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4.10.08 박종세 경제부장)
금융은 한국 경제에서 '잃어버린 10년'을 먼저 경험하고 있는 산업이다.
성장이 지체되고, 때론 후퇴할 때 어떤 모습이 되는지를 한국 금융은 민낯으로 보여주고 있다.
지난 2003년 우리나라의 금융경쟁력은 세계경제포럼(WEF) 조사에서 세계 23위였다.
이 순위는 5년 뒤엔 37위로 내려앉았고, 다시 5년 뒤인 지난해엔 81위로 추락했다.
10년 동안 23위에서 81위로 무려 58계단이나 떨어진 의미는 이렇게 설명할 수 있다.
10년 동안 23위에서 81위로 무려 58계단이나 떨어진 의미는 이렇게 설명할 수 있다.
현재 세계 금융에서 순위가 23위 근처에 있는 나라는 프랑스와 독일이다.
81위 부근에는 우간다·네팔·코트디부아르 같은 나라가 포진해 있다.
WEF의 순위에 다소 주관적인 요소가 있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우리 금융은 10년 전에 선진국 문턱에
있었다면 지금은 후진국 무리 한가운데로 떨어져 있는 것이다.
가장 자본주의적인 금융이 한국에선 우파 정부인 이명박(MB)·박근혜 정부 시절에 더욱 가파르게 추락하고 꼴찌에서 헤매고
가장 자본주의적인 금융이 한국에선 우파 정부인 이명박(MB)·박근혜 정부 시절에 더욱 가파르게 추락하고 꼴찌에서 헤매고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이는 상대적으로 좌파에 가까웠던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시절보다 더 반(反)시장적으로 금융산업을
취급해왔기 때문이다. 외환위기 직후 김대중 정부는 부실금융을 덜어냈고, 노무현 정부는 동북아금융허브 구축에 관한
비전을 제시했지만 이명박 정부 시절엔 이렇다 할 금융산업에 대한 밑그림이 없었다. 대신 미소금융 등 임기응변식 서민금융
정책을 밀어붙여 은행들의 연체가 늘고 수익이 줄었다. 재정이 할 일을 금융에 미루고, 금융회사가 이익을 많이 내면 안 된다는
반시장적 족쇄를 굳게 채운 것도 이 시기다. 이런 흐름은 현 정부 들어서도 바뀌지 않고 있다. 금융을 주요 서비스산업으로
키우겠다고 했지만 새로운 패러다임의 금융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금융권의 보신주의 등을 질타하는 청와대의
목소리와 이를 받아 허겁지겁 금융회사를 죄는 금융당국의 모습 속에선 금융을 제조업의 시녀 정도로 생각하는 개발독재
시절의 금융관(觀)이 비칠 뿐이다.
후진적인 한국 금융의 뿌리엔 정치권력과 관치(官治)가 있다. 오랜 관치의 역사에다 최근에는 금융권 경영진 자리를 정권의
후진적인 한국 금융의 뿌리엔 정치권력과 관치(官治)가 있다. 오랜 관치의 역사에다 최근에는 금융권 경영진 자리를 정권의
전리품으로 여기고 자기 사람을 심는 '보상(報償) 정치'에 금융이 멍들고 있다. 막장 드라마를 방불케 하는 KB금융 사태는
이미 MB 시절 권력의 줄에 태워 내려보낸 '4대 천왕(天王)'이 군림할 때부터 언제라도 발생할 수 있는 일이었다.
금융시장에서 잔뼈가 굵고 검증된 전문가 대신 낙하산을 타고 내려온 비전문가가 점령하는 순간, 가장 상위 논리는 줄서기와
끈 대기로 바뀐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에 정권이 바뀔 때마다 낙하산을 내려보냈으면 두 회사는 벌써 국제경쟁에서 패퇴해 망했을 것이다.
이 시점에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우리는 정말 금융의 삼성전자가 나오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금융을 시장논리가 작동하는 산업으로 인정하고, 정치권과 정부는 개별 기업에서 손을 떼야 한다.
현재 진행 중인 KB금융 회장 인사를 시작으로 민간 금융회사 경영진 선임 작업에서 발을 빼야 한다.
그리고 소유구조를 포함해 금융회사의 경영 연속성을 보장하는 장치를 강구해야 한다.
그러면 10년 뒤엔 치열한 국제경쟁에서 살아남은 괜찮은 금융회사가 한국에서도 출현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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