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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172] 목소리

바람아님 2014. 5. 19. 09:10

(출처-조선일보 2012.07.30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행동생태학)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행동생태학아들이 초등학교에 다니던 어느 날 '브리지 오버 트러블드 워터(Bridge Over Troubled Water)'를 함께 듣다가 졸지에 내기가 붙었다. 아트 가펑클(Art Garfunkel)의 고음을 흉내 내며 우쭐대는 아들에게 지금은 네가 어려서 가능하지만 이담에 가펑클만큼 나이가 들면 어려울 것이라 하자 아들이 내게 30년을 기약하는 내기를 걸어왔다. 하지만 변성기를 지나며 아들은 곧바로 내게 항복을 선언했다. 예상보다 훨씬 싱겁게 끝난 내기였다.

나이가 들면 목소리도 변한다. 남자는 대개 10대 후반에 변성기를 겪으며 목소리가 낮아지고, 일부 여성들은 50대 중반 완경(完經·흔히 폐경(閉經)이라 부른다)과 더불어 목소리가 낮아지는 경향을 보인다. 호르몬 변화에 따라 성대와 그를 둘러싼 근육 조직이 성장 또는 수축하며 새로운 음색의 목소리를 내게 되는 것이다. 16~18세기 유럽에는 어려서 거세를 당해 소프라노 음역까지 구사하던 카스트라토(castrato)들이 있었다.

런던올림픽 개막식의 대미를 비틀스의 폴 매카트니가 장식했다. 올해 나이 칠십이라 얼굴 근육은 많이 처져 있었지만 목소리는 44년 전 '헤이 주드(Hey Jude)'를 처음 발표했을 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사망하기 불과 1년여 전인 2006년 이탈리아 동계올림픽에서 '공주는 잠 못 이루고(Nessun dorma)'를 부른 파바로티도 여전히 특유의 미성을 뽐냈다. 우리나라의 대표 트로트 가수 이미자씨의 성대는 칠순의 나이에도 여전히 처녀 시절의 고운 자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단다.

아내는 나더러 내 목소리가 총각 시절의 낭랑함을 잃은 지 오래라며 강연 일정을 줄이라고 종용한다. 대학 시절 독서동아리를 함께 하던 어느 여학생의 언니는 내 전화 목소리에 반해 사랑 고백(?)을 전해오기도 했다. 그런 내 목소리가 이젠 많이 탁해진 게 사실이다. 하지만 내 경우는 그렇다손 치더라도 성대는 신체의 다른 부위에 비해 노화 속도가 훨씬 느려 보인다. 만일 내 관찰이 옳다면 이는 진화적 설명이 필요한 흥미로운 현상이다. 평생 가장 많이 쓰는 기관 중의 하나인 성대의 노화 속도가 오히려 다른 기관보다 늦다니. 인간의 삶에서 말하는 것처럼 중요한 게 그리 많지 않다는 방증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