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사진칼럼

인문의 향연- 24시간이 모자란 사람들을 위한 변명

바람아님 2014. 6. 10. 23:12

(출처-조선일보 2014.06.09 신수진 사진심리학자)

힘든 日常 없이 아름다운 成就 없어
과도한 스트레스에 두려움 느껴도 獻身의 가치 믿는 것이 삶의 원동력

신수진 사진심리학자내 주위엔 밤낮없이 일에 몰두하는 사람이 많다. 
해외 업무가 많은 기업인, 규칙적으로 생방송을 내보내야 하는 프로듀서, 
저녁 식사 후에 다시 연구실로 돌아가는 교수, 브랜드를 여러 개 맡고 있는 의상 디자이너, 
아르바이트를 해가며 작품 활동을 지속하는 작가 등 연령이나 경력, 직종에 관계없이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보내는 그들을 나는 좋아한다. 
유유상종이라 했으니, 아마도 나 또한 그런 부류일 것이다. 
해야 할 일 목록이 줄어들기가 무섭게 다시 다른 할 일들로 가득 채우는 일상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보니 가끔 일중독자가 된 건 아닌지 걱정스럽기도 하지만 이내 걱정하는 시간이 아까워진다.

하루를 짧게 느낄 만큼 일이 많다면 스트레스도 그만큼 늘어날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경제활동을 하는 성인들은 업무 때문에, 주부들은 아이들 양육 문제로 늘 바쁘고 힘들다. 
치유와 위로를 전면에 내세우는 인생 지침들은 우리에게 더 이상 고단하게 살지 말라며 어깨를 두드려 준다. 
하지만 그 말을 듣고 달리는 열차에서 과감히 내려설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일이나 양육 같은 과제는 훌쩍 벗어버리거나 가벼이 여길 수 있는 짐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인생을 더 의미 있게 만들기 
위한 기회이자 수단이기 때문이다. 힘겨운 일상이 없다면 아름다운 성취도 없다.

30년 전 사진 속 이름 모를 엄마의 모습에서 고단한 일상의 힘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이 사진을 찍은 권태균 작가는 빠르게 변화하는 한국의 모습을 꾸준히 기록해 왔는데, 
그의 담백하고 솔직한 시선은 시간을 뛰어넘어 그 속에서 변하지 않는 정신을 느끼게 한다. 
'나인 투 화이브'라는 영화 포스터가 붙어 있는 버스 정류장에서 두 아이를 건사하며 서 있는 엄마의 얼굴은 힘겨워 보인다. 
정해진 근무시간이 없으니 퇴근도 없고 매일 반복되는 일과 속에서 누가 크게 알아주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반듯하게 맞잡은 손과 온몸으로 업은 아이를 버티고 선 자세에서 그녀의 모든 시간이 온전하게 아이에게 바쳐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헌신은 끝이 없고 보상은 불투명하다. 헌신이란 원래 그런 것이다. 누가 시켜서 억지로 하는 일은 헌신이 아니다. 
밤낮으로 몰두하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더 이상 남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일이다. 나를 바쳐서 나를 이루는 것이다. 
마치 부모가 아이를 두고 자신의 미래를 계산하지 않듯이 무언가에 나의 시간을 온전히 쓰고 있다면 그것은 곧 나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설령 보상이 만족스럽지 못하더라도 후회하지 않는다.

권태균, 엄마는 24시, 마산, 1983.
권태균, 엄마는 24시, 마산, 1983.
현대인들에게 헌신의 의미와 가치를 의심하게 만드는 위협적인 요소 중 하나는 건강이다. 
과도한 스트레스는 건강의 적이며 수명을 단축시킬 것이라는 두려움이 우리를 주춤거리게 만든다. 
건강심리학자들의 최근 연구는 스트레스에 대한 자기 확신과 신체 건강의 관계에 대해 흥미로운 발견들을 내놓았는데,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받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상황이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스트레스가 아니라 스트레스에 대한 믿음이 건강에 긍정적인 혹은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말이다. 
무엇에 헌신하는가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다만 자신의 헌신에 대한 확신이 우리를 지치지 않게 만드는 원동력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