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고전·고미술

[동양화가 말을 걸다]우리가 찾는 모든 문제의 해답은 전통에 있다-혜허 수월관음도

바람아님 2014. 2. 8. 21:10
▲ 혜허 ‘수월관음도’ 비단에 색. 142×61.5㎝. 일본 센소지(淺草寺) 소장
    한국미술사를 전공한 사람들이 가장 보고 싶어하는 작품 1순위는 혜허가 그린 ‘수월관음도’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 작품만 실제로 볼 수 있다면 여한이 없겠다는 생각을 하며 미술사를 공부했었다. 어느 누구도 실물을 본 적이 없이 그저 흐릿한 도판으로만 전해지던 작품이었다. 그런데 2010년 G20 정상회의 때 이 작품이 공개됐다. 쿵쾅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700년의 세월을 가로질러온 명화 앞에 서는 순간, 내가 그동안 복을 많이 쌓았다고 생각했다. 일본·미국·유럽 등 전 세계에 흩어져 있던 고려 불화(佛畵) 대표작과 중국·일본의 작품 108점 중에서 혜허의 ‘수월관음도’는 단연 최고였다. 오랜 세월을 견디느라 색이 조금 빛을 잃었지만 원판이 워낙 훌륭하다 보니 그 정도 흠이야 전혀 문제되지 않았다. 나머지 107점을 본 감동을 다 합해도 이 한 작품에서 받은 감동에 비하면 가벼울 정도였다. 도대체 사람들은 왜 이 작품에 열광하는 걸까. 이 작품의 매력은 무엇이며 어떤 의미가 있을까.
   
   
   고려를 대표하는 그림
   
   물방울 같은 광배(光背·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빛 장식) 속에 관음보살이 서 있다. 몸에 화려한 천의(天衣)를 걸친 관음보살은 오른쪽을 향해 살짝 몸을 틀었다. 오른손에는 버드나무 가지를, 왼손에는 정병(淨甁·부처님께 올리는 맑은 물을 담는 병)을 들고, 화면 왼쪽 아래에서 합장한 채 서 있는 선재동자(善財童子)를 내려다보고 있다. 정치(精緻)한 사라(紗羅·비단) 속에 감추어진 몸매는 더 이상 붓질이 필요없을 만큼 마르지도 뚱뚱하지도 않다. 대부분의 고려 불화가 작가 미상인 데 반해 이 작품은 혜허(慧虛)라는 승려 화가의 이름이 명문으로 기재되어 있다. 고려 불화의 양식을 고찰하는 데 중요한 기준작이다. ‘수월관음도’라는 정식 명칭 대신 ‘물방울관음’으로 부르기도 한다. 광배는 빛을 형상화한 것이므로 불꽃 모양으로 그리는 것이 일반적인 데 반해 특이하게 큰 물방울처럼 생겨 붙여진 별칭이다. 소장처는 일본의 센소지(淺草寺)인데 작년 고려불화 전시회 때 처음 공개된 작품으로 유명하다.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을 그린 불화를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라 부른다. 보살(菩薩)은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제도하는(上求菩提 下化衆生)’ 존재로 부처와 중생을 연결하는 중간자적 존재이다. 수월관음도가 그려지는 근거는 ‘화엄경(華嚴經)’ ‘입법계품(入法界品)’에서 확인할 수 있다. 관음보살은 ‘보타락산(補陀落山)’이라는 바위산에 머물고 있는데 53선지식(善知識)을 찾아다니는 선재동자를 맞아 법을 설한다는 내용이다. 말하자면 각 분야의 멘토들을 찾아가 어떻게 살아야 훌륭하게 살 수 있는지를 묻는 젊은 후배에게 삶의 노하우를 전수해 준다는 의미다. 관세음보살은 53명의 멘토 중 한 분이다.
   
   수월관음도의 도상은 반가부좌한 관음보살이 오른쪽으로(혹은 왼쪽으로) 살짝 몸을 틀어 바위 위에 앉아 있고, 합장한 선재동자가 화면 오른쪽(혹은 왼쪽) 아래에 서서 관음보살을 올려다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바위 위에는 버드나무 가지가 꽂힌 정병이 놓인다. 뒷배경에는 대나무가 심어져 있다. 현존하는 고려 불화는 대략 160여점 정도다. 그중에서 수월관음도는 약 30여점이 알려져 있다. 1310년에 제작된 가가미진자(鏡神社) 소장 ‘수월관음도’를 비롯하여 1323년 서구방(徐九方)이 그린 ‘수월관음도’(泉屋博古館 소장), 다이토쿠지(大德寺) 소장 2점의 ‘수월관음도’ 등 대부분의 고려시대 수월관음도가 모두 이런 형식을 따르고 있다. 그런데 센소지에 소장된 이 ‘수월관음도’는 좌상이 아니라 입상이다. 그렇다면 혜허는 어디서 이런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영감을 얻었을까?
   
