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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173] 책, 인류 최악의 발명품

바람아님 2014. 5. 21. 10:53

(출처-조선일보 2012.08.06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행동생태학)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행동생태학책이 인류 최악의 발명품이라니? 
책을 벌써 수십 권이나 써냈고 스스로 책벌(冊閥)이라 일컫는 자가 내뱉을 말은 아닌 듯싶다. 
그러나 엄연한 사실인 걸 어쩌랴. 우리 눈은 입체를 보라고 진화했다. 
그런데 책을 최초로 발명한 그자는 어쩌자고 글자를 평면에 박아버렸는가 말이다. 
삼차원에 익숙한 우리 눈이 이차원을 보도록 강요당하는 바람에 죄다 망가진 것이다. 
현대인 중 눈이 성한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는가? 
나는 10여년 전부터 우리 눈이 편안해할 '입체글자'를 만들기 위해 나름의 융합 연구를 진행해왔다. 
전자책이 등장하기 전에 특허까지 받았더라면 그야말로 돈방석에 앉았을 텐데.

최근 출판계에 귀로 읽는 오디오북이 대세라는 기사(조선일보 2012년 8월 4일)를 접했다. 
눈이 침침해진 노인과 시각장애인들이나 구매할 것이라던 예상을 깨고 판매량이 급격히 늘고 있단다. 
게다가 책은 보통 남성보다 여성이 더 많이 사는 법인데, 오디오북은 여성 독자가 47.4%인 데 비해 남성이 52.6%로 더 많다. 
그러자 기사에는 "여자는 보고 남자는 듣는다?"라는 소제목까지 등장했다. 
하지만 동물행동학자인 나는 이 결론이 조금 성급하다고 생각한다.

남성과 여성의 감성 차이에 관한 흥미로운 실험 결과 하나를 소개하련다. 
남자들에게 여성의 나체 사진을 보여주면 거의 모든 남성에게서 동공이 확대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남자 나체 사진에 대한 여성들의 반응은 사뭇 다양하다. 
대신 여성들에게 남녀가 사랑을 나누는 장면을 노골적으로 묘사한 연애소설을 읽어주면 훨씬 많은 여성의 동공이 커진다. 
적어도 행동실험의 결과에 따르면 남성은 시각적인 반면, 여성은 훨씬 청각적이다. 인터넷 야동에 탐닉하는 쪽은 단연 여성이 아니라 남성이다.

52.6%와 47.4%의 차이가 과연 통계적으로 유의한 수준인가 우선 검증해야 한다. 
이 정도의 차이는 아마 따로 책을 읽을 시간을 찾기 어려워하는 남성 직장인과 약간은 여유 있게 책장 넘기는 맛을 음미하고픈 
여성 주부들의 구매 성향 차이에 기인할 것이라 생각한다. 
MP3에서 스마트폰을 거쳐 오디오북으로 이어지는 흐름에 영상의 짜릿함을 보태야 계속 남성 독자들을 붙들어둘 수 있다. 
그렇다면 해답은 어떤 형태로든 '오디오비디오북'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