其他/최재천의자연

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266] 백벌백계(百罰百戒)

바람아님 2014. 5. 20. 08:23

(출처-조선일보 2014.05.20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이화여대 석좌교수)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이화여대 석좌교수세월호 참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순전히 인재(人災)였다. 
타이태닉호 침몰의 경우처럼 폭풍우가 몰아친 것도 아니었다. 
짙은 안개 때문에 애당초 출항하지 말았어야 했지만 정작 사고가 난 맹골수도 지역은 본디부터 항해하기
까다로운 지역이었을 뿐 당일 기상 조건은 사고 원인이 아니었다. 
오로지 돈만 챙긴 청해진해운의 무리한 선박 구조 변경도 인재이며, 자기들만 살겠다고 최소한의 무마저 
내팽개친 선원들의 작태도 인재의 전형이다. 사고 현장에 나타나서도 어영부영 시간만 낭비한 해경의 
총체적인 무능함도 인재의 범주를 벗어나기 어렵다.

지난해 연말 나는 고건 전 총리가 공직 생활 50년을 회고하며 쓴 자전적 저서 '국정은 소통이더라'에 
추천글을 썼다. 일선 공무원으로 그는 '새마을운동, 치산 녹화, 식량 증산에 젊음을 바쳐' 일했으며 임명직과 민선으로 서울시장을 두 차례나 역임했다.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이 터지자 전두환 대통령은 그에게 내무부 장관을 맡겼고, 문민정부 막바지에 김영삼 
대통령은 그를 총리로 불러들여 한보 사태 정리 등 온갖 뒤치다꺼리를 떠맡겼다. 
노무현 대통령은 스스로 '몽돌' 대통령을 자임하려 그를 이른바 '받침대' 총리로 삼았다. 
그는 우리 정부가 다급할 때마다 찾았던 인재(人才)였다.

그는 늘 다산 정약용 선생의 '목민심서' 율기(律己)에 나오는 지자이렴(智者利廉)을 받들며 살았다고 한다. 
지혜롭고 욕심이 큰 사람은 반드시 청렴하게 살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욕심만 많고 지혜롭지 못한 사람은 자칫 부패를 저지른다. 
고건 전 총리의 책에서 나는 '부패 공직자 백벌백계'라는 글을 가장 감명 깊게 읽었다. 
한 명을 벌하여 100명에게 경계가 되도록 하자는 일벌백계(一罰百戒)는 많이 들었지만 백벌백계(百罰百戒)는 처음이었다. 
백벌백계는 부정을 저지르고도 운만 좋으면 걸리지 않는 게 아니라 언젠가는 반드시 적발돼 벌을 받는다는 원칙을 말한다. 
이번 세월호 사건에 어떤 형태로든 부정을 저지른 자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조리 벌을 받게 만들어 우리 사회의 규범을 
새롭게 세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