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전시·공연

무더위 잊게 할 풍성한 '빅 4' 전시들

바람아님 2014. 7. 9. 11:47

지난해 5월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 우뚝 솟은 피오르 행렬을 뚫고 찾아간 국립미술관에선 탄생 150주년을 맞은 에드바르 뭉크(1863~1944)의 특별전이 노독에 지친 여행객을 달랬다. 1000크로네 지폐에서 마주한 그의 초상만큼 작품들은 친근했다. '절규'(1895년), '마돈나'(1902년), '별이 빛나는 밤에'(1924년), '생의 춤'(1925년) 등 20여점은 알 수 없는 기운을 뿜어냈다. 전성기 회화들은 불우했던 삶을 통째로 옮겨 놓은 듯 소름 끼쳤지만 말년으로 갈수록 동화처럼 푸근함을 띠었다. 몽환적인 예술 세계는 보는 이의 마음까지 따뜻하게 치유했고 그렇게 한 시간 동안 작품 주변을 서성이며 그림들을 마음속에 오롯이 담아 올 수 있었다.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표현주의 화가이자 판화가인 뭉크의 작품 99점이 처음으로 한국을 찾았다. 오는 10월 12일까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는 '에드바르 뭉크-영혼의 시'전에선 너무나 익숙한 '절규'의 석판화 버전을 비롯해 유화인 '키스'(1897년), '지옥에서의 자화상'(1903년), '뱀파이어'(1918년) 등 작가의 생애를 관통하는 작품 세계가 망라된다.

무더위에 지친 국내 미술 관람객을 달랠 풍성한 전시는 이뿐만이 아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젊은 건축가 프로그램'전, 서울시립미술관의 '유니버설 스튜디오 서울'전,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의 '디자인가구컬렉션'전 등이 무더위에 청량감을 안겨 줄 '빅 4'전으로 꼽힌다.

우선 뭉크전. 아쉽게도 오슬로 외곽 에케베르그 다리를 배경으로 양손을 귀로 막은 '절규'의 원본 유화는 이번에 오지 못했다. 1994년과 2004년 두 차례나 도난당했다 돌아온 터라 노르웨이 정부가 반출을 막은 탓이다. 그나마 판화 버전의 절규도 2006년 미국 뉴욕현대미술관(MoMA)전 이후 8년 만의 해외 나들이다. 이번 전시에선 그간 불안, 고독, 공포, 죽음 등 우울하고 어두운 작품들로만 알려졌던 뭉크의 또 다른 작품 세계를 만날 수 있다. 자연주의와 인상주의 화풍을 섞은 초기작인 '생클루의 센강'(1890년), '야외에서'(1891년) 등이다. '어린 창부'(1907) 같은 누드는 에로티시즘의 극치를 보여준다.

스테인 올라브 헨리크센 뭉크미술관 관장은 "생전 2만 8000여점의 작품을 남긴 뭉크가 우울 일변도의 이미지로 해석되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전체 5개 섹션 가운데 두 번째 섹션인 '새로운 세상으로'에선 고향을 떠나 프랑스, 독일 등에서 접한 새로운 기법을 실험한 작품들을, 마지막 섹션 '밤'에선 죽음을 앞둔 뭉크의 초월적 시선을 만날 수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8일부터 10월 5일까지 '신선놀음'이란 이름의 '젊은 건축가 프로그램'을 이어 간다. 재기와 역량을 갖춘 국내 젊은 건축가들을 모아 펼친 난장이다. MoMA에서 1998년부터 펼쳐 온 프로젝트의 연계 프로그램이다. 서울관 본관 마당에선 구름이나 버섯을 연상시키는 대형 조형물이 숲을 이룬다. 또 제7전시실에선 건축가 프로그램의 역사와 국제 네트워크를 조명한다. 전시는 26대1의 경쟁률을 뚫고 뽑힌 '문지방'(최장원, 박천강, 권경민)이 맡았다.

