대표가 아주 실수를 더 많이 했다.”
Q : 보수는 어떻게 해야 재건할 수 있나.
A : “너무 갈 길이 멀어서…. 사람으로 표현하면 어떨지 모르지만 금태섭과 진중권을 좋아하는 사람들까지는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정당이 돼야 한다. 그래야 이긴다.”
Q : 보수의 폭이 넓어져야 한다는 건가.
A : “굉장히 지금 좁은 거다. 이걸로는 이길 수가 없다. 정치적 자폐증이다. 박근혜 정부 때부터 그러다 유승민 파동이 나고, 2015년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가 터졌을 때 거의 보수가 정치적 자폐증으로 돌아가서 완전히 길을 잃었다.”
Q : 103석의 통합당은 어떻게 해야 하나.
A : “‘새로운 것으로 완전히 뒤엎고 탈피하지 않으면 안 되겠는데’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좀 세게 말하면 (완전히 뒤엎을) 가능성이 거의 제로다. 그 구성원들이 그런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지 않나. 당명도 다시 다 바꿔야 하고, 보수는 이 사이클로 그냥 ‘끝났다’고 생각하고 완전히 제로 베이스로 다시 시작해야 한다. 민주당도 시간이 가면서 균열이 생길 거고, 방황하는 중도 진보와 중도 보수가 신뢰하고 참여할 수 있는 정당이 나와야 한다. 왜 우리가 선거를 네 번 연속으로 졌는가 하는 원인을 분석하고, 형식적인 백서가 아니라 이 상태로는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도출하고, 그래서 어떤 리더십을, 어떤 인물을 내세워야 할지 결론이 나야 할 거다. 그런 리더십이 당내 인사 중에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Q : 한동안 보수는 계속 헤매게 될 수밖에 없다는 건가.
A : “민주당이 그랬다. 노무현 정부 때 국민의 실망이 커 2007년 대선에서 500만표 차이로 지고 다음 총선에서 패했다. 당시 그렇게 싸웠는데 당명도 기억하지 못한다. 통합민주당, 민주통합당 이름을 바꾸고 탈당, 복당을 반복했다. 지금 보수 정당이 한 걸 그대로 다 했다. 그걸 일거에 해소한 건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이다. 그때부터 복원이 시작됐다.”
Q : 대선은.
A : “대선은 총선보다 덜 복잡하다. 선거를 연거푸 네 번 졌으면 다음 선거는 아무래도 민주당에 대한 피로감도 있고…. 출발은 지금 완전히 보수가 비주류이고 모든 환경이 밀려 있으며 인물 경쟁, 정당 경쟁, 진영 경쟁에서 다 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야당이고 도전자다’ 그런 인식을 분명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 확실한 대선주자 된 이낙연, 험난한 권력투쟁의 길 남아
「 ‘수퍼 여당’이 된 민주당에서 가장 주목받은 이가 이낙연 당선인이다. 전투(서울 종로)와 전쟁(총선)에서 모두 이긴 이 당선인은 이번 총선을 통해 차기 대선주자로서 확실히 자리매김하게 됐다. 평소 부족하다던 당내 입지도 탄탄하게 다졌다는 평가다.
Q : 이 당선인의 미래를 어찌 보나.
A : “많은 사람이 ‘친문이 이낙연을 선택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운 좋게도 친문의 많은 지지를 받는 상황 속에서 호남의 큰 지지를 받았다. 호남에서나 있었던 대망론인데, 그 대망론을 업고 선거에서 승리했기 때문에 일단 대세가 될 거로 보인다. 과거 고건이나 정운찬과는 다른 게, 당내에서 꾸준히 성장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순탄하게 그냥 가지는 않을 거다. 험난한 권력투쟁의 과정이 있을 거다.”
Q : 어떤 일이 있을 수 있나.
A : “이번 선거에서 ‘우리가 호남 대통령을 얼마나 갈망했나. 이낙연 호남 대통령 갑시다’라는 걸 느꼈다. 그러면 문 대통령 참모 중 ‘그게 현실’이라는 쪽과 ‘이낙연 안 돼’라는 쪽의 분열이 시작될 거다. 어차피 친문 대선주자가 없으니 박원순과 이재명도 어필하려고 나설 거다. 정세균 총리도 ‘나도 기회가 있다’고 할 거고. 이러면서 레임덕은 오고 분열이 되는 거다. 그건 피할 수 없을 거다.” 」
신용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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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칼럼 The Column] 권력을 잃은 야당이 왜 심판받았나
달라지지 않은 보수정치, 국민들이 심판한 것
리더십을 젊은 세대에게 과감히 양보해야 한다
맨 밑바닥까지 떨어졌다
또 졌다. 보수는 4년 전 총선에서 제1당을 내준 후 2017년 대통령 선거, 2018년 지방선거에 이어 이번까지 네 번 잇달아 선거에서 졌다. 이번 선거에서의 패배는 가히 역대급이다. 민주화 이후 선거에서 보수 정파의 의석이 제일 적었던 때는 2004년 국회의원 선거에서의 121석이다. 그러나 그때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에 대한 거센 역풍이 불었던 선거였다. 이번 선거에서는 2004년과 같은 격한 바람을 느낄 수 없었다.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 속에서 차분하게 치러진 선거였지만 미래통합당은 거의 몰락 수준으로 패배했다.
