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고전·고미술

[동양화가 말을 걸다]너만 화가냐 나도 화가다-맹호도와 까치호랑이

바람아님 2014. 2. 9. 21:31
▲ 작자 미상 ‘맹호도’ 조선 후기, 종이에 연한 색, 96×55.1㎝, 국립중앙박물관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이야기다. 환인(桓因)의 아들 환웅(桓雄)은 늘 가슴속에 인간 세상에 내려가 살고 싶다는 ‘로망’을 품고 있었다. 이를 알아차린 아버지는 천부인(天符印) 3개를 주며 아들의 앞길을 축복했다. ‘꿈은 이루어진다’는 좌우명을 한시도 잊지 않았던 환웅은 아버지의 전격적인 지원을 받고 배낭을 꾸렸다. 환웅의 뒤를 따라 3000명의 ‘드림팀’이 태백산 꼭대기의 신단수(神檀樹) 아래에서 짐을 풀었다. 이두박근 삼두박근이 우람한 3000명의 신들은 ‘굴삭기’로 땅을 파고 ‘엔진톱’으로 소나무를 잘라 궁벽한 태백산 오지에 ‘신도시(神都市)’를 뚝딱 완성했다.
   
   그런 어느 날이었다. 환웅이 숲속을 얼쩡거리던 곰과 호랑이를 은밀히 불렀다. 내가 이 성스러운 도시에 나를 꼭 빼닮은 옥동자의 후손을 퍼뜨릴 ‘프로젝트’를 계획 중인데 의향 있으면 한번 응모해 봐. 그렇게 내려진 ‘미션’이 동굴 속에서 쑥과 마늘로 100일을 견디는 ‘서바이벌 게임’이었다. 그 다음은 우리가 다 아는 얘기다. 최종 승자는 곰이었고, 호랑이는 다시 산중으로 돌아갔다. 호랑이는 사람이 되지 못했다. 대신 오천 년 동안 이 땅을 지키며 산 중의 제왕을 넘어 신령스러운 산신령이 되었다. 호랑이의 씨가 말라버린 지금까지도 호랑이는 여전히 한국의 상징이다. 그림 속에서 호랑이의 포효를 들어보자.
   
   
   나는 호랑이다
   
   “호랑이다! 호랑이가 나타났다!”
   
   박 서방이 소리친다. 질주하며 내지른다. 지게를 내던진다. 아이들이 우르르 일어나 달린다. 공깃돌을 집어던진다. 딱지가 흩어진다. 콩대가 넘어진다. 짚신이 벗겨진다. 감나무집 점복이가 넘어져 운다. 앞서 달리던 점순이가 되돌아온다. 낚아채듯 동생을 업고 내쳐 뛴다.
   
   부딪치고 엎어지면서 아이들이 빠져나가자 왁자지껄하던 골목길이 삽시간에 정적으로 가득하다. 사람들은 모두 방문을 잠근 채 숨소리를 낮추고 바깥 동정에 귀를 기울인다. 오래지 않아 멀리서 크르릉, 하는 짐승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드디어 나타났구나. 제발 아무것도 피해가 없어야 할 텐데.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돼지막의 새끼돼지도 걱정이고, 마당가에 풀어 놓은 오골계와 병아리도 걱정이다. 그렇다고 문 밖에 나갈 수도 없다. 사납기로 소문난 호랑이한테 걸리는 날이면 어느 누구도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그저 호랑이가 사라지기만을 기다리며 쥐 죽은 듯 숨어 있어야 한다.
   
   김홍도 작으로 추정되지만 작자가 알려져 있지 않은 ‘맹호도’에는 호랑이를 향한 사람들의 두려움과 공포심이 담겨 있다. 산중의 제왕을 바라보는 경외심이 뒤섞인 두려움이다. 시퍼런 불길이 뿜어져 나올 것 같은 형형한 눈빛. 언제라도 먹잇감을 향해 일격을 가할 수 있는 앞다리. 움직일 때마다 꿈틀거리는 긴 허리는 유난히 길고 날렵한 꼬리와 함께 그 앞에 선 사람의 간을 오그라들게 할 만큼 위협적이다. ‘임금 왕(王)’자가 겹겹이 이어진 등줄기는 이 호랑이가 뼈대 있는 가문 출신임을 말해준다.
   
   뼈대 있는 가문의 영물(靈物)을 그리기 위해 뼈대 있는 집안의 화가가 붓을 들었다. 화가는 바늘 끝처럼 가는 붓을 들더니 영물의 몸속에 흐르는 기(氣)를 통하게 했다. 호랑이의 맹기(猛氣)가 뿜어져 나오도록 세월 가는 줄 모르고 붓질을 더했다. 머릿속에는 ‘송하맹호도(松下猛虎圖)’의 도상이 들어 있었지만 소나무는 삭제했다. 사람들이 오로지 호랑이한테만 집중하도록 할 계획이었다. 얼굴이 드러나고 몸통이 완성되고 다리와 꼬리가 모습을 나타낼 때마다 화가의 얼굴에는 미소가 번졌다. 어둠 속에 숨어 있다가 먹잇감을 향해 불시에 습격하는 호랑이처럼 아무것도 없던 종이 위에서 호랑이 한 마리가 튀어나올 준비를 마쳤다. 화가의 붓을 통해 신화(神話)시대부터 조선의 산천을 누비고 다니던 호랑이의 위용이 성공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전신사조(傳神寫照)’란 이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형상을 통해 정신을 전해주는’ 전신사조는 초상화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살아있는 생명체를 그릴 때는 어디서나 필요한 덕목이다. 붓질을 마친 화가가 그림 뒤로 사라졌다. 멀어지는 화가의 귓전에 포효하는 호랑이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나는 호랑이다!”
   
