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전시·공연

조선 대표 미인 76년 만의 외출 .. 설레는 동대문

바람아님 2014. 7. 2. 14:43
    조선 대표 미인의 첫 나들이-. 간송미술관의 외부 전시인 '간송문화(澗松文華)'전 2부 '보화각(?華閣)'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혜원(蕙園) 신윤복(1758∼?)의 '미인도'다. 7월 2일부터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내 디자인박물관에서 관객을 맞는다.

 말할 듯 하지 않는 입술, 그리움으로 가득한 눈빛, 탐스런 얹은 머리에 가녀린 어깨의 주인공. 공들여 묘사한 화가는 이런 제화시(題畵詩)를 곁들였다. "화가의 가슴 속에 만 가지 봄기운 일어나니, 붓끝은 능히 만물의 초상화를 그려내 준다." 그림이 전하는 신비로운 분위기 때문일까, 후예들은 화가를 아예 남장 여자로 설정한 소설과 드라마를 만들며 열광했다.

↑ 겸재 정선이 66세에 그린 ‘압구정’(31.0×20.0㎝). 압구정동·옥수동 일대의 18세기 모습이 담겼다(사진 왼쪽), 전시작 중 가장 오래된 ‘계미명금동삼존불입상’(6세기 중반, 국보 제72호·오른쪽). [사진 간송미술문화재단]

↑ 언제봐도 고혹적인 신윤복의 여인, ‘미인도’(45.5×114.0㎝)가 처음으로 간송미술관 밖에서 전시된다. [사진 간송미술문화재단]

 

 

간송미술문화재단(이사장 전성우)은 DDP 개관과 함께 시작한 첫 외부 전시 '간송문화-문화로 나라를 지키다'를 77일만에 마무리하고 재단의 대표 명작 위주로 꾸민 2부 전시를 연다. 1부 전시는 보화각 설립 76년 만의 첫 외부 전시이자 훈민정음혜례본의 첫 일반 공개로 화제를 모았다. 12만명(하루 평균 1460명)이 다녀갔다.


 2부 전시에는 '미인도'를 비롯해 진경산수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겸재(謙齋) 정선(1676~1759)의 '압구정(狎鷗亭)' '풍악내산총람(楓岳內山總覽)', 5만원권 지폐 뒷면 도안으로 실린 탄은(灘隱) 이정(1554~1626)의 '풍죽(風竹)' 등 44점의 간송 소장품이 새로 공개된다. 다만 '훈민정음 해례본(訓民正音 解例本·국보 제70호)', 심사정의 긴 두루마리 산수화 '촉잔도권(蜀棧圖圈)' 등 1부에서 소개됐던 주요작품들도 그대로 전시된다. 총 114점의 전시작 가운데 가장 오랜 '계미명금동삼존불입상(癸未銘金銅三尊佛立像·국보 제72호)'을 비롯해 국보가 12점, 보물이 8점이다.

 재단 산하 한국민족미술연구소 백인산 연구실장은 "간송미술관이 갖고 있는 국보와 보물 중 옮겨올 수 없었던 탑 두 개(보물)를 제외한 국가지정 문화재가 총출동했다"며 "항간에 간송미술관 소장품만으로도 한국미술사를 쓸 수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런 점을 염두에 두고 전시를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재단 전인건 사무국장은 "첫 외부 전시로 43년간 이어오던 성북동 간송미술관에서의 봄 정기전은 쉬었지만 올 가을 정기전은 예전처럼 열 것"이라고 말했다.

 대가들이 남긴 걸작들 가운데서 눈길을 끈 것은 추사(秋史) 김정희(1786~1856) 만년의 예서 대련이다. 타계하기 두 달쯤 전인 1856년 8월에 이렇게 썼다. "좋은 반찬은 두부·오이·생강나물, 훌륭한 모임은 부부와 아들딸 손자(大烹豆腐瓜薑菜 高會夫妻兒女孫)" 옆에 작은 글씨로 "이것은 촌 늙은이의 제일가는 즐거움"이라고 적었다. 죽음을 앞둔 대가가 마지막으로 강조한 것은 평범한 일상의 가치, 가족의 소중함이었다. 9월 28일까지. 입장료 성인 8000원, 학생 6000원.

권근영 기자

◆보화각(<8446>華閣)= 간송 전형필이 설립한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미술관. 위창(葦滄) 오세창(1864∼1953)이 '빛나는 보배를 모아둔 집'이라는 뜻으로 명명했다. 근대 건축가 박길룡(1898~1943)이 지은 중후한 모더니즘 건물로 서울 성북동에 1938년 준공됐다. 1971년 간송미술관으로 개칭되면서 연 2회, 2주간의 무료 공개전시가 시작됐다.
 9월28일까지 DDP서 2차 전시
야한 기품 '미인도' 풍속도 '전신첩' 등
인물묘사 뛰어난 신윤복 부각
김정희 글씨대작·겸재 진경산수…
국보급 출품작 '조선회화사' 오롯이

