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2022. 06. 23. 03:03
성공한 모든 예술 거장에게는 무명 시절이 있었다. 바로크 회화의 개척자로 칭송받는 카라바조도 20대 초까지는 다른 화가의 일을 돕는 조수에 불과했다. 집시 여성이 젊은 남자의 손금을 봐주는 이 그림은 카라바조가 그린 초기 대표작이다. 청년 화가는 왜 하필 ‘점쟁이’라는 주제를 선택한 걸까?
카라바조는 밀라노에서 13세 때부터 도제 생활을 하며 화가로 훈련받았다. 그가 로마로 온 건 1592년. 스물한 살 때였다. 워낙 다혈질로 유명했던 그가 폭력 사건에 연루돼 급하게 도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처음에는 변변하게 머물 곳도, 돈도 없어 극도로 궁핍한 처지였지만 뛰어난 재능 덕에 곧 길이 열렸다. 교황 클레멘스 8세의 후원을 받는 화가 주세페 체사리의 작업장에 취직해 꽃과 과일을 그리는 일을 했다. 하지만 체사리와 대판 싸운 후 조수 일마저 그만뒀다.
https://news.v.daum.net/v/20220623030322229
청년 시절의 유혹[이은화의 미술시간]〈220〉
'文學,藝術 > 아트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434] 인간의 욕망이 부르는 폭력과 혼돈 (0) | 2022.06.29 |
---|---|
‘점투성이’ 수상한 커플 정체는? [후암동 미술관-조르주 쇠라 편] (0) | 2022.06.26 |
[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433] 스페인 독감에서 살아남은 화가 (0) | 2022.06.21 |
'왕의 남자', 헨리 8세의 변기 보좌관 [김선지의 뜻밖의 미술사] (0) | 2022.06.17 |
[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432] 런던과 더블린 오가는 '우산' (0) | 2022.06.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