   
   호랑이 같지 않은 호랑이
▲ 작자 미상 ‘까치호랑이’ 조선 후기, 종이에 연한 색, 93×60.5㎝, 삼성리움미술관
내가 처음부터 이런 몰골이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사는 것이 여의치 않다 보니 호랑이로서 품위를 지키는 것이 쉽지 않았을 뿐이다. 난들 왜 멋있는 호랑이가 되고 싶지 않았겠는가. 산천을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뭇 생명들을 제압하는 카리스마 넘치는 호랑이가 되고 싶었다. 자존심보다 중요한 것이 먹고사는 문제가 아닌가. 폼 잡는 것이 밥 먹여주는 것은 아니다. 물려받은 것이라곤 허울 좋은 통뼈와 글자도 흐릿한 족보책이다. 좁은 골목길을 걸을 때 거치적거리는 그 따위 유산은 생존경쟁이 치열한 생활전선에서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가진 것 없고 배운 것 없는 몰락한 집안의 후손이 호락호락하지 않은 세상에서 처자식 거느리며 살아가다 보니 고양이처럼 쪼그라들고 비굴해질 수밖에 없었다.
   
   ‘까치호랑이’ 속의 호랑이가 코흘리개 아이들에게 자신의 삶의 스토리를 들려줄 때 현장에 있던 동물들은 모두 눈가를 찍어 눌렀다. 젊을 때는 견딜만 했다,고 과거를 회상할 때 늙은 호랑이의 눈빛 위로 아련한 자부심이 스쳐 지나갔다. 밤새 먹잇감을 찾아 어둠 속을 헤집고 다녀도 한숨 자고 나면 거뜬했다,고 말할 때는 다시 호랑이의 살생본능이 발동하나 싶어 주변에 살짝 긴장감이 감돌기도 했다. 사슴, 고라니에서 멧돼지, 늑대까지 그의 발톱에 피를 보지 않은 집안이 없었다. 그런 맹수가, 이젠 환갑을 지나서 그런지 온 삭신이 쑤시고 다리 들어올리기도 힘들다고 고백한다. 어쩌다 저렇게 몰락했을까. 영웅의 몰락을 지켜보는 것은 고통스럽다.
   
   한물간 호랑이를 그리기 위해 한물간 동네 환쟁이가 초빙되었다. 늙은 호랑이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얘기를 하고 있을 때 환쟁이는 조용히 늙은 영웅의 모습을 기록했다. 환쟁이는 호랑이를 그리면서 흡사 자신의 초상화를 그리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그림 속 주인공이나 그림을 그리는 환쟁이나 늙고 쇠잔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환쟁이는 알고 있었다. 호랑이가 비록 자신의 무용담을 떠들고 있지만 호랑이에게는 한번도 화려했던 시절이 없었다는 것을. 환쟁이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비록 동네에서는 그림 좀 그린다고 폼 잡고 다니지만 죽었다 깨어나도 한양에서 본 ‘맹호도’를 그릴 수 없었다. 바늘처럼 날카로운 붓질로 촘촘히 박힌 호랑이털을 그릴 수 있는 천재성은 애당초 자신의 재능으로는 가 닿을 수 없는 프로들의 전유물이었다. 호랑이나 환쟁이나 삼류인생이었다.
   
   
   위대한 긍정이 전설을 만든다
   
   그래서 어쨌다는 건가. 잘나가는 호랑이만 호랑인가? 이 세상이 꼭 일류나 이류만 살아야 하고 삼류는 제거되어야 한다는 법은 없지 않은가. 무명화가의 ‘까치호랑이’ 속에는 자신의 작품을 작품이라고 보여줄 수 있는 당당함이 들어 있다. 일류작가가 세필(細筆)로 일일이 털 한 올 한 올을 그릴 동안 삼류작가는 몇 번의 붓질로 복잡한 과정을 생략해 버렸다. 정교함이 드러나야 할 자리에 대범함이 대신했다. 그러자 ‘까치호랑이’는 일류작가가 도저히 따라올 수 없는 개성적인 작품으로 변신했다. 남들이 자신을 민화작가라 수군거리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민화는 민화의 길이 있다는 확신 때문이었다. 만약 ‘맹호도’에 기가 죽어 ‘까치호랑이’를 부끄럽게 여겼다면 오늘날까지 이 작품은 남아 있지도 못했을 것이다. 민화작가는 주눅들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핸디캡’을 독창성으로 바꿀 줄 알았다. 그의 자부심과 결단에 의해 우리는 다양한 형상의 호랑이 그림을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개성 있는 호랑이를 만날 수 있었다. 멋있지 않은가. 너만 화가냐, 나도 화가다, 라고 소리칠 수 있는 민화작가의 자긍심이. 그것은 마치 사람이 되지 못한 호랑이가 자기 처지를 비관하지 않고 산속을 펄펄 날아다니다 종국에는 산신령으로 추앙받은 것만큼 위대한 자기변신이다. 위대한 긍정이다. 긍정과 자기 확신이 패자를 승자로 만들었다. 호랑이도 그림도.

 

 

 

 

 조정육
   
  홍익대 한국회화사 석사, 동국대 박사 수료. 성신여대 대학원, 동국대 대학원 강의. 저서 ‘그림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거침없는 그리움’ ‘꿈에 본 복숭아꽃 비바람에 떨어져’ ‘조선이 낳은 그림 천재들’ ‘우리나라 대표 그림’ ‘그림공부, 사람공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