서울 서소문동 서울시립미술관 1층에선 무료 전시인 '유니버설 스튜디오 서울'전이 다음달 10일까지 이어진다. 1~20년간 한국에 거주해 온 외국인 작가들의 눈으로 바라본 한국의 낯설고 놀라운 모습들이다. 독일 출신의 작가 잉고 바움가르텐은 난간, 단청, 처마 등 한옥의 독특한 구조를 회화로 풀어냈다. 다른 작가들도 공유지를 무단 점거한 텃밭 문화와 유럽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열쇠가 사라져 버린 첨단 출입관리시스템 등을 회화, 조각, 설치 등으로 풍자한다.

DDP에선 '볼 체어' 등 30개국 112명의 디자이너 작품 1869점이 전시되고 있다. 핀란드 출신의 거장 에로 아르니오의 혁신적이면서도 인체공학적인 의자 등이 등장하는데, 의자의 고정관념을 깨는 디자인들이어서 흥미롭다. 360도 회전이 가능한 토머스 헤더윅(영국)의 '스핀 체어' 등은 참신하다. 오는 9월 28일까지 이어지는 '간송문화전 2부:보화각'전과 함께 챙겨 보면 '감동 2배'가 보장된다.

뭉크의 '절규'.. 한 작품이 아니었다?

['에드바르드 뭉크 - 영혼의 시'展···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10월12일까지]

그림을 마주한 순간, 공포에 찬 절규와 찢어지는 듯한 비명이 들리는 듯하다. 유령인지 사람인지 분간하기도 힘든 인물은 양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정면으로 관람객을 응시하고 있다. 노르웨이 출신 표현주의 화가 '뭉크'(1863~1944)의 작품 '절규'(The Scream)다.

뭉크 '절규'(The Scream) 35.2×25.1㎝, 석판화, 1895 /사진제공=뭉크미술관

뭉크전이 열린다고 하자 많은 이들은 "'절규'도 오나?"라고 가정 먼저 물었다. 물론이다. '절규'를 비롯해 '마돈나' '뱀파이어' '생의 춤' '키스' 등 노르웨이 뭉크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뭉크의 대표작 99점을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볼 수 있다. '에드바르드 뭉크 - 영혼의 시'를 주제로 오는 10월 12일까지 열리는 전시를 통해서다. 그런데 '절규'는 우리가 익숙하게 봤던 버전이 아닌, 색감이 배제된 석판화 버전이다.

가장 유명한 '절규'는 템페라(물감의 일종) 버전이지만 뭉크는 유화, 크레용, 파스텔을 비롯해 판화로도 제작했다. 템페라 버전은 노르웨이 내셔널갤러리가 소장하고 있고, 유화와 파스텔 버전은 노르웨이 뭉크미술관의 소장품이다.

이 회화버전들은 잇따라 도난당하고 어렵게 되찾는 수난을 겪으면서 국외 반출이 제한되는 바람에 이번 한국 전시에는 석판화가 온 것이다. 크레용으로 그린 '절규'는 2012년 당시, 경매 사상 최고가인 1억1990만 달러(약 1300억원)를 기록하며 미국의 개인 소장자에게 낙찰됐다.

뭉크는 이렇듯 동일한 주제를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곤 했다. 이번 전시에서 유화 1점과 판화 3점으로 이루어진 '키스' 시리즈도 볼 수 있다.

뭉크는 회화 작품으로 유명하지만 판화분야의 선구자이기도 했다. 평생에 걸쳐 유화 1100점, 판화 1만8000점, 드로잉과 수채화 4500여점을 남겼는데 '질투'의 경우는 판화가 그의 회화작품보다 더 높은 평가를 받기도 한다.

전시를 위해 한국을 방문한 헨릭센 뭉크미술관장은 "절규가 너무나 유명해서 다른 작품들의 빛을 바래게 한 측면이 있는데, 이번 전시의 다양한 작품을 통해 뭉크를 전반적으로 재조명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입장권 1만5000원, 청소년 1만2000원, 어린이 1만원. 문의 (02)580-1300.





뭉크 '키스'(The Kiss)의 각각 다른 버전 /사진제공=뭉크미술관





뭉크 '생의 춤'(The Dance of Life), 캔버스에 유채, 143 x 208 cm, 1925 /사진제공=뭉크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