   
   물방울관음은 어떻게 명화가 되었을까
▲ 작자 미상 ‘아미타삼존도’ 14세기 중반. 비단에 색. 109.5×55.7㎝. 마쓰오지(松尾寺) 소장

그 해답은 ‘아미타삼존도(阿彌陀三尊圖)’에서 찾을 수 있다. ‘아미타삼존도’는 서방 극락정토의 주불(主佛)인 아미타여래를 중심으로 좌우에 관음보살과 세지보살(勢至菩薩)을 협시보살(脇侍菩薩)로 거느린 그림 형식이다. 협시보살은 보처보살(補處菩薩)이라고도 부른다. 중앙의 본존불 곁에 ‘보디가드’처럼 서서 중생구제를 보좌하는 역할을 한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하는 염불에서도 알 수 있듯 관음보살은 단연 많은 중생들의 흠모의 대상이었다. 관음보살의 인기를 반영하듯 ‘아미타삼존도’의 왼쪽에도 관음보살이 서 있다. 그런데 관음보살의 모습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혜허가 그린 ‘수월관음도’의 도상과 똑같다. 머리 위의 보관(寶冠)에는 화불(化佛)이 그려져 있고, 천의 위에는 부드러운 사라를 걸치고 있다. 오른손에는 버드나무 가지를 들고 있고, 왼손에는 정병을 들고 있다. 이 모습은 ‘아미타삼존도’뿐만 아니라 8명의 보살이 함께 등장하는 ‘아미타팔대보살도’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수월관음도’가 사실은 독창적인 작품이 아니라 인용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수월관음도’를 명화라 부른다. 아무도 인용작이라고 폄하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혜허가 ‘수월관음도’를 그리기 전까지는 어느 누구도 관음보살을 독존도(獨尊圖)로 그릴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저 아미타불을 보좌하는 협시보살로만 바라봤을 뿐이다. 그런데 혜허가 관음보살의 진가를 알아봤다. 만년 2인자로만 있던 조연을 주연으로 캐스팅한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단순히 주연으로 캐스팅한 것에 머물지 않고 톱스타에 어울리는 의전을 갖춰 주었다. 바로 광배다. 혜허는, 광배는 둥근 원형이어야 한다는 통념을 깨고 물방울 모양으로 전환했다. 관음보살이 손에 들고 있는 버드나무 잎사귀를 형상화한 것인지도 모른다. 혹은 촛불을 보고 영감을 얻었을까. 머리에 빛나는 두광(頭光) 대신 몸을 감싸는 타원형의 신광(身光) 때문에 ‘수월관음도’는 불멸의 작품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뛰어난 심미안을 가진 혜허의 손에 의해 안정된 이등변삼각형의 광배에 둘러싸인 관음보살이 고려를 넘어 세계미술사에 빛나는 작품이 된 것이다.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작은 차이가 명품을 만든다는 것을. 누가 알았겠는가. 우리가 찾는 문제의 해답이 선배들의 작품 속에 전부 들어있다는 것을. 우리는 그것을 전통이라 부른다. 고리타분해서 그다지 큰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은 선배들의 작품이 사실은 모든 영감의 원천이다. 다만 그것을 보아내는 눈이 없을 뿐이다. 새롭게 자기식으로 해석해 내려는 고민이 부족할 뿐이다. ‘수월관음도’는 우리가 전통에서 무엇을 배우고 자기화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주는 훌륭한 모범답안이다.

 

 조정육
   
  홍익대 한국회화사 석사, 동국대 박사 수료. 성신여대 대학원, 동국대 대학원 강의. 저서 ‘그림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거침없는 그리움’ ‘꿈에 본 복숭아꽃 비바람에 떨어져’ ‘조선이 낳은 그림 천재들’ ‘우리나라 대표 그림’ ‘그림공부, 사람공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