<미인도>와 풍속첩으로 이름난 19세기초 화가 혜원 신윤복은 한동안 변방 바닷가에서 해군장교인 첨사로 일하며 그림을 그렸다고 전한다. 속된 소재를 담는다고 화원에서 쫓겨나 비루하게 살았지만, 그는 인물의 내면 묘사에 관한 한 따라올 이가 없을 만큼 일가를 이루게 된다. 단원 김홍도풍의 건강한 세태 풍속도와 달리, 혜원처럼 한 인물의 내면을 깊이있게 묘사하며, 당시 소외됐던 여염집 여인이나 기생 등을 화폭 전면에 부각시킨 화인은 전통회화사에 전무후무하다. 근대 사실주의 소설의 심리묘사를 연상시키는 그의 필력은 '명주실처럼 가늘고 철사처럼 탄력있다'는 사가들의 평가를 받았다. 19세기초 야만의 유럽역사를 묘사했던 스페인 거장 프란시스코 데 고야의 인물화들과 비견될 수 있는 혜원의 그림 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개성적일뿐 아니라,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심오한 내면을 드러내곤 한다. 수년전 그의 '미인도'를 소재로 혜원을 남장여자로 각색한 드라마가 나오는 등 갖은 논란이 일었던 것도 상상력을 부추키는 혜원 화풍의 이런 특장 때문일 것이다.

한국미술사의 성지인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이 4월 처음 바깥으로 자리를 옮겨 마련한 기획전 '간송문화'전의 2부 '보화각'이 혜원의 '미인도'를 앞세워 시작된다. 2일부터 9월28일까지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 디자인박물관에서 열리는 전시는 간송컬렉션들 가운데 회화, 불교조각, 도자기, 전적, 글씨 등 명품들 잔치다. 일제강점기 민족문화유산을 지킨 간송 전형필의 컬렉션 내력을 보여주는 전시로 기획돼 12만여명의 관람객을 동원한 1부(3~6월)보다 훨씬 대중적 주목도를 겨냥하고 있다. 특히 50~60년대 국립박물관 대여전시 이래 사실상 처음 나들이나온 혜원의 '미인도'와 풍속화첩의 성가를 빼고 이 전시를 논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세로 폭 1m를 넘고 폭은 40여㎝ 정도인 '미인도'는 들머리 단독 진열장에서 관객을 맞는다. 잔 머리카락 하늘거리는 흰 목덜미, 그 위에 검은 트레머리를 얹고 옥빛의 풍성한 치마를 입은 앳된 얼굴의 여인이 옷고름 풀어내리는 자태를 담은 그림이다. 입수경위를 전혀 몰라, 더욱 신비스러운 작품이다. 미술사가 고 오주석이 "혜원이 연모했지만, 감히 품에 안을 수 없었던 일류 기생을 떠올려 그렸을 것"이라 짐작한대로, 여인에게 주위 시선은 안중에도 없다. 압권은 꿈꾸는 듯, 냉랭한 듯 좀체 속내를 짐작할 수 없는 그 표정과 눈빛이다. 연인이고 싶었지만, 범접할 수 없어 답답한 혜원의 심경이 표정으로 전해지는 듯하다. 노리개 붙잡고 고름을 자근자근 풀어내리는 모습이나, 풍성한 양감의 치마와 트레머리의 대비, 노리개와 옷깃, 저고리, 치마 색조의 절묘한 배색 등에서 우리는 작가가 당대 기방 풍속과 상류 문화를 충실히 관찰, 분석했음을 알게 된다.

1부에도 선보였던 혜원 전신첩의 양반, 평민, 승려, 한량들 풍속도는 '야하지만 품격을 잃지 않았던' 혜원의 감각과 지성을 다시금 확인시켜 준다. 성북동미술관보다 조명이 훨씬 어두워 세세히 그 필력의 자취를 살펴보기 어렵다는 안타까움이 따라붙는다.

전시제목 '보화각'은 1938년 세워진 미술관의 본디 명칭이다. 간송 스승이던 감식가 위창 오세창이 '빛나는 보물을 모은 집'이란 뜻으로 붙였다는 내력답게, 전시장은 '미인도'와 더불어 백인산 연구위원이 말한 대로 한폭의 조선 회화사를 펼쳐 보인다.

1부에 이어 전시되는 심사정 대작 '촉잔도권'을 비롯해, 진경산수의 대가 겸재 정선의 서울 부근 풍경연작인 '압구정'과 세계유산 남한산성이 배경으로 묘사되는 '송파나루', 내금강 전경인 '풍악내산총람'이 보인다. 집 뜨락에서 고양이가 병아리를 잡아채 달아나는 교과서 도판으로 익숙한 긍재 김득신의 '야묘도추', 단원의 명작 '마상청앵''황묘농접', 추사 김정희의 문인화 '고사소요'와 '명선''계산무진' 등의 펄펄 튀는 글씨대작들도 볼 수 있다. 탄은 이정의 '풍죽', 오원 장승업의 '삼인문년도', 윤두서의 숨은 걸작 '심산지록' 등이 줄줄이 이어진다.

국내 불상의 효시로 꼽히는 6세기 삼국시대의 '계미명금동삼존불입상'과 분청사기 명품인 '박지철채연화문병'까지 가세해 하나하나 오랜 시간 감상해야할 명품들이 곳곳에 즐비하다. 출품된 114점 가운데 국보가 12점, 보물이 8점이다. (02)762-04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