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아트칼럼

정찰제 도입에 광고까지… 초상화 대중화 이끈 채용신[윤범모의 현미경으로 본 명화]

바람아님 2023. 1. 17. 06:59

동아일보 2023. 1. 17. 03:01

“왜 우리나라 박물관에서는 여성 주인공의 그림을 볼 수 없습니까?”

나는 가끔 이런 질문을 받는다. 서양에 가면 박물관에서 여성을 그린 그림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우리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심지어 여성 나체화도 많지 않느냐는 것이다. 1980년대 미국 뉴욕에서 여성 화가들의 시위를 보았다. “미술관에서 여성이 대우 받으려면 옷을 벗어야 하는가.” 누드 그림의 모델은 여성이지만 화가는 남자라는 지적이다. 그래서 여성 작가들은 목소리를 높였다. 미술관에서 대우를 받으려면 단지 나체 모델뿐인가.

17세기 숙종 때의 일화이다. 임금님은 왕비의 자태를 초상화로 남기고 싶었다. 초상화 제작은 대개 도화서 화원의 일이었다. 하지만 국왕의 왕비 초상화 제작 꿈은 실행할 수 없었다. 당시 신하들의 반대 때문이었다. 아무리 왕비라 하지만 여자인데 어떻게 남자가 여자를 그릴 수 있느냐는 논리였다. 남녀유별 유교문화 사회의 반영이다. 조선 후기는 공식적으로 여성을 초상화의 주인공으로 삼을 수 없었다. 하기야 여성은 작가 생활은커녕 사회 활동조차 할 수 없는 시대였다. 우리 박물관에서 여성을 그린 그림을 볼 수 없는 이유다.

(중략)
채용신의 초상화 작업은 남녀를 구별하지 않았다. 작품 제작비만 내면 누구나 다 고객이었다. 면암 채익현 등 애국지사의 초상화 작업도 많이 했지만 지역 유지 혹은 부부 초상도 다수 남겼다. 시대는 바뀌었다. 채용신의 여성 초상화는 이를 반영한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미술관에서 여성 모델의 그림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채용신의 이색 작품으로 ‘운낭자 초상’(1914년·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을 들 수 있다. 이 그림은 기녀 최연홍을 그린 것이다. 가슴을 살짝 풀어헤치고 어린아이를 안고 있는 모습이다. 채용신의 정형적 초상화 기법과는 다르지만 27세 젊은 여성의 전신을 화면에 담았다는 점에서 주목을 끌고 있다. 채용신은 작품 전면에 자신의 이름을 당당하게 쓰고 낙관을 했다. 조선시대 이래 초상화에 화가의 이름을 당당하게 밝힌 유일한 사례이기도 하다. 그만큼 초상화가로서 자신감이 넘쳤다는 의미일 것이다.


https://v.daum.net/v/20230117030115353
정찰제 도입에 광고까지… 초상화 대중화 이끈 채용신[윤범모의 현미경으로 본 명화]

 

정찰제 도입에 광고까지… 초상화 대중화 이끈 채용신[윤범모의 현미경으로 본 명화]

근대기 초상화가 채용신은 옷 주름과 머리카락 한 올까지 정확하게 묘사하는 사실적 표현법의 대가였다. 그는 직업 화가답게 정찰제를 도입했는데, 초상화 한 점 가격이 현재로 치면 100만 원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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