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디자인·건축

정경원의 디자인 노트 [33] "이건 좀 심했다"… 지나친 패러디가 불러온 逆風

바람아님 2014. 8. 18. 18:28
(출처-조선일보 2012.11.19 정경원 카이스트 산업디자인학과 교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선거는 막판으로 갈수록 과열되기 마련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기려는 심리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장의 선거 포스터가 판세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있다. 유권자들의 
감성에 직접 작용하는 포스터 디자인이 예기치 않았던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1997년 영국 총선에서 존 메이저 총리가 이끄는 보수당토니 블레어가 
당수(黨首)인 노동당에 대패(大敗)했다. 
1979년 마거릿 대처 총리가 등장한 이후 18년 동안이나 지속하던 보수당 정권이 
무너진 것이다. 당시 43세의 젊은 나이였던 토니 블레어는 노동당의 전통이었던 
국유화 정책을 시장경제로 전환하는 등 보수와 진보를 넘나드는 '급진 중도'라는 
제3의 길을 추구하면서 '새로운 노동당(New Labour), 새로운 영국(New Britain)'이라는 참신한 슬로건을 내걸었다.

이에 위협을 느낀 보수당은 광고대행사 'M&C 사치'에 의뢰하여 디자인한 '새로운 
노동당, 새로운 위험(New Danger)'이라는 선거 포스터로 맞섰다. 
블레어가 웃고 있는 얼굴에 검은색 종이 띠를 합성한 다음, 빨간색으로 악마와 같은 
눈을 나타낸 포스터는 큰 반향을 일으켰다. 
단순한 표현으로 노동당의 슬로건을 패러디한 이 포스터는 영국 국민의 기억 속에 
깊이 각인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많은 유권자는 상대 당 당수를 악마로 매도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판단하여 오히려 역풍(逆風)이 크게 불었다.

비(非)방송매체 광고 자율심의 기구인 영국 광고표준국은 이 선거 포스터를 금지했다. 
당초 메이저 총리는 상대에 대한 인신공격성 접근에 대해 부정적이었지만, 판세를 역전시키는 데 급급했던 선거 관계자들을 
막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선거 결과 노동당이 압승했으며, 블레어 총리는 2007년까지 10년간 집권하며 창의 산업을 
육성하는 등 영국 경제의 재건을 위해 크게 기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