왜 이렇게 됐을까. 분명한 건 문재인 대통령이 '운'이 좋다는 점이다. 임기 중반에 치러지는 중간평가라는 선거의 의미가 초유의 전염병 사태로 크게 부각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경제가 위축되고 상점은 문을 닫고 일자리는 안 늘어나고, 북한은 계속 미사일을 쏘고 주변국 어디와도 잘 지내지 못하게 되었지만,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라는 눈앞의 위기가 이 모든 것을 다 덮어버렸다. 그러나 그 '운'으로만 돌리기에는 이번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얻은 의석수는 너무 많아 보인다. 민주당에 그 정도로 표가 몰린 건 문재인 정부에 대한 적극적 지지의 표현이라기보다 기존 보수 정치에 대한 강한 거부감으로 보아야만 설명이 가능할 것 같다. 문재인 정부에 아무리 실망이 크더라도 미래통합당은 더더욱 멀게만 느꼈던 많은 이들이 민주당에 표를 던진 것이다.
이번 선거 결과를 보면 보수 유권자들은 강하게 결집했다. 전통적 지지 기반인 대구, 경북은 물론이고 부산, 울산, 경남에서도 미래통합당 지지가 다시 높아졌다. 서울의 강남 벨트 역시 보수 세력에 대한 결집된 지지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게 전부였다. 이번 선거에서 미래통합당이 몰락한 것은 지지층이 이렇게 지역적으로 영남, 세대적으로 노령층, 이념적으로 '박정희 패러다임'의 강성 보수층으로 쪼그라들었기 때문이다. 충격적인 선거 결과가 보여 주듯이 이제 보수는 정치적으로 소수파, 비주류가 되었다. 보수 정치가 앞으로도 지금과 같은 모습이라면 향후 상당한 기간 동안의 선거에서도 승리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번 선거를 앞두고 개인적으로 흥미롭게 생각했던 구호가 '야당 심판론'이었다. 원론적으로 볼 때 대의민주주의에서 선거란 권력을 가진 세력이 임기 중 이뤄낸 정책 성과를 유권자들이 평가하고 심판하는 행사이다. 당연히 심판의 대상은 집권 세력이 되어야 하지만, '야당 심판론'이 제기되었고 거기에 공감한다는 응답도 상당히 높았다. 도대체 권력을 잃은 야당이 왜 심판받아야 할까.
이번 선거는 2017년 탄핵 이후 실시된 첫 번째 국회의원 선거이다. 20대 총선은 2016년 4월 실시되었지만 촛불 정국과 탄핵은 그해 가을 이후에 일어났기 때문에 20대 국회는 촛불 집회에서 터져 나온 민심을 원천적으로 반영할 수 없었다. 당시 촛불 집회에 보수, 진보 할 것 없이 그렇게 수많은 사람이 몰려나온 것은 박근혜·최순실 사건을 넘어 정치를 바꿔야 한다는 강한 염원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일차적 대상은 당시 집권 세력으로 그 사태의 책임을 져야 했던 보수 정치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후에도 보수 정치는 달라지지 않았다. 분당과 재통합이 이뤄졌을 뿐 실제 보수 정치의 그릇 속에 담긴 내용물은 예전 그대로였다. 선거를 앞두고 보수 통합을 이뤄냈다고 했지만 새로운 인물, 새로운 가치가 제시되지 못한 통합은 그저 예전 상태 그대로의 복귀였을 뿐이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지난 3년간 보수 정파에 대한 지지율은 20% 전후에 머물러 있었지만, 있지도 않은 '숨어 있는 보수, 샤이 보수'를 만들어내며 촛불 집회 이후의 변화된 현실을 부정했던 결과가 오늘날 이런 선거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야당 심판론은 이런 이유로 공감을 얻었다.
이젠 바뀌지 않으면 보수의 미래는 없다. 선거를 앞두고 박근혜 전 대통령이 옥중 편지를 통해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했지만 사실상 전혀 먹히지 않았다. 이제 그 시대가 저물어간 것이다. 보수 정파가 다시 살아나려면 이제 보수를 이끌어오고 지켜온 박정희 세대가 젊은 세대에게 양보해야 한다. 이번 선거에서 미래통합당은 30·40대 유권자들에게 철저하게 외면받았다. 보수에 과거의 전통, 오늘의 질서는 대단히 중요한 것이지만 거기에 집착해서는 보수의 미래는 없다. 당 리더십의 과감한 세대교체를 통해 새로운 세대의 보수가 변화의 길을 열고 나갈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할 때이다. 보수는 이제 정말 맨 밑바닥에까지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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