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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영의 자작나무 숲] 묘지의 노래

바람아님 2025. 4. 22. 01:10

조선일보  2025. 4. 22. 00:02

옛날에는 사람 모여드는 곳 가까이 무덤을 마련했다. 그것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고 남은 삶의 소중함을 환기하는 방식이었다.  셰익스피어 극 ‘햄릿’의 묘지기는 노래하며 무덤 파는 익살꾼이다....무의식이 그에게 속삭이는 것이다. 이제 곧 침묵할 테니 지금 실컷 말하고, 이제 곧 몸 눕혀 잠들 테니 지금 열심히 움직여야지. 살아서는 썩지 말아야지.

역사학자 필리프 아리에스의 자료(‘죽음 앞의 인간’)에 따르면, 중세에 공동묘지는 교회로 편입되었다. 교회가 죽음의 악령을 잠재우리라 믿었기 때문이다....공동묘지는 교회를 벗어나 변두리에 조성했고, 그곳을 거닐며 삶의 의미를 사색하는 일이 유행했다. 묘지 시도 인기를 끌었다....그런데 죽음을 은유로써 미화하는 것은 그것을 멀리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실체 자체는 외면당한다. 아리에스는 ‘금지된 죽음’이라고 표현했다. 현대인에게 죽음은 무섭고, 아름답지 않고, 수치스럽다. 

먼 훗날 역사가는 21세기형 죽음을 어떻게 기술할까? 묘지 없는 시대다. 대부분 홀로 죽을 것이며, 대부분 땅에 묻히지 않을 것이다....얼마 전 모임에서 이런저런 얘기가 나왔다. 나이 많을수록, 혼자 사는 사람일수록 사후 처리는 당면 과제 1순위에 속한다....다들 소박하게, 그러나 존엄하게, 자연으로 돌아가면 좋겠다고 말을 모았다. 어떻게 하면 그럴 수 있는가만 분분했을 뿐이다....자연으로 돌아가겠다면서도, 뭔가 뜻있고 아름다운 것을 남기고자 원했다. 말이 그렇지, 바람처럼 사라지고 싶지 않은 본능이 그렇게도 뿌리 깊었다.

소설 ‘백치’의 한 대목이 생각난다. “어찌하면 더 잘 죽을 수 있을까요?” 말기 폐병 환자가 이렇게 물으니, 주인공이 ‘백치’다운 명언을 한다. “그냥 지나가세요. 그리고 살아 있는 우리의 행복을 용서해 주세요!”


https://v.daum.net/v/20250422000215448
[김진영의 자작나무 숲] 묘지의 노래

 

[김진영의 자작나무 숲] 묘지의 노래

옛날에는 사람 모여드는 곳 가까이 무덤을 마련했다. 그것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고 남은 삶의 소중함을 환기하는 방식이었다. 셰익스피어 극 ‘햄릿’의 묘지기는 노래하며 무덤 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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