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2.08.13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행동생태학)
우리 사회에는 토론 문화가 없다.
모두 자기주장만 하다 보니 '목소리 큰 놈이 이기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내 생각을 다듬기 위해 남의 얘기를 듣는 것이 본래 토론의 목적이건만 기어코 상대를 제압하겠다는
결연한 자세로 토론에 임하면 시종일관 내가 할 얘기만 생각할 뿐 남이 하는 얘기는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결국 아무리 오래 토론한들 번번이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채 끝이 난다.
오죽하면 "계급장 떼고 토론하자"는 말이 화제가 됐을까?
이제는 어느덧 지하철 안에서도 들을 수 있는 일반 용어가 된 '통섭'은 하버드대 윌슨(E. O. Wilson) 교수의 1998년 저서 'Consilience'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새롭게 태어난 단어이다. 윌슨 교수는 학문 간의 넘나듦을 표현해줄 단어를 찾다가 19세기 영국의 자연철학자 휴얼(William Whewell)이 만들어서 쓰다가 인기가 없어 사라진 사어(死語)를 발굴하여 책의 제목으로 삼았다. 흥미롭게도 거의 같은 시기에 캘리포니아에서는 동일한 이름의 와인이 출시되었다. 두툼한 영어사전에도 나오지 않는 단어가 동시에 책의 제목과 와인의 이름으로 등장한 것은 참으로 흥미로운 우연이다.
Consilience가 와인의 이름으로 채택된 과정 또한 매우 흥미롭다.
이제는 어느덧 지하철 안에서도 들을 수 있는 일반 용어가 된 '통섭'은 하버드대 윌슨(E. O. Wilson) 교수의 1998년 저서 'Consilience'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새롭게 태어난 단어이다. 윌슨 교수는 학문 간의 넘나듦을 표현해줄 단어를 찾다가 19세기 영국의 자연철학자 휴얼(William Whewell)이 만들어서 쓰다가 인기가 없어 사라진 사어(死語)를 발굴하여 책의 제목으로 삼았다. 흥미롭게도 거의 같은 시기에 캘리포니아에서는 동일한 이름의 와인이 출시되었다. 두툼한 영어사전에도 나오지 않는 단어가 동시에 책의 제목과 와인의 이름으로 등장한 것은 참으로 흥미로운 우연이다.
Consilience가 와인의 이름으로 채택된 과정 또한 매우 흥미롭다.
와인 사업을 하는 네 친구가 각자 심혈을 기울여 만든 이름 하나씩을 들고 토론을 시작했다.
길고 열띤 토론 끝에 그 중 한 사람이 모자를 벗었고 모두 종이에 이름 하나씩을 써서 모자 안에 던졌다.
투표 결과는 만장일치였다.
그렇다면 그들 중 세 사람은 토론 과정을 통해 자기가 애써 만든 이름을 접고 남이 만든 이름에 깨끗한 한 표를 던진 것이다.
이런 게 바로 토론이다.
미국에서 생활하던 15년 동안 내가 배우거나 가르친 수업의 상당수가 토론 수업이었다.
미국에서 생활하던 15년 동안 내가 배우거나 가르친 수업의 상당수가 토론 수업이었다.
나는 서양의 교육과 우리 교육의 가장 큰 차이가 토론 수업에 있다고 생각한다.
'백지연의 끝장토론'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지만, '끝장토론'이란 말은 그 자체가 어폐이다.
토론이란 원래 끝장을 보려고 하는 게 아니다.
말로 끝장을 보는 것은 토론(discussion)이 아니라 논쟁(debate)이다.
MBC TV의 '100분 토론'도 '100분 논쟁'이라고 부르는 게 나을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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